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마이자양: 중국-버마 국경의 카지노

by 중은우시 2009. 3. 31.

글: 등비(鄧飛)

 

피부색이 새까만 촌민은 밭에서 일을 하고 있고, 공기속에서 감자의 달콤한 냄새가 느껴진다. 구식 동방홍 크랙터는 검은연기를 내뿜으며 털털 달리고 있다.

유채화의 금황색 틈으로 돌연 시멘트건축물이 나타난다. 햇볕아래에 반짝반짝 빛이 난다.

운남성 덕굉주 농천현과 버마(미얀마)의 국경 사이에 있는 마이자양(Maijayang, 邁央)은 산을 따라 지어져 있고, 모양은 연잎과 같다.

2002년부터 중국인은 이 땅으로 와서 카지노를 열었다. 그 후에 중국인들을 불러모아 도박을 했고, 도박도시가 형성되었다. 나중에는 중국사회에 해악을 끼쳐 2009년초에 철거되고 만다.

마이자앙, 중국의 위험한 한번의 자궁외임신이라 불리우는 이 도시는 일찌기 중국모체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했었다. 그리고 이곳은 중국국경지역에서 성행하고 있는 카지노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이자양의 중국인

 

1999년, 담지위(譚志偉)와 그의 부친 담웅(譚雄)은 운남성 덕굉주 뤼리강(瑞麗江)의 가운데 있는 강심도(江心島)에 도박장을 빌려서 운영했다. 강심도는 중국과 버마의 국경선상에 있었다.

한 홍콩손님이 야시장에서 다른 사람과 싸우다가 맞아죽는 일이 발생했다. 이 손님은 홍콩의 모 저명인사의 친척이라고 했다. 운남의 경찰은  뤼리강 양안의 도박장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2003년, 담지위와 다른 도박장들은 어쩔 수 없이, 차로 두시간 거리인 마이자양으로 옮겨가야 했다.

 

마이자양은 버마 카친(Kachin) 무장세력이 지배하는 지역이다. 아주 가난한 지역으로 한때는 아편을 재배하였다. 1991년이후, 카친조직은 국제적인 압력에 굴복하여, 양귀비재배와 아편거래를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아편을 포기하자 카친조직의 수입은 격감하여, 또 다른 수입원을 찾게 되었다. 자신들의 장비를 새로 구입하고, 무장할거국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수입원이 필요했다.

2000년, 이양말(李洋沫)이라는 사람이 카친조직에 한가지 건의를 한다. 마이자양에 카지노를 중심으로 관광사업을 발전시키자는 청사진이었다. 카친조직은 도박업을 합법화시키고, 이양말과 계약을 체결한다. 그리하여 경제발전위원회를 만들고 마이자양에 도박업, 관광업, 목재가공업을 추진하기로 한다.

 

이양말은 원래 운남의 장삿꾼이다. Kokang의 한 여자와 결혼한 후, 버마국적을 취득한다.

경제발전위원회는 마이자양에 대한 관리권을 장악한다. 카친조직의 무장인원은 어떤 경우에도 카지노에 진입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마이자양관리위원회는 카친조직에 세금으로 1000만위안을 납부해야 했다.

이양말의 마이자양에 대한 계획은 많은 도박세력의 관심을 끌었다. 2002년 4월, 한 홍콩사람이 첫번째 카지노를 개설한다. 그리고 5개의 바카라 테이블을 설치한다. 나중에 이곳은 광동사람에 의하여 마이자양에서 가장 큰 도박회사인 마이다(邁達)회사로 변모한다. 또 다른 큰 도박회사는 금회국제오락총공사(金匯國際娛樂總公司)였다.

 

2005년까지, 마이자양의 양대 도박회사의 아래에 근 30개의 카지노가 만들어진다. 한 카지노에는 사장사무실, 재무, 인터넷, 대외연락, 내부연락, 현장, 칩관리등의 부서가 있고, 10여개의 직무를 구분했다. 그중 대외연락부는 도박고객의 카지노진출입과 그들의 숙식 및 왕복비행기표를 책임졌다. 칩관리방은 칩과 현금교환을 책임졌다. 차량은 40여대가 있어서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규모가 비교적 큰 카지노는 직원이 300여명에 달했다.

