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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성씨

중국의 기괴한 성씨

by 중은우시 2009. 6. 12.

글: 일대천교668(一代天驕668)

 

중국인의 성씨는 수천년의 발전변화를 거쳐, 원래의 단순한 부족유전을 표시하는 것에서, 점차 독특한 문화원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어떤 성씨는 기괴할 뿐아니라 재미있는 전설까지 담고 있다. 당연히 어떤 때는 난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중국에서 많은 성씨들은 비교적 자주보는 것들이다. 그러나, 일부 성씨는 아주 기괴하다. 예를 들어 방향을 나타내는 "동서남북중(東西南北中)"이라든지, 숫자를 나타내는 "일이삼사오륙칠팔구십(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이라든지; 생활에 쓰이는 "시미유염장초차(柴米油鹽醬醋茶)"라든지; 동물을 나타내는 "낭(狼, 이리), 계(鷄, 닭), 후(猴, 원숭이), 구(狗, 개), 사(蛇, 뱀)...", 심지어 '폄하하는 뜻'을 지닌 성씨도 있다. 예를 들면, "첩(妾), 매(罵, 욕하다), 사(邪, 간사하다), 표(, 계집질하다)..."  어떤 호사가들은 선발대회를 열어서, 5대 기괴한 성씨를 뽑기도 했다. 거기에 뽑힌 성씨는 "사(死), 난(難), 흑(黑), 노(老), 독(毒)"이다. 이 다섯개 성씨는 듣기에도 정말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러나, 이는 성씨문화에서 아주 재미있는 현상을 구성한다.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이들 기괴한 성씨들도 다 내력이 있다.

 

사(死):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성씨는 중국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적은 성씨이다. 주로 중국서북부에 분포하고 있는데, 북위(北魏)시대 소수민족의 4글자짜리 성씨가 줄어져서 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자고이래로 사람들은 모두 "죽음"이라는 글자를 피해왔는데, 누가 입을 열면 '죽음이 왔다, 죽음이 갔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겠는가? 그러나, 이것을 성을 삼았다면 방법은 없는 것이다.

 

난(難): 알려진 바로는 이 성씨는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성씨이다. 이 "난"은 거성(去聲)으로 읽어야 한다. 이  "난"씨는 선비족이 북쪽으로 이주하였는데, 송화강을 당시에는 난간(難江)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여러 곳을 거쳐 난씨성의 선비족은 한반도로 들어간다. 현재 중국경내에 있는 "난"씨는 주로 하남의 네 곳 작은 마을에 분포되어 있다. 대대로 이곳에 거주한 남녀노소는 모두 "난"씨성이다. 이것은 외부인들에게는 재난, 곤란등 유쾌하지 않은 일을 떠올리지만, 그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편안히 살아가고 있다.

 

흑(黑): 모든 문화는 광명정대한 것을 숭상한다. "흑"이라는 글자는 사람들에게 불길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이것을 성씨로 삼았는데, 읽을 때는 "He(賀)"로 읽는다. 그래도 글자로 쓰게 되면 난감하게 된다.

 

노(老): "노"씨성의 유래에 관하여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노'씨성이 "살극달(薩克達)'이라는 만주족이 한족성씨로 바꾸면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미 2,3백년의 역사가 있다고 한다. '살극달'이 원래 만주말로 '늙었다'는 뜻이어서 '노'를 성으로 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광동 불산의 4대토착성씨중 하나인데, 현재는 불산시 남해구 서남에 있는 세노촌(世老村)이 있는데, 이 곳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노"씨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에게 "늙은이"로 불린다. 이 칭호를 별로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늙은이'라는 칭호는 평생을 따라다닌다. 예를 들면 "노동지(老同志), 노소저(老小姐)..."

 

이런 성씨는 사람들에게 난감함을 가져다 준다. 이전에 직장을 다닐 때, "노염(老艶)"이라는 이름을 지닌 여직원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야 부르는데 문제가 없지만 그녀를 "노소저(老小姐)"라고 부르자니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그래서 아예 "소로(小老, 중국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면 성씨의 앞에 小를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라고 불렀다. 그래도 말하다보기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다. 나중에 그녀는 한구(漢口) 순도가(順道街)에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사장이 되었다. "노사장"이라는 칭호가 다시 붙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특이해서 이름을 기억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많은 명함을 찍어서 고객들에게 돌렸다.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녀의 특이한 이름은 많은 단골손님을 만들었다. 그런데, 점점 골치거리가 되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이 이름만 보고서 전화를 걸어오게 되는데, 모두 그녀가 나이많은 줄 안다. 그래서 매번 전화에서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나중에 '노염'은 아예 성씨를 모친의 성씨로 바꾸어 명함에 새기게 된다. "하염(夏艶)"이라고. 그러자 그런 골치거리들은 없어졌다.

