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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성씨

중국에서 성(姓)과 씨(氏)의 변천사

by 중은우시 2009. 12. 18.

글: 고진(高晋)

 

성씨(姓氏)라는 단어는 현재는 모두 성(姓)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성이 희(姬)라고 할 수도 있고, 그를 희씨(姬氏)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나라이전에는 어떤 사람에 대하여 성이 희라고 하면, 그것을 가지고 그가 희씨라고는 말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은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 당시에는 성과 씨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중화민족의 역사상 성과 씨는 차례로 나타난다. 먼저 나타난 것은 "성"이다. 그 후에 "씨"가 나타난다. 현대인들이 "성씨"라는 단어를 얘기할 때, "성"을 "씨"보다 앞에 두는데, 이는 부지불식간에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성이 나타났을 때는 혈연관계를 대표했다. 현대에 부친의 성이 왕(王)이면, 너도 성이 왕이다. 성은 부계(父係)를 의미한다. 그러나, 처음에 '성'이 대표하는 것은 모계(母係)였다. 네가 성이 왕이라고 한다면 모친의 성이 왕인 것이다. 부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바로 이처럼 중화민족은 처음에 자녀들이 모친의 성을 따랐다. 이것이 바로 성(姓)이라는 글자의 왼쪽에 여(女)가 있는 원인이다. 그러나,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이다. 결국, 이 권리마저도 남자들에게 빼앗겨 버린다. 중국남자들은 처음부터 여자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먼저 오는 것보다는 때맞춰 오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씨"는 비교적 늦게 나타났지만, 갑골문에 나오는 이 "씨"자는 신분을 표시한다. 지위를 표시한다. 고귀함을 표시한다. 역사문헌을 보면,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黃帝)는 "조토명씨(土命氏)"하였다. 그 뜻은 황제가 제후들에게 땅을 나누어주면서, 모든 사람에게 영지를 떼어주고, 이들에게 자신의 영지를 가리키는 지명을 가지고 자기의 "씨"를 삼게 한다. 그 당시의 씨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서주(西周)에 이르러, 정부가 제후를 많이 봉하고, 제후가 다시 받은 영지를 부하들에게 나눠주게 된다. 이처럼 단계별로 분봉하게 되면서, 아래로 갈수록 더욱 많아지게 된다. 이들 아래쪽 사람들도 모두 영지의 이름을 "씨"로 삼는다. 그리하여 "씨"가 많아지게 된다. 이런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씨"를 가진 사람은 기본적으로 한 지방을 지배하는 인물이다. 모두 함부로 건드리기 힘든 인물이다.

 

그래서 당시 일반백성들은 "씨"가 없었다. 귀족들만 "씨"를 가졌다.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기 위하여 자신의 "씨"를 이름의 앞에 놓게 된다. 원래의 "성"은 잘 언급하지 않는다. 만일 한 사람을 원래 "강(姜)모모"인데, "진씨(陳氏)"를 얻는다면, 스스로 자신을 "진모모"로 바꿔서 부른다. 강호를 다닐 때, 그에게 씨가 있다는 것을 알면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그를 건드리지 않는다. 모두 그에게 약간은 양보한다. 당시의 상황은 이렇다: "씨"는 자손에게 전할 수 있으나, 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은 만년불변이다. 이는 즉, 어느 사람이 여러 명의 아들을 두었을 때, 그중 한 아들이 성공하여 영지를 하나 얻는다면, 그는 귀족의 신분을 드러내기 위하여 자기의 이름 앞에 "씨"를 붙이고, "성"을 붙이지 않을 것이다. 이 씨는 다시 그의 자손에게 이어진다. 만일 그의 어느 자손이 다시 다른 "씨"를 하나 얻게 되면, 그는 다시 자신의 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씨를 자손에게 전해주게 된다. 모든 자손들은 "성"은 하나이지만, 이 "성"안에 씨는 여러개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저명한 개혁가 상앙(商鞅)을 예로 들어보자. <<사기>>에 따르면, "위(衛)나라의 서얼공자이다. 이름은 앙이며, 성(姓)은 공손씨(公孫氏)이다. 그 조상은 원래 희성(姬姓)이었다" 이것은 원래 그의 성이 희인데, 그의 조상이 두 개의 씨를 얻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공손이고 다른 하나는 위(衛)이다. 나중에 그는 상(商)의 땅을 봉지로 받는데, 다시 상을 씨로 삼는다. 사학자들은 그리하여 그를 상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상앙은 위앙, 공손앙이라고도 자칭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희앙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일반백성과 혼동될 수 도 있는 성은 일찌감치 버렸기 때문이다.

