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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비)

융중대(隆中對)는 유비가 주연한 정치음모이다

by 중은우시 2009. 4. 14.

글: 노위병(路衛兵)

 

제갈량의 "천하삼분(天下三分)" 주장이 처음 나타난 것은 그와 유비가 천하대세를 논한 "융중대"에서이다. 필자는 이 대화를 반복하여 읽어본 후에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사실 유비가 눈가림술을 쓴 정치적 거짓말이고, 노련한 유비가 직접 감독주연한 한판의 정치적 음모라는 것을.

 

진수(陳壽)는 <<삼국지>>에서 이 유명한 대화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계책을 물었다. '그대는 어떤 계책을 내놓을 것인가?' 제갈량이 대답했다. '지금 조조는 이미 백만의 무리를 보유하고 있고, 천자를 끼고 제후를 명령하고 있으니, 그와는 다투어서는 안된다. 손권은 강동을 점거하고 이미 삼대에 이르렀으며 나라의 지세가 험하고 백성이 지지하며, 현명하고 재주있는 신하를 기용하니, 이곳도 도와줄 지언정 도모해서는 안된다. 형주는 북으로 한(漢), 면(沔)과 마주하고, 남해에까지 미치며, 동으로는 오나라와 연결되어 있고, 서로는 파촉과 통하니, 이곳은 용무지국(用武之國)이다. 그런데 그 주공이 지킬 수가 없다. 이는 하늘이 장군에게 내린 기회이니, 장군이 뜻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익주는 험난하고 옥토가 천리에 펼쳐 있는 천부(天府)의 땅이다. 한고조가 이로 인하여 황제의 위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유장은 어둡고 약하며, 장로는 북쪽에 있다. 백성들은 잘 살고 나라는 부강하지만 보존하고 아낄줄을 모르고, 지혜있고 능력있는 선비들은 현명한 군주를 그리워한다. 장군은 황실의 후손으로, 신의를 사해에 떨치고 있으며 영웅들을 모조리 움켜쥐고 있고, 현명한 사람들을 목마른 사람처럼 갈구한다. 만일 형주, 익주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천연의 장벽을 이용하여, 서로는 여러 서쪽오랑캐와 화합하고, 남으로는 남쪽오랑캐를 다독거리며, 밖으로는 손권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안으로는 정치를 잘 하여야 한다; 일단 천하에 변고가 있으면, 장수에게 형주의 군사를 이끌고 완(宛), 락(洛)으로 향하게 하며, 장군은 친히 익주의 무리를 이끌고 진천(秦川)으로 나가면, 백성들이 누가 감히 밥그릇 물동이를 가지고 장군을 맞이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패업은 이룰 수 있고, 한나라 황실도 부흥될 수 있는 것이다."

 

제갈량의 이 대답을 보면 우리는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제갈량의 "삼분천하" 주장은 유비의 뜻에 아주 잘 들어맞았다.

 

조조는 실력이 강하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손권도 강동의 천험요새를 장악하고 있으니 역시 건드릴 수 없다. 이는 겨우 27세된 제갈량만이 알아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군벌혼전'을 겪고 나이가 근 50세에 이른 노련한 정치인인 유비가 모를 리가 없다. 유비가 제3의 세력으로 성장하고자 하였는데, 제갈량의 이 말은 유비의 뜻에 아주 들어맞는 것이다.

 

둘째, 유비는 더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유비의 전반생은 순조롭지 못했다 서주에서 여포에게 패배한 후, 조조에게 투항했다. 그후에 동승과 모의하여 조조를 뒤집어 엎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조조에게 발각되어 할 수 없이 원소에게 도망하여 의탁한다. 조조가 원소를 멸망시킨 후, 유비는 다시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했다. 형주가 조조에게 투항한 후, 유비는 다시 조조의 병사에게 쫓겨서 하구까지 도망친다. 유표의 아들이 있는 유기(劉琦)에게 의지하러 간 것이다. 그는 이미 여러곳을 떠돌아다녔고 거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른 것이다. 

 

셋째, 제갈량의 전략은 아주 유치하다.

 

보라, "천하에 변고가 있으면, 장수에게 형주의 군사를 이끌고 완(宛), 락(洛)으로 향하게 하며, 장군은 친히 익주의 무리를 이끌고 진천(秦川)으로 나가면, 백성들이 누가 감히 밥그릇 물동이를 가지고 장군을 맞이하지 않겠는가?"  말은 쉽다. 그러나 실질적인 전략전술은 없다. 지금의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아주 표준적인 사기술이다. 백성들이 누가 감히 밥그릇 물동이를 들고 장군을 맞이하지 않겠는가라니. 정말로 천진무구한 상상이다. 유비가 황실의 후예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반드시 열렬히 환영하여야 한단 말인가? 감히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단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창천은 이미 죽었고, 황천이 섰다"는 황건적의 난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이유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제갈량은 처음부터 관직을 원했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매번 스스로를 관중, 낙의에 비유했다. 유비에 대하여 아부도 잘 했다. "장군은 황실의 후손으로, 신의를 사해에 떨치고 있으며 영웅들을 모조리 움켜쥐고 있으며, 현명한 사람들을 목마른 사람처럼 갈구한다." 이 말은 그의 유비를 띠집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만나주지 않았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필자는 왜 융중대를 유비가 눈가림술을 써서 펼친 정치적 거짓말, 유비가 감독주연한 정치적 음모라고 부르는가.  아래의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유비가 말한 소위 "흥복한실(興復漢室)"이라는 것은 그저 겉으로 내세우는 말이다.

