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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비)

유비(劉備): 변신의 영웅

by 중은우시 2009. 4. 10.

글: 유계흥(劉繼興)

 

영웅에게 소속은 묻지 않는다. 역사상의 많은 영웅호걸들이 성공을 이룰 때, 왕왕 어느 한 군사집단 혹은 정치세력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웅은 모두 소속을 바꾼(易主)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상 주인을 가장 많이 바꾼 영웅은 누구일까?

 

이 종목의 챔피언은 삼국시대에 10번이나 주인을 바꾼 기록이 있는 유비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실력이 충분하지 못했을 때(羽翼未豊)는 스스로의 날카로움을 숨기고 힘을 길렀다(韜光養晦). 일단 시기가 무르익자 바로 하늘로 날아오르는(一飛沖天) 절세고수가 되었다. 현재의 기업계에서는 "닭을 빌려서 달걀을 낳는다(借鷄生蛋)" "배를 빌려서 해외로 나간다(借船出海)"는 등의 초식이 성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예전에 유비가 남겨준 수법들이다.

 

이중텐(易中天) 교수는 일찌기 유비가 "다섯번이나 주인을 바꾸었다(五易其主)"고 말한 바 있는데, 사실 그는 다른 사람의 밑에서 일하면서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능수능란했던 "천하영웅" 유비를 너무 낮게 평가한 것이다. 이중텐은 유비가 주인을 바꾼 역사를 절반으로 확 줄여버렸다. 아마도 이중텐이 역사서를 자세히 읽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의 유비가 적벽대전이전에 10번이나 주인을 바꾼 구체적인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최초에 교위(校尉) 추정(鄒靖)을 따라 황건적을 토벌했다 <<삼국지. 선주전>>

2. "평원사람 유자평(劉子平)의 추천하에, 역사에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사람을 따라 청주에서 일했다, ((삼국지. 선주전>>의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한<<전략>>)

3. "대장군 하진(何進)의 도위(都尉)인 관구의(丘毅)에게 의탁하다, <<삼국지. 선주전>>

4. "유주(幽州)의 공손찬(公孫瓚)에게 의탁하다 <<삼국지. 선주전>>

5. "공손찬의 청주자사 전해(田楷)와 제나라(현재의 산동성 치박시)에 주둔하며, 전해의 지휘를 받다 <<삼국지. 선주전>>

6. "제나라를 떠나서 서주목(徐州牧) 도겸(陶謙)에 의탁하다. <<삼국지. 선주전>>

7. "도겸이 죽은 후, 유비는 서주목이 되었는데, 다시 여포(呂布)에게 패배해서, 여포에 투항했고, 소패(小沛, 현재의 강소 패현의 동쪽)에 주둔하였다. <<삼국지. 선주전>>

8. "여포에게 지고나서, 조조(曹操)에게 의탁하였다. <<삼국지. 선주전>>

9. "서주에서 조조에게 지고나서 원소(袁紹)에게 의탁하였다. <<삼국지. 선주전>>

10. "원소를 떠나서 유표(劉表)에게 의탁하였다. <<삼국지. 선주전>>

 

이처럼 빈번하게 주인을 바꾼 경우는 고금에 드물 정도이다. 마치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였다는 혐의를 벗기 힘들 것같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지닐 것이다: 이러한 카멜레온 유비도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옛말에 좋은 말이 있다. "춘추무의전, 삼국무군자(春秋無義戰, 三國無君子, 춘추시대에 의로운 전쟁은 없고, 삼국시대에 군자는 없다)" 군웅이 할거하던 혼전시대에 누구든 이기는 자가 바로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가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그 다음 문제이다. 광명정대하든 아니면 음험교활하든 모두 천하를 얻기 위한 최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유비는 영웅인가 아닌가? 역사의 기록은 명확하고도 긍정적으로 대답해주고 있다.