 

바로 씨가 위세를 떨치고, 체면이 있는 것이 되면서 나중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하여 너도 나도 모두 씨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영지를 하나 얻기는 매우 어렵다. 그리하여, 각자 여러가지 다른 방법을 택하게 된다. 팔선과해, 각현신통인 법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관직을 씨로 삼는다. 예를 들면, 사마, 사공, 사도가 그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거주하는 곳을 씨로 삼는다. 예를 들면, 서문, 동문, 동곽, 서곽이 그것이다. 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서문경의 조상은 원래 별 것이 아닌 사람이었다. 또 어떤 사람은 선조의 이름을 씨로 삼는다. 예를 들면, 고(高), 조(), 공(公), 시(施)등이 그것이다. 어떤 사람은 형제의 항열을 씨로 삼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백(伯), 중(仲), 숙(叔), 계(季)가 그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씨로 삼았다. 무(巫), 도(屠), 우(優), 복(卜)등이 그것이다. "우(優)"는 연기자이다. 현재 우씨인 사람은 옛날 조상이 아마도 연예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타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소질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屠)"는 옛날에 백정이다. 도씨인 사람은 조상이 아마도 돼지잡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는 없다. 알아야 할 것은 옛날에는 백정이 아주 고귀한 직업이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의 직업을 "씨"로 삼은 것이다. 고대에 관리들만이 자주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육식자'라고 불리운다. 당신의 조상은 매일 고관대작과 교류한 것이다. 대단하다. '무' '복'은 점치는 직업이다. 이런 직업은 고대에는 더욱 고상했다. 왕족귀족들이 무슨 일을 할 때면 먼저 그들에게 점을 치게 했다. 고객이 이처럼 고위직이니, 이 직업이 어찌 고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너도 성을 갖고 나도 성을 갖고 모두 성을 갖는 시대가 되자, 결국 사회에서 씨의 수량이 성의 수량보다 많아지게 된다. 한 사람이 겨우겨우 자신을 위하여 씨를 만들었는데, 길거리를 나설 때는 원래 자랑할 생각이었는데,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씨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해가지고야 어떻게 자랑할 수 있겠는가? 물건은 귀할수록 비싼 법이다. 흔해지면 싸진다. 그저 배추값에 팔릴 뿐이다. 그리하여 씨가 시장에 범람하게 된다. 게다가 씨도 성과 같이 이름의 앞에 쓰는 것이므로, 서한(西漢)에 이르러서는 "성"과 "씨"가 합쳐지게 된다. 성이 바로 씨이고, 씨가 바로 성이 된다. 그리고 분리되지 않게 된다. 씨는 더 이상 신분 지위를 대표하지 않는다. 더 이상 고귀함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그저 성과 함께 모두 혈연관계를 표시하는 것이 된다. 원래 씨가 있던 사람은 직접 씨를 성으로 삼는다.

 

가장 먼저 이런 사회기풍을 반영한 사람은 청나라초기의 학자 고염무의 <<일지록>>에 따르면, 바로 사마천(司馬遷)이다. 그는 <<사기>>에서 천고일제 진시황에 대하여 쓰면서 그를 "성조씨(姓趙氏)"라고 적었다. 한고조 유방을 적을 때에는, 그가 "성유씨(姓劉氏)"라고 적는다.  이는 이미 현대의 방식과 비슷하다. 실제로 현대의 성씨라는 말은 바로 그로부터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