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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논쟁/조조무덤논쟁

조조 무덤은 가짜인가?

by 중은우시 2009. 12. 30.

글: 온여군(溫如軍)

 

하남성 안양에서 조조의 무덤이 확인되었다는 뉴스가 나온 후에, 전문가, 네티즌들 중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들 의문은 기본적으로 조조무덤으로 확정하는데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우스개식으로 믿지 못한다는 의사를 이렇게 표명한다: "조조무덤에서 두개골이 두 개 발견되었는데, 고고학자들이 감정을 해본 결과 그중 하나는 조조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조가 어렸을 때의 것이다."

 

4가지 의문:

 

첫번째 의문: 가장 유력한 증거는 정규발굴을 거친 것이 아니다.

 

저명한 수장가인 마미도(馬味都)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위무왕(魏武王)'이라고 새겨진 석패(石牌)와 석침(石枕)의 두 가지 가장 유력한 증거가 고고발굴을 통하여 정상적으로 발굴된 것이 아니라, 도굴범의 수중에서 얻어낸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하여 발굴책임자인 반위빈(潘偉斌)은 "마미도에게 조조묘의 석패를 가지고 있는지 물어봐라. 그가 만일 가지고 있다면, 진위여부를 감정하고나서 말하라고 해라"고 말했다

 

두번째 의문: 화상석(畵像石)은 한나라때의 공적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중국정법대학 중문과의 박사지도교수이자 선진양한문화연구 전문가인 황진운(黃震雲)은 이렇게 지적한다. 화상석은 묘실건축의 구성부분이다. 현재의 보도내용으로 보면, 화상석을 뜯어낸 후에 남은 동굴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 화상석의 내용은 그가 알고 있다. 바로 해하지전(垓下之戰)이다.

 

그림은 3층으로 나뉘는데, 제1층에서 그린 것은 항우가 길을 묻는 것이고, 농부에 의하여 소택지로 잘못 인도된다. 두번째 층은 해하지전의 광경이다. 항우가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하여, 그를 따르는 부대를 넷으로 나누어 4 방향으로 향하게 하였다. 세번째 층에서 얘기하는 것은 항우와 오강정장이 얘기하는 광경이다(오강정장은 항우에게 배를 타라고 권하고, 항우는 타지 않겠다고 한다). 조비는 이미 한나라를 찬탈했는데, 어떻게 한나라때의 공적을 칭송하는 내용을 화상석 위에 그려넣을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하여 하남문물국 판공실의 업무인원인 사지효(司志曉)는 나중에 미디어와의 집중인터뷰에서 밝히겠다고 했다.

 

세번째 의문: 문자석패는 마치 창고설명패같다.

 

황진운은 "위무왕상소용격호대극(魏武王常所用虎大戟)"등의 문자외에, 다른 석패에는 "황두이승(黃豆二升)", "도척일(刀尺一)"등등이 있는데, 이것은 창고 안의 설명패에 가깝지, 묘장에서 쓰는 것은 아닌 것같다는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한나라 무덤에서 이런 유사한 물품이 나온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사지효는 역시 미디어와의 집중인터뷰에서 밝히겠다고 했다.

 

네번째 의문: 석패문자는 호랑이를 때려잡은 영웅을 새겼는가?

 

 

 

 

네티즌들은 이런 의문을 내놓았다. 조조무덤이라는 주요한 근거는 유적지에서 찾아내었다는 진귀한 석패 하나인데, 사진으로 보면 아주 분명하게 "위무왕상소용각호대극(위무왕이 항상 사용하던 호랑이를 때려잡는 큰 창이라는 뜻임)"이다.

 

조조는 생전에 한헌제에 의하여 "위공(魏公)", "위왕(魏王)"에 봉해졌지만, "위무공(魏武公)" 혹은 "위무왕(魏武王)"이라고 칭해진 적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조조가 죽었을 당시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조조가 묻힐 때 부장품인 물건에 '위무왕'이라고 쓸 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렇게 추측한다. "위무,왕상소용각호대극(魏武,王常所用虎大戟)' 즉, 위무(魏武)와 왕상(王常)이 사용하던 호랑이를 때려잡는 큰 창이라고. 위무와 왕상은 아마도 민간에서 전해지는 호랑이를 때려잡은 전설적인 영웅일 것이라고 본다. 그들의 위엄을 빌어 무덤에 간사한 무리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반위빈은 조조는 한나라의 신하이고, 동한정권의 승상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 동한정권의 한헌제는 그를 위무왕이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한다. 조조의 묘에서 발굴된 문물에 '위무제'라고 새기지 않고, '위무왕'이라고 새긴 것은 역사에 부합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