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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상해 이야기

상해의 극동경제중심의 꿈은 멀어지는가?

by 중은우시 2009. 8. 18.

글: 나천호(羅天昊)

 

엑스포(世博)이 가 다가오면서 상하이는 혹약재연(或躍在淵, 주역 건괘의 하나로 연못에서 도약한다는 것을 위험은 없지만 아직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쓰였음)하고 있다.

 

올림픽이 베이징에 가져다준 의미처럼, 상하이도 엑스포가 전국 혹은 극동경제중심도시라는 관을 씌워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유감스러운 점은 역사가 상하이에 기회를 주었음에도, 상하이는 이를 붙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 경제국면이나 중국의 미래경제발전추세를 보면, 상하이는 중국경제중심과 극동경제중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하이의 "극동경제중심"의  기억은 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지만, 이런 지위는 당시의 특수한 시대상황이 만들어준 것이다.

 

항구의 위치가 좋았으므로, 1842년 <<남경조약>>이 체결된 후, 상하이는 영국의 통상항구중 하나가 되었다. 나중에 열강들이 앞다투어 상하이에 조계를 설치했다. 조계의 존재는 전쟁의 불똥이 튀지 않도록 해주었고, 실질적으로 독립된 지위와 충분한 국제적인 연결을 갖게 해주었따. 그리하여 동서방무역교류의 중심이 되었다. 1930년대에 상하이는 홍콩과 도쿄를 추월하여, 극동에서 가장 번영항 항구와 경제, 금융중심이 되었으며, '동방의 파리'로 칭송되었다.

 

동시에 상하이는 민국시대의 수도인 난징에서 매우 가까웠다. 당시 민국정부는 실질적으로 쌍도제(雙都制)를 실행했다. 난징은 정치수도였지만, 4대가족이 장악하고 있던 몇 개의 대형은행의 본점은 하나도 예외없이 모두 상하이에 소재했다. 상하이는 사실상의 경제수도였다. 당시의 전국경제자원이 집중되는 곳이었다.

 

다만,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상하이는 점차 우세를 상실한다.

 

신중국은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텐진은 베이징의 병풍역할을 한다. 상하이는 더 이상 민국시대처럼 독주하는 지위를 누릴 수 없었다. 모택동시대에 상하이는 비록 '중국경제의 제1도시'로 계획되었지만, 중국의 경제발전이 장기간 정체되면서, 난장이중에 조금 큰 편이지, 거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2008년의 전세계도시GDP에서 도쿄는 전세계 1위를 차지했다. 서울, 오사카, 교토, 요코하마, 나고야, 키타큐슈, 홍콩등의 아시아도시들도 모두 상하이를 앞질렀다. 타이페이, 싱가포르는 바짝 뒤를 쫓고 있다.

 

사실상, 일본, 한국, 타이완등 국가와 지구가 굴기하면서, 상하이는 점차 쇠락했다. 2차대전후, 일본경제가 신속히 발전하면서, 도쿄는 극동경제중심이 된다. 세계제2대경제대국의 수도로서, 국제적 영향력은 상하이를 훨씬 넘어선다. 2008년, 도쿄의 경제총량은 상하이의 거의 10배에 달한다. 1970년대이후 한국의 서울이 점차 굴기했고, 1980년대에는 올림픽을 계기로 국제화대도시로 성장한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주요한 자유무역항으로써, 그 지위가 상하이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타이완의 경제성장으로 타이페이, 까오슝등도 아시아의 주요도시가 되었다.

 

20세기초, 아시아는 도쿄, 상하이, 홍콩이 있을 뿐이었다; 21세기초, 이미 군웅할거시대가 디었다. 상하이는 비록 동방지도(東方之都)로 만들기 위하여 극력 노력하지만, 그 지위는 많이 희석되고, 그 광망은 점차 암당해졌다.

 

국내에서, 상하이의 영향력은 날로 퇴색한다.