중국은 도박이 금지된 국가이다. 치안경찰에 쫓긴 산서, 광동, 절강과 복건등지의 도박장들이 차례로 마이자양으로 들어왔다. 두 도박회사의 카지노를 도급받거나 스스로 소규모 카지노를 열었다. 운남성 공안청의 관련자료를 보면, 카지노에서 일하는 사람의 90%이상은 중국인이다. 카지노의 주요한 고객은 사천, 광동, 절강, 복건등지에서 왔다. 이상지역들이 고객총수의 75%이상을 차지했다.

 

담씨부자는 카지노를 하나 빌려서 바카라를 운영했다. 1개월 임대료가 300만 내지 500만위안이었다.

2004년 4월, 이양말은 은퇴를 선언한다. '마이자양의 아버지'로 불리던 이 전설적인 인물은 동남아 모 나라의 내정부차관이 되고, 그 나라의 형사면제권을 취득한다. 또 다른 버마국적의 중국인이 마이자앙을 장악한다.

그런데, 바로 이 해에, 담씨가족은 2억여위안을 투자하여 마이자앙과 또 다른 지방에 두 개의 호텔식 "신동방"카지노를 건설한다.

담씨일가는 이 도박도시의 최대패주가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근 3000여명의 직원을 모집한다. 질서있게 도박고객을 모집하고, 무료비행기표를 제공하고, 전용차로 영접했으며, 카지노에 들어오면 무료로 먹고 잘 수 있는 원스탑서비스를 제공했다.

마카오의 카지노와 비교하면, 마이자양은 시골농촌같다. 중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일류도박꾼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마이자양은 차례로 완벽하고 정규화된 카지노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마카오의 카지노가 갖추지 못한 편리한 출입국통로를 가지고 있다. 엄격한 출입국수속이 필요없는 것이다. 그리고 공무원들은 기율검사위나 검찰부문의 주의를 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중국버마의 국경선은 물산이 풍부하고, 물가가 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야생동물을 포획하여 마이자양으로 왔고 좋은 가격에 팔았다. 어떤 사람의 기억에 따르면, 주방장이 가련한 흑곰을 한 마리 끌고 마이자양의 길거리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곰앞발 하나에 삼백위안"이라고 소리쳤다. 돈을 딴 도박꾼들이 서로 사겠다고 싸웠다.

일부 중국도박꾼은 "견홍(見紅)"이 도박운세를 좋게 한다는 미신을 믿었다. 그리하여 마이자양의 길거리에는 사방에 "충희구락부", "일포영" 등의 간판을 내걸고 도박꾼들에게 아편, 마르고 나이어린 여자들을 제공했다. 오랫동안 도박꾼들을 실어날랐던 덕굉의 한 택시기사에 따르면, "돈만 있으면, 여기서는 황제였다. 뭐든지 하고싶은대로 할 수 있었다."

마이자양은 한 때 내지공무원과 일반 도박꾼들이 최우선으로 찾는 곳이었다.

대량의 중국도박꾼이 몰려들면서, 약국, 진료소, 전화부스, 신발가게, 과일가게, 불고기가게가 마이자양에 차례로 나타났다. 생활도 갈수록 편리해졌다. 2005년이 되자, 마이자양의 인구는 수천에서 급격히 5만으로 늘어난다. 점포가 줄줄이 늘어서고, 등불이 휘황찬란했으며, 밤낮으로 시끄러웠다. Mong La, Kokang과 더불어 버마의 삼대 카지노도시가 되었다.

 

도박금지를 둘러싼 줄다리기

 

마이자양의 카지노는 한 때 카친조직의 재정수입중 40%를 차지했다. 이는 카친조직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저 카지노가 바구니속의 달걀이 되기를 바랐다. 그저 다른 업종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키도록 이끄는 효모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이같은 국외의 카지노는 중국을 해치고, 중국의 분노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사실상, 2003년이래 뉴스는 계속 나왔다. 중국의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들에서는 도박업이 크게 성행하고, 장관을 이룬다는 것을. 중국인을 주요 고객으로 한 카지노가 곳곳에 생겨나고 있고, 모든 국외카지노들은 마치 중국에 빨대를 꽂은 것처럼 계속하여 혈액을 빼앗아가서, 중국의 금융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을

2003년 5월, 공안부는 중국변경주변의 7개성구의 공안청에 출국도박현상을 단속하도록 지시한다. 2003년이래, 덕공주는 일련의 "이검행동" "추풍행동" "감심도행동" "철권행동"들을 전개하여, 국외도박을 근절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공안부도 인정한다. 한 부서가 수천킬로미터의 국경선에 펼쳐있는 국외카지노를 상대한다는 것은 힘에 부친다는 것을.

