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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서예

왕희지의 <<이모첩(姨母帖)>>는 가짜인가?

by 중은우시 2008. 9. 29.

 

 

 

글: 허석림(許石林)

 

"서예는 얕다면 접시물만큼 얕고, 깊다면 큰 바다만큼 깊다" 왕내동(王乃棟) 선생은 한편으로 가방에서 그의 책을 꺼내면서, 한편으로 나에게 말했다. 눈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서예창작에서 서예연구까지 나이 환갑인 왕내동 선생은 그 자신이 설계한 제1단계를 지났다. 최근에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은 육십부터"이다. 왕내동은 육십세부터 인생의 제2단계를 시작하고 있다. 즉, 서법연구에서 서법창작으로 방향을 바꾸어 그는 글을 써보고 있다. 더 이상 연구는 하지 않는다. 그의 상해 방언에는 약간의 신강사투리가 섞여 있다: "연구하지 않는다.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 그가 얘기하는 것은 물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가 해결하려던 문제는 60세이전에 그의 방식으로 해결되었다는 말이다.

 

왕내동은 1992년 신강 석하자시에서 심천 보안구문화관으로 전근가서 일했고, 전문적으로 서예이론연구와 고대서예작품의 진품여부에 대한 감정업무를 진행하였다. 13년이 흘렀다. 그는 일련의 학술성과를 내놓았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보기에 그의 성과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 심지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할 정도이다. 다만, 세속의 이유로 왕내동의 연구성과는 상당한 기간동안 "산화적막홍(山花寂寞紅, 산속에 꽃이 쓸쓸히 피어 있다)"이었다. 중국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에 대하여 그냥 웃어넘길 것이다. 왕선생이 아예 "연구를 더 이상 하지 않고, 글이나 쓰며 놀겠다",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는 것도 이런 원인에 기인한 것이다. 인생에는 벽이 있고, 그만둘 때는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 왕선생은 자기가 해결하려고 하던 문제는 자기의 방식으로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아주 만족한다. 이는 아마도 "재야"의 학자, 예술가가 인생을 즐기고, 학문의 기쁨을 누리는 결과일 것이다.

 

중국서예의 "삼대체계론"

 

왕내동은 삼천년 중국서예현상을 삼대체계로 정리했다. 즉, 실용서예, 예술서예 그리고 위이서예(僞異書法). 이 세가지 쳬게는 중국서예발전의 세가지 주된 라인이다. 서예는 실용에서 시작하고, 예술로 승화되고, 가짜가 파생되어, 삼위일체를 이루었다. 이것이 중국서예가 다른 세계의 평면조형예술과 구분되는 기본특징이다. 왕내동은 이러한 각도에서 서에사를 정리했고, 세상사람들을 위하여 서예와 서예사를 이해하는 간명한 맥락을 찾아냈다. 이 결론의 의의는 아마도 먼저 왕선생의 서예형세에 대한 분석에서 비롯되었다: 현대에 서예가 아주 인기있는 것같지만, 서예는 전체적으로 변태적인 번영이다. 왕내동에 의하면 당대의 서예명인은 보편적으로 자아를 잃었고, 서예의 졸작들이 온 천지에 널려 있다. "서예실천의 미망은 현대인들의 서예에 대한 인식의 천박함과 모호함으로 잘 드러난다"

왕내동의 학술저작은 장편대론의 소위 장중한 학술문장은 아니다. 그는 고인들의 글쓰는 방식을 따랐다. 간결한 문장으로 사고의 정수를 기록했다. 읽자면 옛맛이 느껴지고, 의미가 심장하다. 이는 바로 중국학자의 방식이다. 중국전통문화연구자의 가장 뛰어난 표현이다. 이런 학술표현은 당금의 소위 학술적인 말투를 찾아볼 수도 없고, 뭐가뭔지도 모르겠는 새로운 용어도 없다.

 

문자는 간결하나 구절구절이 폭약이다.

 

학문을 하는 것은 항상 춥고 배고프다. 학자로서 장기간 소위 기층에서 군중문화공작을 했던 연구자로 생존해왔으니, 왕선생의 연구과정은 힘들고 적막했다. 그도 때로는 흥분하고 격동했다. 매번 새로운 발견이 있을 때면 그도 기뻤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고독함과 고요한 행복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 힘들 것이다. 문제는 왕선생의 연구는 서예로부터 시작하여 결과적으로는 서예에 끝나지 않고, 당대 서예계, 수장계, 학술계와 체제의 여러 문제를 건드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현행 체제하에서 서예, 수장 및 학술로 밥을 먹는 사람들과는 왕내동의 연구결과를 모순적이고 난감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가설은 대담하게, 근거고증은 세심하게" 는 최근 100년동안 학술연구에서 숭상받는 한마디이다. 다만, 서법의 진위감정과 박물관, 서법사연구방면에서, 예술품경매시장에서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고 있든 아니든 전대의 권위와 '정설'에 따르고 있어, 많은 잘못된 것들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무리에 들어가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들 무리를 뒤따른 사람들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서법진위감정의 방면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거나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더욱 두터운 장애를 쌓고 있다. 예를 들어, 많은 권위있는 감정가들이 진품이라고 인정한 송나라 미불(米)의 유명한 작품은 모 경매에서 2000여만위안의 고가로 낙찰되었는데, 왕내동은 전혀 거리낌없이 평론한다: "필묵이 저속하고 구조가 인위적이며, 장법이 혼란하다. 미불의 서예작품이라는 것은 위작이다"