 

개혁개방이래로, 중국의 각 지방은 발전의 발걸음을 가속화했다. 이러한 자발적이고 내부추진적인 발전은 동력과 지속성에서 행정역향에 의한 계획적인 배치보다 훨씬 강했다.

 

개혁초깅 상하이는 기회를 잃는다. 199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개혁을 진정으로 시작한다. 선전과 주강삼각주, 장강삼각주의 다른 도시들에 뒤졌을 뿐아니라, 일부 내륙도시들에도 뒤쳐졌었다. 주강삼각주의 굴기는 당시의 경제중심을 상하이에서 선전 광저우로 옮기게 된다.

 

장강삼각주의 굴기는 일정한 의미에서 상하이의 지위를 증강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상하이의 지역중심으로서의 지위마저 하락시켰다. 1978년이래로 상하이가 주강삼각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반에서 겨우 1/4로 하락한다. 쑤저우(蘇州), 우시(無錫), 항저우(杭州), 닝보(寧波)등 도시는 신속히 발전했다. 쑤저우를 예로 들면, 장강삼각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8년의 5.4%에서 2006년에는 12.19%까지 늘어난다. 경제총량에서 상해 바로 다음가는 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제조업분야에서는 장강삼각주의 다른 지역이 상하이를 전면적으로 추월하고 있다.

 

중국의 지역경제가 집단적으로 굴기하는 것, 그리고 조각조각 나뉜 정치와 경제체제는 상하이가 경제중심이 되는 것을 제약하는 요소이다.

 

비록 최근에 상하이는 중앙에 의하여 중국금융중심도시로 비준되었지만, 금융관리감독기관, 중앙은행, 4대국유은행의 본점은 모조리 베이징에 소재한다. 상하이는 천하를 호령하는 힘이 없다. 동시에 중국의 특수한 체제하에서 은행운영은 지역적으로 진행된다. 상하이의 건설은행은 내지의 어느 성의 건설은행보다 급이 높지가 않다.

 

상하이를 중국금융중심으로 선포할 때, 베이징, 텐진, 선전, 충칭, 다롄, 우한, 시안, 항저우등도 연이어 지역 내지는 전국금융중심을 선언한다.

 

이러한 조각조각으로 분할된 모델은 상하이가 전국자원을 흡수할 수 없게 만들고, 전국경제자원을 이용할 능력을 갖출 수 없게 만든다.

 

상하이와 비교하면, 선전은 홍콩을 배후에 가지고 있다. 앞으로 선전-홍콩통합이 이루어지면, 이는 선전에 큰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전략적인 종심(縱深)은 상해를 훨씬 넘어선다.

 

<<선전종합배투개혁시험총체방안>>이 비준을 받은 후, 선전은 특구를 롱강, 바오안 및 광밍신구로 확대했다. 이렇게 하여 선전특구의 면적은 현재의 다섯 배가 된다. 현재, 선전특구는 전시면적의 5분의 1인데, 52%의 생산가치를 창조한다. 이전에 선전특구의 유한한 공간이 공업원구, 과기원구, 상업구등으로 겹겹이 나뉘어져 있었고, 각지역경제모델은 서로 독립되어 있고, 산업은 통합될 수 없었다. 일단 선전이 특구지역을 확대하면, 미래에 뿜어낼 에너지는 방대할 것이다.

 

