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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가

중국식 상권(商圈): 구락부의 등장

by 중은우시 2010. 4. 26.

글: 중국주간

 

화의(華誼)가 차스닥(ChiNext)에 상장했다. 왕충군(王忠軍), 왕충뢰(王忠磊) 형제의 배후에는 다른 형제들이 있다: 마운(馬雲), 강남춘(江南春)과 노위정(魯偉鼎); 중량(中糧)이 몽우(蒙牛)를 인수한데에는 녕고녕(寧高寧)과 우근생(牛根生)이 중국기업가구락부의 '절친'이기 때문이다; 범해(泛海)가 연상(聯想)의 지분을 인수한 것은 노지강(盧志强)과 유전지(柳傳志)가 태산회(泰山會)의 오랜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의 이야기를 함께 놓고 보면, 바로 재미있는 현상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현재의 기업계는 일종의 구락부 성격의 사교권이 있다. 이 사교권내에 들어간 인물은 모두 유명한 기업가들이고, 그들은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도와주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나눠 먹는다. 강호(江湖)의 색채가 농후하다.

 

우리는 4가지 이러한 새로운 상권을 놓고 분석해보도록 하자. 그것은 가장 활발한 중국기업가구락부, 역사감이 가장 강한 민영기업가조직인 태산회, 논단적인 성격이 가장 농후한 아포력(亞布力)논단(중국기업가논단) 및 기업가동창의 성격이 짙은 화하동학회.

 

이들 조직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형성되었고, 기업가들은 여기에서 공동작전을 펼친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만족감을 가지고, 모든 사람의 역량을 이용하여 사회영향력을 끌어올린다. 그들은 쉽게 접촉하여, 뉴스매체에서 떠드는 마케팅사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들의 실력을 무시할 수 없다. 조직활동시 각분야의 인사들이 속속 나타난다. 그들은 학식이 있고, 돈도 있다. 그들은 환경보호와 자선활동도 조직하고, 기업가의 이미지를 끌어올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상권과 사회의 관계를 말해준다. 중국의 전통적인 권자문화(圈子文化)가 현재의 시장경제에 반영된 것이다. 중국의 근대이래의 상업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말해준다. 완벽한 시장경제체제는 이익을 쫓는 행위를 규범화하고, 기업과 개인의 자율을 강화한다. 이런 상권은 비로소 사회를 진보시키는 일종의 건강한 상업역량이 된다. 사회에서 부자를 미워하는 심리를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되거나 회식이익집단이나 새로운 권력귀족계측으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10월 30일, 십년간 칼을 갈아오던 중국창업반이 심천에서 개장되었다. 첫날에 122.74%나 상승했고, 화의형제의 동사장인 왕충군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와 함께 개장의식에 참가한 사람은 회사 CEO인 왕충뢰, 산하의 감독 풍소강등이다. 부동사장이자 3대주주인 마운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때 그가 보유한 1310만주의 화의형제주식은 그 가치가 8.34억위안이나 되었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마운이 왜 영화오락회사에 지분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왕충군등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는 또 어떻게 화의형제의 동사회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이것은 모두 기업가들의 권자(圈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한다.

 

화의형제의 모집의향서에는 마운이 이 회사에 지분참여한 과정이 나타난다: 2006년 6월, 마운은 53.5만위안의 가격으로 화의형제 10.7%의 주식을 인수한다. 곧이어 화의형제 동사회에 들어간다. 그후 3년간, 화의형제는 여러번 증자와 지분변경을 거쳤지만, 마운의 지분율은 항상 10%이상이었다. 2008년 1월, 마운은 화의형제 동사회의 부동사장이 되고, 지금까지도 그 직위는 유지하고 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마운은 화의형제 18명의 발기인중 한 명이다. 현재 회사의 실제지배인인 왕충군, 왕충뢰 형제를 제외하고, 지분이 가장 많은 주주이다. 또 다른 두 명의 유명한 화의형제주주는 강남춘(분중전매 동사회 주석)와 노위정(만향집단 총재, 노관구의 아들)이다. 각각 590.4만주를 보유하여 4.69%의 지분율을 가지고 있다.

 

노위정의 만향집단의 주업은 제조업이다. 화의형제의 오락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교묘하게도, 노위정과 마운은 모두 절강상인에 속한다. 그들은 공동으로 강남회를 발기하고 투자했다. 그들은 자주 만난다. 그래서 마운은 노위정을 화의형제에 소개했다. "강남춘과 노위정이 처음으로 화의형제의 지분을 매입했을 때, 일부분은 마운이 그들에게 매각한 것이다."

 

마, 강, 노의 세 사람은 지분을 인수할 때 아주 싼 값에 인수했다. 어떤 매체에 따르면 주당 0.5위안가량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화의형제의 상장가격인 63.66위안으로 볼 때 그들의 투자는 백여배나 폭리를 얻었다.

