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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무술

곽해(郭解): 한무제에 멸문당한 무림제일고수

by 중은우시 2009. 7. 10.

글: 수은하(水銀河)

 

사람이 있는 곳에는 강호(江湖)가 있고, 강호가 있는 곳에는 자연히 대협(大俠)이 있다. "협(俠)"은 중국에서 오래된 단어이다. 멀리는 춘추전국시대에 협객은 이미 역사상의 제1차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때는 예의가 무너지고,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며, 사상의 구속을 받지 않던 때이다. 이긴 자가 왕이 되는 것이 당시의 법칙이었다. 그리하여 대량의 협객이 나타난다. 그들은 의리를 중시하고 목숨을 가벼이 여겼다. 무공으로 금지된 일들을 해냈고, 국가의 법률은 깡그리 무시하면서, 검 하나에 의지해서 천하를 횡행했다.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전제(專諸), 요리(要離), 섭정(政)등이 있다. 그들은 한 몸의 힘을 가지고 혹은 크게 혹은 적게 중국의 역사를 고쳐 썼다.

 

난세는 협객이 흥성하는 토양이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에는 협객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대사상가 한비자는 그들을 아주 미워했다. 그래서 오두(五)의 하나로 꼽았다. 그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 진시황은 육국을 통합한 후, 반협객행동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그리하여 협객의 숫자가 크게 감소한다. 진나라를 이어 나타난 서한왕조에는 사회안정과 공공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협객들에 대하여 전면적인 압제정책을 계속 쓴다.

 

그러나 압박이 있으면 반항도 있게 마련이다. 진시황마저도 암살하려고 시도했었던 협객들인데, 어찌 고분고분 관청의 탄압에 수그러 들겠는가. 그리하여 그들은 속속 자신의 방식으로 반항했다. 한나라초기에 몇몇 황제는 황노지술(黃老之術)을 숭상하여, 무위이치(無爲而治)를 숭상했다. 협객들이 끼어들 틈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웅재대략의 한무제가 등장함에 따라 그들의 시대는 철저히 끝장난다.

 

무림을 철저히 손봐주기 위하여 한무제는 튀어나오는 새를 쏘아죽이는 방법을 쓴다. 그리하여 당시 강호의 최고대협인 곽해를 처치한다. 이 곽해라는 인물은 보통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부친도 명성이 자자한 대협이었고, 한문제(漢文帝)에게 주살되었다. 그의 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협객의 기질을 고치지 못했다. 그는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손속은 남달랐다. 젊었을 때, 곽해는 수완이 악랄했다. 걸핏하면 사람을 죽이곤 하였고, 자주 도굴등의 일을 했다. 나중에 양심이 발현했는지, 아니면 부친이 꿈에 나타났는지, 돌연 사람이 변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원한을 덕으로 갚고, 덕망을 쌓았다. 좋은 일을 하고서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을 구할 뿐, 공을 차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졌다.

 

예를 들자면, 곽대협이 한번은 문을 나서는데, 어떤 자가 단정하지 못한 자세로 길 가에 앉아서 아주 무례하게 그를 꼬나보았다. 제자들은 이를 보고 화를 내서 그 자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곽해는 이렇게 말한다: "고향에서도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의 수행이 부족한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관청의 관리에게 남몰래 이렇게 말한다: "이 자는 내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천경(踐更)때 그는 봐주면 좋겠다." '천경'은 당시에 일종의 노역이었다.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노역을 하는 것은 '천경'이라고 한다. 매월 1회씩 해야 한다. 그런데 천경을 수회 하도록 아무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여 물어보니 곽해가 그를 도와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상의를 벗고, 어깨를 드러내고 곽해에게 사죄하러 간다. 곽해의 영웅사적은 이외에도 많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그의 명성은 갈수록 커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탄복했고 그의 말이라면 따랐다. 이리하여 사회에 하나의 세력을 이루게 된다. 한무제와 조정신하들은 이에 대하여 불안해 했다.

 

원삭2년이 되자, 한무제는 경사를 충실하게 하기 위하여 관중지역에서 자산이 삼백만이 넘는 부자는 자신의 무릉으로 옮겨서 거주하라고 명령한다. 곽해는 비록 이 기준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한편으로 주보언(主父偃)이 한무제에게 이주대상으로 건의했다. 부자상인들뿐아니라 통제를 강화해야할 호걸대협들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일을 책임진 양현연도 이 기회에 곽해라는 현리들을 골치아프게 하는 불안요소를 자기동네에서 내보내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곽해도 이주대상명단에 들어간다.

 

어쩔 수 없이 곽해는 관중으로 이주해온다. 그러나 명성이 너무 크다보니, 그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이 준 전별금만 1천만이 넘었다. 관중에 오고난 이후에도 곽해의 매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호걸들은 앞다투어 그와 사귀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를 태원으로 도망치게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황제가 붙잡으려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도망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결국 곽해는 관청에 붙잡힌다. 한무제는 전혀 망설임없이 그를 사형에 처한다. 죄명은 "곽해는 평민신분의 협객으로 권력과 사기술을 가지고 놀면서 작은 일을 가지고 사람을 죽였다. 곽해 자신은 비록 이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 죄는 그 자신이 살인한 것보다도 엄중하다. 곽해를 대역무도되로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뿌리까지 뽑기 위하여 한무제는 곽해의 일가족을 멸문시킨다. 일대의 명협이 이렇게 짧은 일생을 마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