현재, 홍콩과 선전의 두 지역의 면적은 3000평방킬로미터이고, 상주인구는 1500만이다. 두 도시가 연합하면, 피차간의 전략종심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홍콩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주요한 국제금융센터이다. 선전은 금융업이 전도시 GDP의  9%를 차지한다. 선전과 홍콩은 금융분야의 합력전망이 아주 밝다; 홍콩의 서비스업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달한다. 전세계 주요도시중 비중이 가장 높은 편이다. 선전의 발달한 제조업과 국내에서 첫손 꼽히는 하이테크산업이 있어 서로간에 산업을 보완해줄 수 있다; 선전의 기업은 국내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홍콩은 강대한 대외진출능력을 갖추고 있다, 선전-홍콩이 통합되면, 선전은 국제적인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홍콩의 자유무역항의 지위는 선전을 물류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측면에서, 홍콩은 여러해동안 전세계에서 경제가 가장 자유로운 도시로 알려져 왔다. 건전한 사법체계와 엄밀한 지적재산권조례가 갖추어져 있고, 자유무역항의 신분과 체제, 화폐의 자유태환, 자금의 자유로운 진출입, 인원의 자유로운 이전, 글로벌정보의 장애없는 유통으로 선전은 관리모델에 있어서 항상 홍콩을 배워왔다. 내지에서 관리모델이 가장 현대화된 도시이다. 이런 장점은 전국에서 독보적이다. 일체화된 선전-홍콩은 상하이와 비교하여 굴기하는 중국을 대표하여 글로벌경쟁에 참여하고, 중국경제중심이 될만하다. 뉴욕, 런던, 도쿄에 대항할 만한 것이다. 새로운 대형국제중심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주강삼각주의 9개도시는 모두 하나의 성에 속해 있다. 지역적으로 인접해 있을 뿐아니라, 발전수준도 비슷하다. 그리고 비교적 가까운 산업기초를 지니고 있어 손쉽게 일체화할 수 있다. 그러나, 장강삼각주의 16개도시는 강소, 절강, 상해의 3 군데 성급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행정협조비용이 상당히 높다. 심지어 많은 도시가 상하이와 동질화경쟁을 벌인다. 그리하여 일부 중심기능이 나뉘어진다. 외자유치방면에서는 쑤저우가 상하이에 근접하고 있고, 닝보는 항구, 해운측면에서 상하이와 맞먹고 있다. 민영기업의 능력에 있어서는 장강삼각주도시들이 상하이보다 낫다. 상하이에서 옮겨가는 민영기업들 중 다수가 이들 주변도시로 이주해가고 있다. 항저우, 난징은 성회도시로서 그 성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는 상하이의 영향력을 감쇄시킨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선전은 홍콩과의 사이이 상호보완성이 있을 뿐아니라, 주강삼각주의 핵심도시인 동관, 후이저우와도 상호보완을 이룬다. 선전-홍콩, 광저우-포산, 주하이-마카오를 축으로 한 주강삼각주는 전국적으로 파급될 수 있는 산업의 상호보완성을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이 선전의 삼중전략종심은 전국의 자유경제경쟁체제의 역할에 있어서 다른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일본이 유럽의 단기쇠락과 미국굴기의 기회를 잡아, 미국경제체제에 편입되어 굴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굴기는 앞으로 많은 도시들이 잠재적인 중심이 될 것이고, 상하이는 그중 목소리가 가장 큰 도시이며, 공간도 가장 거대한 도시이다.

 

상하이의 미래발전은 금융센터를 건설하는 등의 발전대전략 외에 더욱 필요한 것이 '소프트웨어'전략과 장기전략이다.

 

도시포지셔닝에 있어서, 상하이의 지나치게 높은 정치적 지위는 사회 및 경제종합개혁에 제약이 될 수 있다. 미래에 혹은 적극적으로 도시의 행정급별을 낮추어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사회유동성, 활력과 창조력의 측면에서, 상해는 일부 선전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전세계 및 전중국범위에서 미국이 굴기할 때도 그랬고, 선전이 굴기할 때도 그랬고, 대량의 이민이 사회계층의 유동성을 갖게 해주며, 일종의 다원적이고 광범위한 현대문명을 배양하며, 사회활력과 창조력에 큰 작용을 하였다. 중화민국시대의 상하이는 마찬가지로 이민의 도시이며 활력의 도시였다. 동시에 더욱 중요한 것은 상하이는 시장화측면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금융센터가 되는 것이든, 아니면 '왜 상해에는 마윈(馬雲)이 나오지 않는가?'라는 곤경도 타개하는 것이든 시장화는 상하이의 미래장기발전방향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