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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서예

"송체(宋體)"와 "명조체(明朝體)"

by 중은우시 2010. 8. 31.

글: 이운부(李運富)

 

'송체(宋體)'는 '명조체(明朝體)'라고도 하는데, 인쇄술에 적응하기 위하여 나타난 일종의 한자 자체(字體)이다. 중국의 송나라때 목판인쇄술이 나타났는데, 당시의 중국서적은 판(版)마다 2페이지를 인쇄했고, 사용된 것은 장방형의 목판조각판이었다. 목판에는 무늬결이 있는데 일반적을 가로방향이다. 글자를 새길 때 가로선은 나무결과 일치하므로, 비교적 튼튼하다. 그러나 글자를 새길때 세로방향의 선은 나무결과 교차하게 되므로, 쉽게 끊어진다. 그리하여 자체의 세로방향은 굵게 하고, 가로방향은 얇게 한다. 회로방향의 선은 비교적 튼튼하기는 하지만, 끝부분이 쉽게 마모되므로, 끝부분은 굵게 한다. 이렇게 하여 수조횡세(竪粗橫細, 세로는 두껍고 세로는 얇다)이고 가로선의 끝부분에는 굵은 점이 있는 송체의 자형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송체는 이미 송나라때 탄생한다. 그러나 아직 성숙되지는 않았다. 송나라는 서법자체(書法字體)인 안체(顔體, 안진경체), 유체(柳體, 유공권체), 구체(歐體, 구양순체)를 숭상했다. 명나라때까지, 경제적인 요소로 판면을 비교적 적게 차지하는 송체가 점차 유행하게 된다. 이런 자체는 예술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명나라때 문인들은 '장체자(匠體字)'라고 경멸한다. 송체자는 동쪽으로 일본에 전해지고, 일본에서는 명조체(明朝體)라고 부르게 된다. 이리하여 송체는 한자문화권의 주류 인쇄자체가 된다.

 

현대 인쇄술이 중국에 도입된 후, 중국인들은 송체로 인쇄된 서적을 보는데 1천년간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현대인쇄에도 송체인쇄를 사용한다. 나중에 서방문자의 흑체(黑體)와 이탈리아체의 방식에 따라, 한자인쇄에도 흑체와 방송체(倣宋體)가 나타난다. 현재, 송체, 흑체, 방송체와 해체(楷體)는 주요한 4가지 자체가 되었다.

 

중국문자에는 정(正), 초(草), 예(隸), 전(篆), 행(行)의 오체(五體)가 있다. 각 자체에는 각종 풍격에 따라, 서예가의 성씨를 따라 명명한다. 해서에는 구체(구양순체), 안체(안진경체), 유체(유공권체)등등이 있다.

 

송체자는 인쇄업계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글자체이다. 글자의 외형에 따라 서송(書宋)과 보송(報宋)으로 나눈다. 송체는 송나라때 조판인쇄에서 사용되던 인쇄자체에서 유래되었다. 송체자는 글자형이 방정(方正)하고, 필획이 세로는 굵고 가로는 얇으며, 모서리가 분명하고, 구조가 엄격하며, 균형이 있으며, 필획의 규율성이 강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읽을 때 눈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현대 인쇄에서 주로 서적과 신문의 본문부분의 글자체를 구성한다.

 

송나라때는 숭문억무정책으로, 문화에서 전대미문의 번영을 이루었다. 인쇄출판업은 송나라때 황금시대에 접어든다. 조판인쇄가 흥성하고, 서적출판이 발전한다. 활자인쇄가 발명된다. 원나라 명나라때는 송본(宋本)을 대량으로 새겨서 인쇄한다. 송체자는 명나라때 확립된다. 송체자는 글을 쓰거나 새기는데 편리하고, 글자체가 아름답고 단정했다. 그리하여 인쇄출판업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했고, 송나라문화의 극성을 보여주는 증인이 된다.

 

중국의 서예와 조판인쇄의 결합으로 송체자가 탄생한다. 그러므로 송체자는 중국서예의 매력을 보여줄 뿐아니라 조판인쇄 및 목판도각의 맛도 보여준다.

 

1. 송체자는 중국서예의 심미관을 승계했다.

 

중국서예예술은 한자의 자체의 독특한 상형성, 도화성의 특색이외에, 독특한 서예도구인 붓이 중국서예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붓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성이 있다. 그리하여 굽고 휘고 굵고 얇게 할 수가 있다. 마음껏 각종 두께,크기, 곡직, 강유의 선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의 감정이 실리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이 부드러운 붓은 가로로 쓰거나, 세로로 쓰거나, 점을 찍거나, 삐치거나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이것은 중국서예의 중요한 특징이다. 글을 쓰는 사람의 기술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면, 봇을 손에 쥐면, 점,획,선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천변만화를 일으키며 쓰여지는 글자에 생명력을 불어넣게 되는 것이다.

