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민(黎岷)
평균 매일 4번 회의를 하고, 평균 매일 3번 접대장소에 나간다. 그를 만나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복도에 줄을 서있고, 매일 서류를 결재하다보면 밤10시가 넘어버린다...
이것은 시당위원회 서기인 딩스원(丁世文, 가명)의 하루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비록 이제 막 40세가 되었지만, 겉으로 보기에 같은 나이의 사람들보다 훨씬 나이들어 보인다.
중앙의 모고위층의 비서를 하다가 A성 C시의 시위서기로 왔다. 60년대출생의 고급간부로서 딩스원의 관료생활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보청운(平步靑雲)이었다.
아마도, 명문대학을 졸업했고, 학식이 풍부하고, 출신이 좋다는 점은 딩스원과 같은 '낙하산간부'의 공통점이다. 공농병(工農兵)출신이나 바닥부터 닦아서 올라온 50년대생 간부들보다는 선천적인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앞날이 창창한 '낙하산간부'가 지방에서 지내기는 쉽지가 않다. 그들은 지방애서 생존하는 '법칙'을 먼저 익혀야 한다. 지방관료사회의 '생태권'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온 사자가 중국의 삼림에 적응하는 것처럼.
중앙에서 지방으로 온지 겨우 4년이다. 딩스원은 당초의 부시장에서 C시의 시위서기까지 ,이런 승진과정은 다른 간부들이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딩스원과 나이가 비슷한 지방간부는 현장 혹은 처장급간부만 되더라도, 이미 조상묘에서 연기가 날 정도이다.
4년전에, 딩스원은 중남해를 나와서 완전히 새로운 관료의 길을 걷게 된다. A성에 가서 부임하기 전에 딩스원은 일부러 중남해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한번 했다. 그는 알고 있다. A성의 수영장은 중남해의 수영장처럼 얕지가 않다는 것을.
A성에 도착한 후, 딩스원은 일관되게 겸손하고 조용하게 보냈다. 연령이 자기보다 훨씬 많은 부하들에게 딩스원은 말을 하면서, 먼저 앞장서서 의자에서 일어났고, 부하와 함께 쇼파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었다. 만일 각 시의 직속기관의 책임자가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면 최대한 참석했다. 왜냐하면 지방에서는 '술자리에서 인정이 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비록 술을 버티지 못하지만, 그래도 딩스원은 한번에 술잔을 비웠다. 숙사로 돌아온 후 여러번 변기통에 오바이트를 하고, 뱃속이 견디기 힘들지라도.
A성에 부임한 2년간, 딩스원은 열심히 머리를 처박고 일을 했다. 발개위사람들을 데리고 북경으로 가서 프로젝트를 따오기도 하고, 강소절강으로 기업을 유치하러 다니기도 했다. 국가급 산업원구를 신청하기도 했다. 이 기간동안 딩스원은 북경의 인맥관계를 활용하여, 프로젝트를 따내는데 어렵기는 했지만, 모든 것은 그에게 물만난 고기와 같았다. 이것은 아마도 A성의 지도자가 그를 찍어서 내려보내달라고 한 이유일 것이다.
딩스원의 실적은 위아래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서기와 시장의 가장 아끼는 오른팔이 된다. A성에 온 후로 2년동안 딩스원은 거의 자신의 북경에 있는 집은 잊고 살았다. 처자식을 한번 만나보는 것도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거의 3개월이나 반년에 한번정도 만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순조로운 2년간의 배후에 딩스원은 등뒤에서 '차갑게' 노려보는 무수한 눈들을 느끼고 있다. 동료들이 보기에, 딩스원은 상부에서 파견해서 내려보낸 간부이다. 아마도 젊은데다가 앞날이 창창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갈 수 없다고 느낄 것이다. 다만 이런 생각은 그저 일파를 대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와 직급이 비슷하고 거의 은퇴가 가까워진 간부들이 그것이다.
딩스원의 마음 속에, 진정 그와 다툴 상대방은 나이가 그보다 '많은' 성직속기관의 청장, 국장급 간부이다. 이들 간부는 대부분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인민공사 서기에서 성직속기관의 일인자가 된 경우도 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과반(科班)출신이 아니고, 학력도 높지 않지만, 실제경험은 풍부하고, 지방의 인맥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방간부들이 보기에, 딩스원은 상부에 인맥이 있는 그런 간부이다. 중남해에서 나온 딩스원은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신비하고 고심막측함을 지니고 있게 된다.
딩스원은 잘 알고 있다. 자신은 A성에서의 기반이 너무나 얕다는 것을. 군중기반이 비교적 박약하다는 것은 '낙하산간부'가 부닥치는 최대의 도전이다. 자신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딩스원은 부득이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 말을 잘 들어주고, 겸허하고 자신을 낮추며, 힘든 일을 자신이 해서 실적을 내며, 공로를 다투지 않는다.