 

유비가 조조에 반대하면서, 정치적인 구호는 '흥복한실(한나라황실을 회복한다)'이었다. 그러나 한나라황실은 엄연히 존재했었다. 조조가 비록 '천자를 끼고 제후를 명령'했지만, 한황실의 황제를 폐위시키고 자신이 황제가 된 것도 아니었다. 조조는 '한적(漢賊)'이지만, 유비가 집권하는 것이 한나라황실을 부흥시키는 것인가? 바로 정의인가? 사실 이것은 유비의 정치적 야심에 불과하다. 자신이 정권을 장악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한나라황실을 부흥시키는데 너 유비가 필요한가? 유비는 중산정왕 유승의 후예이다. 황건적의 난을 진압한 후 현령으로 성공했다. 억지로 따지자면 한나라황실의 황제의 친척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종친은 아니다. 유표, 유장은 정정당당한 한나라황실의 종친이다. 만일 한나라황실을 부흥시킨다면, 유비에게까지 돌아올 몫은 없다.

 

둘째, 제갈량은 유비 앞에서는 소아과이다.

 

유비가 어떤 인물인가?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고, 지방관리를 지내고, 여러번 생사의 일선을 경험한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노련한 인물이고, 속이 깊은 인물이다. 조조가 영웅을 논할 때 일찌감치 그를 강적으로 지목한 바 있다. 그때 유비는 아직 날개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때였다. 제갈량이 박학다식하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학문과 예지만으로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 당시 제갈량은 겨우 27살이었고, 매일 농사를 지었다. 뜻은 컸고, 매번 자신을 관중, 낙의에 비유했지만, 그는 남양을 나가본 적조차 없다. 더더구나 정치적인 경험이나 연마를 할 기회는 없었다. 이는 노련한 유비와 비교할 때 소아과에 불과하다. 제갈량이 아무리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신선은 아니다. 융중대는 그저 자기가 상상한 일종의 정치적 견해일 뿐이다. 거기에 무슨 고명한 내용이 들어있지도 않다. 모택동은 일찌기 이렇게 융중대를 평가한 적이 있다: "그 시작은 융중대의 잘못에 있다. 천리나 멀리 떨어져서 병력을 둘로 나누었고, 나중에는 관우, 유비, 제갈량이 병력을 셋으로 나누었다. 어찌 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갈량의 전략에 대하여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좋아했다. 왜냐하면 제갈량의 전략은 자기의 생각에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바로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준 것이다.

 

셋째, 유비는 정치적인 출로가 급히 필요했다.

 

유비가 왜 삼고초려 하였는가? 그가 현명한 인재를 목마르게 갈구했다는 말도 맞지만, 그가 정치적인 대변인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유비는 패권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천하는 크고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조조에게 쫓겨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보내고 있었다. 겨우 다른 사람의 아래에서 살아갈 뿐이었다. 그가 어찌 형주와 익주를 가지고 싶은 생각이 없겠는가? 이것은 더할 나위없이 분명한 일이다. 북방은 모두 조조가 지배하고 있고, 동남은 손권이 가지고 있다. 그가 이들과 겨룰려면 형주, 익주 두 곳을 빼고는 더 이상 찾을 곳이 없다. 그러나 그는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게 되면 그는 불인불의하다는 악명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 잘 된 것이다. 제갈량이 속죄양이 되었다. "그 주인이 지킬 수 없으니, 이는 하늘이 장군에게 준 기회입니다" "지혜있고 능력있는 인사들은 현명한 군주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이처럼 중용되지 못하고 있으니, 당신이 가서 차지하라는 것이다. 천하의 지혜있고 능력있는 인사들이 모두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유비가 어찌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넷째, 유비는 정치전략상으로 여론의 지지가 필요했다.

 

유비는 형주, 익주의 2주를 차지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같은 황실의 것을 빼앗았다는 악명을 뒤집어써야 한다. 하물며 이들은 그가 어려웠을 때 그를 거두어주었던 은혜가 있는 사람이다. 손을 쓸 이유가 없다. 제갈량은 마침 유비를 위하여 정치적인 구실을 찾아준다. 그리고 유비를 대신하여 여론선전에 착수한다. 유비는 제갈량을 아주 많이 칭찬한다: "짐에게 공명이 있었기 때문에 물만난 고기처럼 순조로왔다" 이것은 그가 제갈량의 명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제갈량의 입을 빌어서 자신의 정치적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자신의 정치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말은 제갈량의 입에서 나왔지만, 유비 자신이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는 "관우, 장비등이 기꺼워하지 않는 것"에도 불구하고, 제갈량과 날이 갈수록 더욱 친하게 지낸다. 유비가 제갈량을 신임한 것은 아니다. 그는 머리가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나중에 유비가 죽을 때 제갈량에게 하는 말 속에서도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다섯째, 유비 자신은 처음부터 황제가 되고 싶었다.

 

유비의 구호는 '흥복한실'이었다.  그런데 조비가 황제를 칭한 후에 유비는 더이상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황제를 칭한다. 그리고 국호도 "촉(蜀)'으로 하지 '한(漢)'으로 하지 않는다. 이것을 '천하에 신의를 다하고자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천하에 정의를 세우려는 것이라면, 그리고 한나라황실을 위하여 정의를 세우려는 것이라면 왜 한나라 종친중 한 사람을 황제로 세우지 않았던가? 매일 '한나라황실이 무너지고 있고, 간신이 나라를 도둑질한다'고 떠들었으면서, 유비 자신은  왜 한나라황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가? 그 원인은 바로 그 자신이 황제가 되고 싶었던 것일 뿐이다. 그것도 맞는 선택이다. 누가 일평생 짚신이나 삼으면서 살고 싶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