 

2004년 9월, 중공중앙 기율검사위원회서기인 오관정은 간부도박은 당의 집행능력건설에 관계되는 사안이라고 밝힌다. 그해, 중공중앙총서기와 총리는 모두 구체적인 도박사건 혹은 개별적으로 심각한 지역에 대하여 40여차례나 지시를 내려보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만연되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앞으로 국가의 경제이익이 위해를 가할 것이고, 부패를 조장하는 것이 되며, 사회기풍을 문란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해, 중앙정부는 전국에서 위법도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특별행동판공실을 두었다. 그리고 공안부장이 총책임을 맡았다. 중앙판공청주임과 국무원비서장이 협력하였다. 공안부, 중앙조직부, 중앙선전부, 중앙사회치안종합치리위원회등 17개부위가 참여하니, 규모가 사상유례없을 정도였다.

2004년 12월, 운남은 "도박금지특별행동"을 시작한다. 2005년 1월, 중국은 다시 5개월간의 전국특별국외도박단속행위에 들어간다. 운남은 이 행동의 중점지역중 하나였다. 계속하여 국외카지노를 단속했다.

마이자양은 처음으로 중국으로부터의 큰 타격을 받는다. 전기공급이 끊기고, 통신이 끊기며, 관광이 끊겼다. 출국비자수속이 중단되고, 카지노의 많은 인력들은 기한을 정해서 귀국하도록 명령받았다.

 

2005년 1월, 운남경찰은 선언한다: "변경의 82개 카지노중 이미 68개가 문을 닫았다. 나머지 14개는 경영이 날로 어려워져서 곧 문을 닫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투자를 한 카지노는 이렇게 죽어가지 않았다. "인터넷카지노"가 이렇게 하여 탄생한다.

담지위와 그의 가족들은 마카오와 미국 카지노의 경영과 기술을 주목해왔고, 백년기업을 만들고 싶어했다. "신동방" 카지노의 내부조직은 엄격했고, 분업도 잘 되어 있으며, 업무효율도 마이자양을 대표할 수준으로 공인받았다. 그리고 카지노내부의 호화스러움도 세계적인 도박도시 라스베가스에 뒤지지 않았다.

일찌기 2003년에 이 카지노는 거액을 투자하여 9개 스크린의 감시설비를 갖추고, 선진적인 동영상전화로 배팅할 수 있게 했다. 카지노의 감시녹화영상을 감시실컴퓨터로 보내어지면, 다시 전신메트워크를 통하여 인터넷으로 보내어진다. 도박꾼들은 그저 인터넷에 들어가서 "신동방"의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받고, 전용인터넷주소와 비밀번호를 치면 바로 카지노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도박꾼들은 먼저 지정한 구좌에 일정한 금액의 도박자금을 입금하고, 다시 대리인을 고용하여 카지노에서 칩으로 바꾸게 한 후에, 전화로 배팅을 지시하면 도박을 리모트콘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2005년 중국이 국외카지노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 후, "신동방"은 동영상전화보다 더욱 간편한 방법을 개발했다. 속도가 빠른 인터넷에서 직접 배팅하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지 도박꾼들은 이격지 도박이 가능하다. 위성통신라인을 이용하여, 카지노의 정보는 위성으로 전송되고, 다시 위성은 정보를 각지에 설치된 서버로 보낸다. 도박꾼들은 "신동방"의 전용인터넷주소와 비밀번호만 치면 바로 카지노의 현장을 볼 수 있고, 인터넷배팅설비를 켜서 컴퓨터로 배팅하면 된다.

 

담씨부자는 국내은행의 도움을 받아, 중국공상은행 뤼리시지점의 한 업무처주임을 통해 카지노의 수백개 구좌를 개설한다. 2006년 8월부터 2007년 3월까지, 중국각지의 도박꾼들은 "신동방"의 웹사이트 하나에 배팅한 금액만 86.8억위안이 되고, 카지노는 그중에서 2.78억위안을 순수익으로 챙겼다.