 

유비는 어려서부터 황제꿈을 꾸었다. 그의 집의 동남쪽 모퉁이에는 큰 뽕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높이가 5장여가 되었다. 멀리서 보면 나무의 모양이 마치 수레의 덮개와 같았다. 유비는 어려서 문중의 어린친구들과 나무 아래에서 장난치며 놀았는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반드시 이런 모양의 우보개차(羽蓋車, 가마의 지붕을 푸른색 새깃털로 장식한 것으로 황제만이 탈 수 있는 것이다)를 타겠다." 그러자, 이를 듣고 있던 숙부가 황급히 그의 말을 막으면서, "헛소리말라. 그건 멸문지화를 당하는 짓이다"(<<삼국지. 선주전>>)라고 하였다.

 

조조의 모사인 동소(董昭)는 일찌기, "유비는 용맹하고 뜻이 크다(備勇而志大)"(<<삼국지.동소전>>라고 한 바 있다.

 

유비가 형주(荊州)에 있을 때, 유표와 같이 앉아 있다가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런데 돌아오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유표가 이상하게 생각해서 물어보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과거에는 항상 말안장을 벗어난 적이 없어서, 장단지의 안쪽에 살이 붙을 틈이 없었는데, 세월이 달리는 말처럼 빨리 지나가서 어느새 나이는 들고, 공은 이룬 것이 없으니, 비애를 느껴서 그렇습니다."(<<삼국지. 선주전>> 배송지가 주석인용한 <<구주춘추>>)

 

삼고초려때, 유비는 제갈량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나라 황실이 무너지고, 간신이 나라를 빼앗았다. 주상은 눈과 귀가 가리워져 있다. 나는 덕이 모자라기는 하지만, 천하에 대의를 펼치고 싶다. 그러나 지식이 짧고 얕아서 여러번 좌절을 겪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뜻은 아직도 여전하다...."(<<삼국지. 제갈량전>>). 천하에 대의를 펼치고 싶다든지, 뜻은 아직도 여전하다든지 하는 말은 유비의 영웅의 뜻을 나타낸다고 할 것이다.

 

조조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오늘날 천하의 영웅은 오로지 그대와 나 조조뿐이다" 불가일세의 조조의 눈에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저 유비만이 영웅이라고 할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한 적이 있다: "유비는 나와 같은 류이다(劉備, 吾也)".(<<삼국지. 무제기>>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한 <<산양공재기>>). 여기서 '주()"는 같은 류로 고하를 논하기 힘든 경우를 말한다.

 

정욱(程昱)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유비가 영웅의 재질이 있고 백성의 마음을 얻으니, 다른 사람의 아래에서 일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삼국지. 무제기>>)

 

정욱은 또 이런 말도 했다: "유비는 영명(英名)이 있다" (<<삼국지. 정욱전>>)

 

유엽(劉曄)은 이렇게 말했다: "유비는 인걸(人杰)이다" (<<삼국지. 유엽전>>)

 

노숙(魯肅)은 이렇게 말했었다: "유비는 천하의 효웅(梟雄)이다" (<<삼국지. 노숙전>>)

 

주유(周瑜)는 이렇게 말했다: "유비는 효웅의 모습으로..." (<<삼국지. 주유전>>)

 

역사서인 <<삼국지>>에서 유비가 영웅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적고 그를 높이 평가한 이외에 당시 사람들은 행동으로 유비를 쫓아다녔다. 예를 들면, 중산의 대상인인 장세평(張世平)과 소쌍(蘇雙)은 금전으로 유비를 도와주어서 그가 한 무리를 이끌도록 해주었다; 조조가 서주를 도륙할 위기의 시기에, 서주의 관리는 도겸이 죽기전의 유언에 따라 서주를 유비에게 넘겨준다; 유비가 여포에게 궤멸된 위기의 순간에, 미축은 집안돈을 군자금으로 내놓고 2천의 노객을 데려온다 그리고 여동생을 유비에게 시집보낸다; 이러한 것들은 유비의 역량을 강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유비가 비록 10번이나 주인을 바꾸었지만, 역사에서 인정하는 대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을 설명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