 

독(毒): 이 성씨의 유래는 당나라때의 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당나라때 재상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두회정(竇懷正)이다. 비록 권세가 대단했지만, 이 두승상은 천하를 빼앗으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씨황제를 몰아내고 두씨천하를 만들려고 했는데, 황상에게 발각되어 반란은 실패한다. 나중에 화가 가라앉지 않은 황제는 두승상을 징벌하는 의미애서 "두(竇)"와 발음이 비슷한 "독(毒)"을 성씨로 주어 후손들이 사용하게 한다(중국에서는 두는 dou, 독은 du의 발음임). 이 성은 듣기에 아주 놀랍다. 누가 "독선생(毒先生), "독태태(毒太太)"와 같이 일하고 싶겠는가(악독한 남자, 악독한 여자라는 의미)? 이들 성씨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마음씨가 곱다고 하더라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듣기로, 대만 가의현 태보시의 과구리에는 독씨성을 가진 사람이 하나 살고 있는데, 조상은 청나라의 통역관이라고 한다. 몇대를 독자로 내려오다가 지금은 남자 6명까지 번성했다고 한다. 대륙의 각 성에도 이 성씨는 있다.

 

상술한 성씨는 예로부터 있어왔고 '고증'이 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성씨들은 갑자기 나타나고, 유래가 전설적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문(門)"씨가 있다. '문'씨의 기원에 대하여도 여러가지 전설이 있다. 한 가지는 이 성씨는 원래의 성씨가 분할되어 생긴 것이라고 한다. 이전에 "염()"씨가 있었는데, 나중에 형제 두 명이 분가하면서, "염"자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문(門)"씨로 하나는 "삼(三)"씨로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전설에 따르면, 문씨의 조상은 원래 "인(藺)"씨였는데, 나중에 조상이 황상에 죄를 지어서, "인"씨성에서 머리를 잘라내고, 심장을 파내서 "문(門)"자만 남겼다고 한다. 이들 전설은 물론 확인되기 힘든 것들이다.

 

어떤 사람은 성이 "복(宓, 중국발음은 Mi)"이다. 이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강소절강일대에서 이주했다. 사료의 기재에 따르면, 복씨성은 상고시대의 "복희씨(伏羲氏)"에서 왔다고 한다. 고대에 "복(宓)"자와 "복(伏)"자는 서로 혼용되었으므로, "복(伏)"씨성이 "복(宓)"씨로 되었다고 한다. 복희는 고대에 복희(宓羲)라고도 적었다. "복"씨성을 가진 학교선생이라면 항상 학생들에게 나는 성이 "복(宓)"이지, "필(必)"이 아니다라고 얘기해주어야 한다. 사실 이 성씨의 이름을 잘 못읽는 사람들은 학생들만이 아니다, 많은 동료선생들도 마찬가지로 "필선생"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 성씨를 지닌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잘못읽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성이 "축(丑)"이다. 전설에 따르면, 북송시대에 절강 항주의 소(蘇)씨성을 가진 부잣집 아가씨가 황(黃)씨성의 수재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족들은 극렬하게 반대했다.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하여, 두 사람은 도망을 친다. 호낭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두 집안 사람들은 두 사람이 집안의 가풍을 어지럽혔다고 보고 그들의 후손에게 자신의 원래 성을 쓰지 못하게 했다. 자고로 "황축불분가(黃丑不分家, 황씨와 축씨는 한 집안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황수재와 소아가씨는 자손들의 성을 "축"으로 했다. 그런데, 다른 자료에 따르면, 축씨성의 유래는 춘추시대의 뉴()씨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성이 "우(藕)"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 '우'가는 원래 '우'가가 아니었다. 그들의 조상은 조정에서 관리를 지냈는데, 나중에 황제에게 죄를 지어서 혼자서 도망치게 되었다고 한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이 선조는 연못에 몸을 숨겼는데, 연잎과 연근을 이용했다. 당시 추적하던 병사가 가까이 다가왔는데, 그는 마음 속으로 "만일 이번 위기를 넘길 수 있다면 나는 성을 '우(연근)'로 바꾸겠다" 과연 추적하던 병사들이 그를 찾지 못했다. 이때부터 그는 성씨를 독특한 '우'씨로 하였다는 것이다.

 

어떤 성은 "먹는 것(吃)"때문에 성을 바꾼 경우도 있다. 섬서성 반주  영락향에는 "질가촌(叱家村)"이 있고,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질간(叱干)"이라는 복성을 쓴다.

 

전설에 따르면, 전국시대말기에 진나라의 소년재상 감라(甘羅)가 있었다. 그는 조정간신 여불위의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집안이 풍비박산난다. 모든 일족이 연루되는데, 감씨집안의 노인 한 사람만이 겨우 도망쳐 목숨을 건졌다. 하루는 이 노인이 황량한 교외로 도망가고 있는데, 배가 고팠다. 주변에 먹을 것이 없는지 돌아보다가, 순식간에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길가에 쓰러지게 되었다. 언제인지 진나라에서 그를 추적하던 병사 한무리가 앞으로 달려와서 그를 깨웠다. 그리고 그에게 성이 뭐냐고 물었따. 이때 노인은 배가 고파서 말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키며 먹고 싶다는 시늉을 했따. 추적병사는 노인의 성이 감씨가 아니라 '흘(吃)'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풀어준다. 노인은 나중에 반주 영락의 질가촌에 정착하고,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는다. 원래 그가 '흘'자 때문에 목숨을 구한 것으로 생각해서 '감'씨성과 '흘'씨성을 결합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후손들에게 "흘감(吃甘)"이라는 복성을 쓰게 했다. 나중에 이 "흘감"은 점차 바뀌어가서 지금의 "질간"이 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