 

왕내동의 감정이 성립하느냐 여부를 불문하고, 이 것은 여러 사람의 체면, 여러 방면의 이익에 관련된 작품이다. 실제로는 이미 서예 자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서예, 예술, 문화재는 하나의 이익네트워크이다. 그런데, 왕내동은 감히 이 네트워크를 깨트리는 대담한 사람이다. 왕내동의 얇은 <<중국서법삼대체제도집>>은 글이 아주 간결하지만, 구절구절이 폭약을 담고 있다. 조금만 유의해서 살펴보면, 당대와 과거의 많은 사람들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말이 있다. 매 하나의 폭약을 터뜨릴 때마다 여러 사람들의 밥통이 날아가게 될 것이다. 당연히, 왕내동 본인에게도 골치거리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왕내동은 그저 손을 한번 휘저으며 말했다: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예계에서 아주 잘나가는 권위자들이, 이미 책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돈되는 일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바쁘다. 다 벌어들이지 못한 돈들이 그들이 벌어들이도록 기다리지 않는가. 그들이 무슨 시간이 있어 내 책에 관심을 줄 것인가. 즉, 나의 이 것은 그들이 보지 않을 것이고, 보더라고 감히 말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현재 존경하는 많은 감정가, 권위자들은 원래 학문이 그다지 단단하지 못하다. 어떤 사람은 유리창의 도제출신이다. 본 것은 많고, 경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예술적인 오성(悟性)이나 내재적인 수양은 부족하다. 다만, 중국인들에게는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나쁜 습성이 있다. 그리하여 서예계와 감정계에서 많은 말도 되지 않는 현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국가, 민족과 문화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왕내동은 그냥 웃었다.

 

서예감정은 4급으로 나뉜다

 

왕내동은 서예작품을 감정하면서, 중점을 북경고궁과 타이페이고궁박물원에서 이미 출판한 서예명작에 두었다. 그는 서예의 원본을 그다지 많이 본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인쇄품과 출판물을 가지고 연구했다. 즉, 도판을 가지고 연구한 것이다. 그는 이런 것도 괜찮다고 본다. "나는 인쇄품에서도 북경고궁과 타이페이고궁박물원의 많은 소위 국보가 모두 위작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실물을 볼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닌가"

 

왕내동에 따르면, 진위감정은 단순히 종이와 묵적이 그 시대인지, 도장이 맞는지 아닌지 등등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예작품 자체의 예술가치이다. 예술을 감정하려면 반드시 예술적으로 예술품이 내뿜는 진실한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감정가는 단순히 종이, 필묵, 도장등등의 기본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의 작품에서 작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 즉 작자와 예술적으로 느낌이 통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말했다.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왕희지의 <<이모첩>>을 일반적으로 왕희지의 초기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작품은 무측천이 "어람(御覽)"하기도 했고, 건륭황제가 위에 "어람"이라는 큰 도장을 찍어놓기도 했다. 왕내동의 평론은 "이 첩의 필법은 졸렬하고, 마치 글을 조금 아는 보통 백성이 쓴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는 필법, 구조, 글자를 하나하나 따져서 첨예하게 분석했다. 읽는 사람의 가슴이 다 떨릴 지경이다.

 

왕내동의 감정글을 읽다보면, 그는 아주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뛰어난 예술일수록, 이러한 개인적인 열렬과 체온의 방식으로만 이해하고, 진입하고 호흡할 수 있다. 만일 왕내동 선생의 감정에 관한 성숙된 이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손쉽게 그를 '미치광이'로 볼 수 있다. 그는 서예감정에는 4급으로 나뉜다고 한다:

 

제1급: 잠정진적(暫定眞迹).  왜 잠정적으로 진짜 작품이라고 하는가? 그에 따르면, 몇명 감정소조의 사람들이 어떤 작품을 감정해달라고 요청받았을 때, 이 몇 사람으로 구성된 감정소조가 감정하여 진품이라고 한 것일 뿐이다. 모두가 인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행정역량을 동원하여 진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욱 정확하게 하기 위하여는 아무리 권위자라고 하더라도 그저 '잠정적으로 진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2급: 사진(似眞). 진짜같다는 뜻이다. 약간 차이가 있어서 어떤 요소때문에 확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누구누구가 쓴 글같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3급: 의위(疑僞). 가짜로 의심된다는 뜻이다. 불확정적인 요소가 더욱 많아서, 명확히 누구누구가 쓴 글이 아닌 것같으므로 기본적으로 위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작으로 의심된다'고 하는 것이다.

 

제4급: 안품(品). 명백한 가짜이다.

 

그가 구분하여둔 감정기준을 이해하면, 그가 조금도 미치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편향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실질을 중시하는 굳은 태도가 그의 격정과 학술의 날카로움을 함양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현재 학술행정화의 체제하에서, 왕내동은 거의 재야학자이다. 그러므로 쓸쓸할 수밖에 없다. 그는 마음 속으로 잘 알고 있을것이다: 자신은 그저 전인미답의 '멍청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쇠처럼 단단한 이익체제하에서, 그의 목소리는 미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비록 업계내의 전문가들이 그를 대거 칭찬하더라도, 그는 이익의 철판에 눌려 지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하늘은 알고 있다" 학자의 사명과 의의는 세속적인 댓가를 얻는데 있지 않다. 국가의 정식출판물에서 한 학자의 열정적이고 천진한 사상과 발견을 기록해 둘 것이다. 후인들에게 남겨서 다시 감정하게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