컴퓨터 1대, 인터넷선 1개, 은행구좌 1개면 집밖으로 한발짝도 나서지 않고 카지노에서 도박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터넷도박은 신속히 중국의 20여개 성시로 번져갔고, 중앙정부고위층은 더욱 불안해 했다.

2006년 1월, 중앙정부고위층과 공안부의 지시로, 운남성 공안청은 즉시 마이자양의 국외카지노조직들이 중국공민을 인터넷도박에 끌어들인 사건에 대하여 입건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날로 성행하는 인터넷도박을 근절시키고자 한 것이다.

기세를 얻었던 담씨부자는 다시한번 좌절한다.

2007년 3월, 운남의 경찰은 담씨가족을 체포하기 위한 행동을 개시한다. 모두 53명의 관련자가 체포되고, 7대의 인터넷도박서버가 압수된다.

1년후, 담씨가종은 도박장개설죄로 기소된다.

감철관은 최고인민검찰원이 2005년 5월에 공동반포한 사법해석을 가지고 담씨가족을 처벌하는 근거로 삼았다. 이 해석의 제3조에는 이런 규정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공민은 중국영역외 주변지구에 사람을 모아서 도박하거나, 도박장을 개설하거나, 중화인민공화국공민을 주요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도박죄를 구성하며, 형법규정에 따라 형사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미쳐버린 도시

 

2005년부터, 공안부는 변경에서 입출경을 막아버렸다. 도박꾼들이 출국하는 통로를 막아버려, 카지노를 문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정책은 운남의 변경지역에 큰 불만을 가져왔다.

2006년, 운남성 시쌍반나주의 11명의 정협위원은 제2534호 제안을 내놓았는데, 하루빨리 타락(打洛)의 출입을 개방해달라는 것이었다. 타락의 부근은 바로 유명한 버마의 Mong La 도박도시이다. 아시아 제2의 라스베가스라는 칭호가 있는 곳이다.

공안부는 이에 대하여 서면으로 답변했다: "일부 변경지역의 국외측에 기본적으로 아무런 관광프로젝트가 업슨데도, 이들 국가는 도박업, 색정업을 통하여 중국공민의 출국관광을 유치하고자 한다. 이렇게 하여 변경지역의 변경지역의 숙식업등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경관광은 비록 일정한 정도로 변경지역의 경제발전에 도움을 죽는 하지만 이런 경제번영은 비정상적인 경제형태이다"

 

변경에 사는 농민에 있어서, "비정상적인 경제형태"는 그들의 생활과 거리가 너무나 멀다. 그런데, 도박군들을 데려다주는 일은 몇분만에 10위안에서 100위안까지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운남 변경지구와 경찰측은 마이자앙과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물, 전기, 통신이 회복되었고, 일부 관망하던 카지노종사자들은 다시 마이자양으로 돌아왔다.

마이자양은 살아났지만, 도박꾼들은 많이 줄었다. 카지노마다 절반으로 줄었다. 그러자 마이자양의 카지노생태는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된다.

마이자양에는 새로운 무리들이 나타난다. 브로커이다. 이전에, 현재 대형 카지노에는 중국국내에서 도박꾼을 모집하고 조직하는 대외연락부서가 있었다. 그들은 카지노에서 고정적인 급여와 보너스를 받았다. 다만 이들이 중요하게 되면서 독립하게 된 것이다. 카지노와 새로운 이익분배방식을 협의한다. 그들이 도박꾼을 데려가면, 카지노는 도박꾼이 잃은 돈에서 일정비율을 그들에게 분배해주는데, 일반적으로 20% 가량이다.

 

카지노와 브로커는 동맹을 결성한다. 도박꾼은 그들 모두의 적인 것이다. 그리고 도박꾼이 돈을 잃어야, 카지노와 브로커가 손해를 보지 않는다. 카지노는 어쩔 수 없이 몰래 도박도구나 카지노규칙을 고치게 되고, 도박꾼들이 오는대로 주머니를 털어버린다.

중국에서 국외카지노를 엄중단속하면서, 공무원들은 마이자양을 더 이상 찾지 않게 된다. 담씨부자는 중국경찰이 곤명으로 보내어 재판을 받게 되었고, 아마도 실형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마이자양의 다른 카지노들이 인터넷도박을 할 생각을 못하게 만들었다.