 

송체자는 필획에 있어서, 중국서예의 본질적인 특색은 보유하고 있다. 당나라 해서 안체와 비교하면,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점, 삐침 및 굽는 곳의 처리등은 모두 서예의 운필에 대한 고도의 예술화라고 볼 수 있다.

 

한자의 서예발전에서 보면, 당나라때 삼대가의 해서는 중국서예 형식화의 최고봉이다. 해(楷)는 모범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중국인쇄글자의 모범이 된다. 송체를 평가하고 설계할 때, 중국서예와 목판의 칼맛, 조판인쇄의 흔적의 맛을 추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만일 이런 느낌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미술글자일 뿐이다. 현재의 원체, 종예체는 전통서예의 맛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외에, 송체자의 각도에서 보자면, 당나라 3대가의 해서는 방정화 형식화를 추구했으므로 서예예술이 필요로 하는 마음먹은데로 자유롭게 격정과 영감을 표현하지 못하게 되었다. 당나라의 해서는 너무 형식화되어, 사람들이 쉽게 송체자를 생각할 수 있었다. 실제로 당나라해서는 오늘날 송체자의 범본(范本)이다. 그들은 성숙하여 자리에 꼿꼿이 앉아있는 어르신처럼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변화의 용기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우연성이 상실되었다.

 

당나라 3대가의 해서는 비록 후세의 서예가들에게 많은 편리를 제공해주었지만, 사람들이 모두 유공권, 안진경을 본받다보니, 개성이라고 할 것이 없어졌다. 이를 배워서는 서예가가 되기가 어려웠다. 그저 서예입문이나 좋은 글자를 쓰는 범본이 될 수 있을 뿐이지, 서예가가 시종 따라야할 모범은 아니었다. 학자들은 진, 한, 위, 진, 특히 한나라때 서예를 많이 추구한다. 마음가는대로 쓰고, 호방한 기세가 있는 것이다. <<한간>> <<태산경석욕금강경>>등등이 그것이다.

 

당나라해서는 중국서예의 최고봉이다. 최고봉에 오르면 뭐가 남는가? 내리막길이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당나라해서는 바로 송체자의 시작점이다.

 

2. 전통인쇄와 목판도각의 흔적의 맛

 

오늘날 판본학자들은 송체자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한다: '횡평수직(橫平竪直), 횡세수조(橫細竪粗), 기락필유릉유각(起落筆有稜有角), 자형방정(字形方正), 필획경정(筆劃硬挺)". 글자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 각이 져 있다는 것은 송체자의 최대특징이다. 그것은 목판인쇄장인들이 장기간 글자를 새기는 과정에서 당나라해서의 필획을 종합하여 처리한 것이다. 특유의 장식적 특징을 나타내게 된다. 각도(刻刀)가 남긴 맛이다. 이렇게 하여 당나라해서의 특징을 보유하면서도, 당나라해서보다 더욱 방정(方正)하고, 칼로 깍은데 더욱 힘이 들어갔다. 이런 도각의 흔적은 전통인쇄과정에서, 먹과 종이의 특징을 고려한 것이다. 압력을 가하면, 마지막으로 인쇄되었을 때 송체자의 모서리는 약간은 둥글게 부풀어올라 볼만하게 된다. 이는 무의식중에, 해서의 서예맛과 조판인쇄의 도각맛을 함께 합쳐놓게 된 것이며, 송체자의 전형적인 특징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하여, 서예를 배우러면 진,한에 소급해 올라가야 하고, 송체자를 설계하려면 당나라해서와 송나라 명나라의 조판각도를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송체자의 원류이기 때문이다.

 

송체자의 아름다움은 힘이 있고, 변화가 적당하여 후세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인쇄자체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명칭은 다르다. 그리하여 송체와 명조체라는 두가지 명칭이 병존하게 되었다. 한자의 컴퓨터 font기술은 일본에서 최초로 개발되고, 대만으로 전해진다. 대만에서는 일본의 명조체라는 칭호를 그대로 사용한다. 대만의 최초 송체 font는 세명조체(細明朝體)라고 불렀다. 약칭은 세명체(細明體) 혹은 명체(明體)이다. 명체는 점차 font업자들의 전문칭호가 되어 버렸고, 송체라는 말을 대체했다. 컴퓨터의 보급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은 송체가 바로 중국본래의 호칭이고, 명조체는 일본에서 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어떤 자체는 전통적인 칭호를 그대로 쓰고 있다. 예를 들어, 대만'교육부'의 표준송체, 홍콩의 표준송체는 모두 송체라고 부른다. 대륙의 정식칭호는 '송체'이다. '명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