 

그들의 남다른 투자안목에 놀랄 필요는 없다. 사실상, 마운과 왕충군, 알리바바와 화의형제는 일찌감치 남다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운의 성공역사를 추적해보면, 한 사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나중에 장기중의 처가 된 반형만이다. 1996년, 절강이 고향인 반형만은 마운을 북경에서 장기중에게 소개한다.

 

마운은 무협지를 좋아한다. 그리하여 장기중을 아주 존중했다. 그리고 장기중의 프로젝트에 찬조를 했다. 2006년의 <<신조협려>>는 바로 마운이 투자한 것이다.

 

투자에는 보답이 있는 법이다. 2005년, 막 야후중국을 인수한 마운은 야후검색의 국내에서의 지명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그해 말, 그는 장기중, 진개가와 풍소강등 3대감독으로 하여금 광고를 찍게 한다. 그리고 동시에 세 사람이 참가한 '야후수성"활동을 시작한다. 당시에 국내는 '선발전'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기중 등이 참가하였다는 것은 야후검색의 선전효과를 아주 높여주었다.

 

장기중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마운의 촉각은 풍소강과 회의형제의 고위층으로 연결된다. 2004년말에 공연된 풍소강의 연말연시영화 <<천하무적>>에서 범위등이 연기한 강도단은 모든 사람이 작은 깃발을 들고 있는데, 바로 "타오바오망"이라는 글자였다.

 

나중에 쌍방의 협력은 더욱 깊이를 더해간다. 먼저 타오바오망은 1위안을 시작으로, 인터넷플랫폼을 이용하여 극중 스타들이 사용할 도구를 경매한다; 곧이어, 극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시 광고 <<지부보가 있으면, 도적이 없다>>는 것을 찍어 알리바바를 도운다. 이렇게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도우게 된다. 브랜드와 지명도는 이로 인하여 상승했다.

 

마운이 화의형제에 지분참여한 것과 마찬가지로, 상장전에 잘아는 친구에게 지분을 주는 것은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우근생이 알리바바의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을 때, 그 회사의 10만주 주식을 보유했다. 이는 2007년 홍콩상장한 알리바바에 있어서 의미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전에 몽우유업은 이미 현지의 투자자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바이두의 CEO인 이언굉과 망이(넷이즈)의 CFO인 이정빈은 회사가 일찌기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된 경험이 있으므로, 나중에 신동방의 사외이사가 되고, 2006년 유민홍이 뉴욕거래소에 상장하는데 큰 공로를 세운다.

 

기업이 상승시기에 있을 때는 서로 도우고, 이익을 서로 나눈다. 이와 비교하여, 어느 하나가 곤란에 처하게 되면 다른 쪽이 나서서 도와준다. 이때는 기업가들간의 교분이 더욱 깊어진다. 우근생, 녕고녕, 유전지와 노지강등은 이런 경험을 했다.

 

2008년 9월, '멜라민'사건으로 몽우유엽의 주가가 폭락할 때, 몽우는 일부 지분을 모건 스탠리에 저당잡혀 있었다. 주가하락후에는 보증금을 추가로 납입할 수 없었다. 회사는 외자에 인수될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우근생은 여러 유명한 기업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금방 유전지, 유민홍등이 적으면 5천만위안, 많으면 2억위안의 긴급구조자금을 보내준다. 위기를 넘긴 후인 2009년 7월, 몽우는 다시 중량집단과 후박기금의 61억홍콩달러라는 거액의 투자를 받아들인다. 이 조치로 중량과 후박은 몽우의 20%지분을 손에 넣고, 최대의 단일주주가 된다. 몽우는 이로써 외자에 인수될 위험을 완전히 벗어난다.

 

비록 이번 인수는 '대식품개념'과 '전산업체인양유식품'등을 바탕으로 하지만, 녕고녕과 우근생이 전체 과정에서 보여준 '의기투합'은 분석인사들에 따르면 두 사람의 사적인 교분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비교적 분명한 증거는 중량이 지분인수한 후 우근생과 그의 팀들이 계속 몽우를 이끈다는 점이다. 중량집단은 11명의 동사자리중 단 3명만 보낸다. 그것도 모조리 비집행동사이다. 녕고녕은 나중에 매체에 말했다. 지분비율이 기본적으로 안정되면, 중량은 몽우의 지분을 계속 늘이지 않겠다. 이것은 결국, 우근생의 몽우 내에서의 지위는 장기간 안정적으로 보전될 것이라는 말이다.

 

내몽고의 한 신문은 두 사람의 친밀한 사이를 보여주는 것을 보도했다: 2009년 6월 30일, 중량집단과 코카롤라가 합작한 병입공장이 후허하오터시 허린현 성락경제원구에 지어진다.

 

그 부지는 몽우와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기공식에서 접대임무를 담당한 차량중 최소한 4대의 버스는 몽우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중량코카콜라가 이 공업원구에 들어온 것은 우근생이 다리를 놓아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노지강과 유전지가 손을 잡고 만든 '범해의 연상 지분참여'도 서로 도우는 우정이 그 속에 들어 있다.