마이자양의 잠재적인 고객은 재력이 뛰어나지 않은 보통도박꾼이다. 2008년이후, 힘들게 버티던 카지노들은 새로운 경영모델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브로커들이 도박을 원하나 돈은 없는 사람들을 불러와서,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도박하게 한다. 따건 잃건 하루에 10%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

 

피해는 당연히 발생한다. 카지노의 속임수와 카지노규칙의 변경으로, 갈수록 적은 사람들만이 마이자양에서 돈을 따게 된다. 그리고 브로커들은 도박꾼들로부터 돈을 긁어낼 각종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그들은 고리대금을 빌려주고 돈을 받아낸다.

마이자양에서, 돈을 빌려 도박하는 사람은 '장기를 보관하고 있는 살아있는 냉장고'라고 불리운다. '각막, 신장 그리고 피부는 모두 카지노에서 팔아서 채무상환하는데 쓴다' 이들에게 당한 도박꾼들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거머리가 놀고 있는 우물에 넣어지거나, 곰의 바로 옆에 있는 철망에 가두어 곰의 포효소리를 듣게 한다는 것이다.

농천경찰의 한 책임자는 매체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경찰이 인질들을 구해내고나서 살펴보니 이들을 학대한 수단이 아주 잔혹했다. 여자의 유방, 남자의 생식기가 잘려져 나갔다. 이들은 능지와 비슷한 형벌까지도 가했고, 며칠에 한번씩 살점을 잘라냈다.

 

일부 잔혹한 형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다고 밝혀진 도밖군은 다시 다른 도박꾼을 모아오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해야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은 할 수 없이 다단계처럼 자기의 인맥을 활용하여 다른 도박꾼들을 모아온다.

그렇지만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상식을 떠올리게 된다: 카지노가 왜 비행기표까지 주면서 너를 마이자양으로 불러들이고, 너에게 돈을 빌려줄까. 그렇게 하면 카지노는 자기 돈으로 자기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닌가?

2008년, 마이자양의 도박꾼들은 거의 고갈된다. 할수없이 직접 사람을 붙잡아 납치를 한다. 그들은 납치된 사람의 경제력을 먼저 살펴본 다음에 돈있는 사람이면 20만위안, 일반 사람이면 몇만위안에서 십만위안까지 서로 다른 돈을 받았다.

업계인사들이 보기에 마이자양은 이미 미쳐버렸다. 미쳐버린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때문에

 

2005년이후, 중국의 흑룡강, 길림, 절강, 사천, 산서, 산동등지의 매체는 연이어 현지민중이 마이자양에서 납치되고, 거액의 돈을 뜯겼다는 것을 보도했다.

대다수의 민중들이 보기에, 카지노와 마약은 매춘과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일이다. 경찰측은 도박꾼들을 그다지 동정하지 않았다. 농천경찰측은 심지어 어떤 도박꾼들은 '사기수법'을 쓰기도 한다. 즉, 고리대금을 빌려서 도박을 한 다음에 사람을 시켜 경찰에 납치감금당했다고 고발하도록 시키고, 경찰이 구해내주면 다시 똑같은 짓을 한다는 것이다.

2008년 2월, <<법제일보>>는 <<국외카지노의 돈버는 법: 국내관광객을 유인하여 납치감금>>이라는 제목으로 많은 무고한 중국인들이 덕굉주 뤼리시, 농천현에서 속아 출국하여, 국외카지노에서 납치, 감금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하여, 큰 파란을 일으켰다.

 

마이자양의 잔혹은 아이로 인하여 드러난다.

2008년 8월, 산서 운성에서 현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한 아이가 납치되었는데, 돈을 달라는 사람은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버마의 마이자양이었다.

운성의 경찰은 돈을 마련하여 왕건이라는 아이를 구해낸다. 그러나 더 많은 아이들이 납치되었다. 납치자들은 성인도박꾼을 납치하는 것보다, 아이를 납치하는 것이 훨씬 간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급해진 부모들은 황급히 돈을 모아서 내놓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납치자들을 흥분시켰다. 그리하여 더 많은 아이들에게 손을 뻗었다.

 

집으로 돌아온 산서의 아이가 한 말에 따르면, 납치자들은 아이들이 처참하게 울도록 해서, 부모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하여, 젓가락으로 그의 등을 찔러서 몇 개의 구멍을 냈다고 한다.