이것은 '낙하산간부'가 지방에서 생존하는 중요한 법칙이다.
딩스원은 조심스럽게 관료사회의 생존법칙을 준수했다.
"당정군민학(黨政軍民學), 동서남북중(東西南北中)을 꿰뚫는다." 이는 한 시위서기가 하는 일을 전체적으로 묘사한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시위서기가 만일 외교권과 군권을 장악한다면, 업무형태는 거의 작은 나라의 국가원수와 비슷하다.
요직을 맡고 있는 딩스원은 전례없이 압력과 책임을 느끼고 있다. 그는 느슨해질 수가 없다. 부하가 큰 업무량과 계속되는 접대는 부시장의 직위를 달고 있을 때부터 지금의 시위서기까지 4년간 원래 건강이 아주 좋았던 딩스원도 위장병을 얻게 만들었다.
부담이 큰 업무는 딩스원에게 있어서 별 것이 아니다. 매번 간부를 선발해야 할 때면, 딩스원은 더더욱 골치가 아프게 된다.
마음 속으로는, 딩스원이 능력있고 젊은 간부를 각 시의 직속기관요직에 배치하고 싶다. 그의 선발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일을 잘 할 수 있고, 일을 잘 하려고 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그러나, 매번 인선에 대하여 결정할 때면, 이것저것 고려해야할 일이 많다. 그리하여 사방팔방의 간섭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발개위주임을 뽑으려면, 딩스원이 보기에, 이 직위는 자주 다른 부서를 통할해서 함께 일을 해야하는 위치이므로, 의심의 여지없이 핵심적인 부서이다. 위신도 필요하고 경제운행과 관리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대학본과이상, 경제학관련전공출신이 딩스원이 생각하는 발개위주임의 주요한 기준이다. 그 다음으로는 일정한 위신과 강한 조직협조능력이 필요하다.
다만, 바로 이러한 핵심부서이므로, '다투는' 사람들이 더욱 많다. 위를 통해 얘기하는 사람, 시장이 추천하는 사람, 그리고 모수자천하는 사람, 이러다 보면 5,6명이 경쟁을 하게 된다.
다만 인선은 딱 1명이다. 딩스원은 할 수 없이 이 어려운 선다형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외부의 의견도 살펴주어야 한다. 마음 속으로 확신을 가지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는 일반적으로 민의조사의 방식을 채택한다.
딩스원은 비서에게 긴급통지를 보내여 각처급간부를 회의장으로 오게 한 후에 먼저 이런 처급간부들에게 이번 회의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는다. 회의장에 도착하면, 이들 처급간부들에게 밀봉된 서신을 주는데, 안에는 여론조사서가 들어 있다. 내용은 개인과 그 자리에 있는 처급간부에 대한 평가이고, 실명제문답이다.
딩스원은 이것이 부하를 이해하는데 아주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실명제를 채택하므로, 매 간부는 진실되게 답변한다. 그리고 평가에 책임도 지게 된다.
사실상, 딩스원의 눈앞에 놓인 선다형문제는 이것들만이 아니다. 간부선발임용에 있어서 그는 통상적으로 최선조합, 이해균형, 내외균형의 의견을 취한다. 아마도 업무능력이 발개위주임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경력이 모자라거나, 위신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통계국으로 갈 수도 있다. 아마도, 업무능력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위신이 높으면 최종적으로 발개위주임에 선발되기도 한다. 이때, 딩스원은 왕왕 이러한 발개위주임에게는 업무능력이 아주 뛰어난 오른팔을 하나 붙여준다.
요직에 있으므로, 딩스원은 항상 "부패'와 싸운다. 4년전에 중남해를 나올 때, 그의 상사는 그에게 4글자를 주었다: "절기탐람(切忌貪婪, 절대 탐욕을 내지 말라)"
딩스원의 마음 속으로, 비록 이들 '선물을 보내는 자'들을 경멸하지만, 많은 경우에 선물을 보내는 자들로부터도 미움을 사서는 곤란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과 '태극권'을 놀아야 한다.
이들은 왕왕 보고를 하면서 딩스원이 부주의한 틈을 타서, '봉투'를 떨어뜨리고 간다. 이렇게 되면 딩스원은 아주 불편하다. 통상적으로 비서나 다른 사람을 통하여 '봉투'를 원주인에게 되돌려준다. 이와 동시에 딩스원은 이들 부하들이 너무 놀라거나 걱정하지 않도록, 그는 남몰래 이름을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어떤 일들은 그들에게 처리하도록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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