 

9월 8일, 범해집단은 27.55억위안의 가격으로 연상지주의 29%지분을 인수했다. 그리하여 제3대주주가 된다. 이 조치는 연상지주로 하여금 유전지시대로 쉽게 돌아가게 만들었다.

 

개조후 5인동사회에서 2인은 국과지주에서 오고, 2인은 직공지주회에서 왔다, 1인은 범해집단에서 왔다. 유전지가 동사장이 되었다. 이전에 연상지주의 7명 동사중에서 4명이 국과지주에서 오고, 유전지는 겨우 부동사장이었다.

 

나중에 노지강은 매체에 이번 합작의 과정을 설명하며, "범해와 연상의 사이에는 나와 유총재 혹은 연상집단경영지간에 장기간의 상호이해와 일정한 우의가 있었다. 이 우정은 신용의 속에서 건립된 것이다. 신용은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의사결정과정이 비교적 빨랐다.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이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의 근거였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2004년경, 범해집단은 적지 않은 토지를 계약한 바 있고, 그해 마침 '8.31"조치(그해, 국토자원부, 감찰부의 규정으로 8월 31일이후 역사가 남긴 문제라는 이유로 협의방식으로 경영성토지사용권을 출양할 수 없으며, 국유토지사용권은 반드시 공개입찰방식으로 출양해야 한다고 규정했다)로 범해의 자금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연상이 범해를 많이 도와주었다. 우리는 이를 잊을 수 없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들 사례는 기업가들간의 사적인 교분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적인 교분의 배후에는, 기업가조직이 있다. 이러한 조직은 구락부, 논단(포럼), 동창회등의 형식으로 나타나며 그들의 교분을 강화시켜준다.

 

위에서 언급한 마운, 왕충군, 우근생, 녕고녕, 유전지, 유민홍, 강남춘등은 모두 중국기업가구락부의 회원이다. 이 구락부에는 그들의 친구로 초상은행이 마울화, 하이얼의 장서민, 소호중국의 반석흘등 최고의 기업가들이 있다.

 

그들은 조직을 구성하여 그들 중 한 사람의 기업을 방문하곤 한다. 사업을 기획할 때, 그들은 먼저 권내의 친구를 찾는다. 친구가 곤란에 처하면, 다른 친구들이 적극 도와준다.

 

우근생과 녕고녕은 함께 선언했다: "중량이 몽우를 인수한다" 그후 매체는 이렇게 분석했다: "몽우가 이번에 끌어들이는 투자자는, 중량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마 중국기업가구락부의 또 다른 기업이었을 것이다."

 

유전지와 노지강의 연원은 또 다른 기업가 상권이다.

 

노지강은 회고한다. 그와 유지강이 알게 된 것은 1990년대의 태산산업연구회라고. 이것은 일찌기 중국기업가구락부의 기능과 비슷한 살롱이었다. 당시 민영과기기업계의 최고급인물들이 활약했다. 그중에는 만통집단의 동사국주석인 풍륜, 거인망락 동사장 사옥주등이 포함된다.

 

풍륜은 화하동학회의 주요한 구성원이기도 하다. 장강상학원등 EMBA반동창의 명의로 조직한 살롱은 기업가구락부의 또 다른 형식이다.

 

홍콩백사달공사의 동사장인 구아평과 정천자산관리공사의 동사장 왕병과 우근생은 모두 장강상학원의 동창이다. 동창간의 우의는 그들을 돋보이게 했고, 몽우위기의 기간중에 몽우의 주식을 사들여주었고, 우근생이 주가를 안정시키도록 도와주었다.

 

사적인 교분은 이들 조직을 존재하고 발전하게 하는 핵심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반적으로 비교적 드러내지 않는다. 어떤 경우는 대외적으로 회원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지간에, 이들 기업가에 있어서, 상권은 아주 좋은 자원네트워크이다.

 

일찌기 2005년 CCTV중국연도경제인물 후보자에 오를 때, 마운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신의 가장 큰 재산은 친구라고. "만일 이 회사를 떠나서 다른 문으로 들어가더라도 전화만 걸면 1000만달러는 삼일내에 구좌에 입금될 수 있다"

 

4년후, 이개복은 마운의 가설을 현실로 만들었다.

 

2009년 9월 4일, 그는 4년간 일하던 Google을 떠나겠다고 발표한다. 3일후, 그는 이미 8억위안의 투자약속을 가지고 창신공장을 만든다. 그에게 투자한 사람들은 모두 저명한 기업가들이다. 미국중경합집단 동사장 유우환, 유투브창시자 진사준, 폭스콘 동사장 곽태명, 유전지 및 유민홍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개복의 오래된 친구들이다. 전화를 하고, 미국에서 카오야를 같이 먹고, 일본음식점에서 사시미를 함께 먹으면서 만들어냈다.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 투자자들 중에서 사업계획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유전지밖에 없는 것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