마이자양의 산서적 납치자들은 고임금을 받고 일하자고 유인하거나 친구와 여행가자는 방식으로 운성의 미성년자들을 유인하여 마이자양으로 데리고 간 다음에 돈을 뜯어냈다.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가 50명이 넘었다.

현재경찰은 경비가 부족하여,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일부 가족은 집안 재산을 거덜내면서 아이를 찾아왔다. 아무리 해도 돈을 마련할 수 없는 가족들은 절망에 빠졌다. 이들의 분노와 비통은 인터넷을 통하여 신속히 전파되었고, 북경의 한 신문사에서도 발견한다. 기자는 이 잔혹한 사실을 발견하고 계속 공안부서와 외교부서에 처리를 요구했다.

중국의 주버마 만델레이 총영사관은 이런 국외납치건이 2007년부터 나타났고, 그 후에 급증했다고 인정했다. 나중에는 변경부서의 협조를 요청했다.

 

중국의 아이들이 마이자양으로 납치되어 가자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었다. 이러한 보도는 금방 국가최고지도자의 관심을 끌게 된다. 신화사 운남분사는 중국최고위층에 국내사정을 상세히 보내고, 마이자양 카지노가 중국민중을 납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지도자의 지시를 받는다.

마이자양은 2005년 중국의 여러 부위의 포위섬멸전에서도 용캐 살아남았다. 그리고 다시 많은 해를 끼쳐서 중국측이 분노하게 했다. 그리하여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결심하게 만든다.

중국측의 마이자양에 대한 강경한 입장은 버마측의 주목을 받는다. 버마의 카친경찰측은 두 차례에 걸쳐 납치된 소년들을 구해준다. 그리고 납치협의가 있는 성원, 신황정, 황관등 세 개의 카지노를 폐쇄시킨다. 성원카지노는 마이자양에서 규모가 가장 큰 카지노였다. 그후 버마측은 납치, 도박에 대하여 단속을 시작한다. 이후 현지에서는 마이자양의 관리를 책임지던 경제위원회가 해산된다고 선언하고, 마이자양 경내의 모든 카지노는 문을 닫도록 지시한다.

 

2월 5일, 덕굉주는 마약금지업무회의를 개최한다. 무장경찰 덕굉변방지대, 농천경찰, 변방부대의 협조하에 변당의 순찰을 강화한다. 몰래 국경을 넘어가서 도박하는 것을 막아버린다. 그리고 출국수속도 중단한다. 동시에 통신, 전력, 상수등의 부서와 협조하여 마이자양에 대한 공급을 모두 끊어버린다. 모든 카지노의 기본적인 생존조건을 끊은 것이다.

2월 6일, 마이자양의 70명의 카지노종사인원이 강제귀국당한다. 다음 날 새벽, 6000여명의 중국인이 중국으로 반환당한다. 마이자양은 빈 도시가 되어 버렸다.

국외카지노에 대하여, 중국은 다시 한번 엄격하게 변경을 관리감독하고, 변경주민의 교육관리를 강화하고, 상설화된 방범매커니즘을 도입하고, 특별조직을 주어 계속 단속하며, 전면적으로 카지노를 봉쇄하여 말살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다.  운남의 매체에 따르면, 중국의 제1차 국외카지노단속행동은 1 개의 도박도시를 없앴지만, 또 다른 도박도시가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치 시소게임과 같이.

 

마이자양은 이미 카친조직의 경제문화중심이 되었다. 어떤 분석가에 따르면, 카친조직은 중국민중의 분노를 삭이고, 중국의 체면을 존중해주기 위하여, 부득이 마이자양을 포기했다고 본다. 다만 카친은 다른 보장책이 없으면 도박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이자양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도박꾼들은 바로 Kakong의 카지노로 몰려갔다. 도박꾼들의 분석에 따르면, Kakong은 공간이 훨씬 넓다는 것이다. 다만, 어떻게 마이자양의 교훈을 되살릴 것인가가 문제이다. 관리를 잘하고, 합법적으로 경영하고, 불법고리대금을 차단하고, 중국인을 해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 길밖에 없다.

모순은 국외카지노가 중국을 해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정부는 국경도박활동을 철저히 단속하고, 변방지구의 안정을 도모하겠다고 말한다.

중국버마국경에 있는 Mong La, Kakong의 카지노는 여전히 번성하고 있으며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버마측은 이미 중국을 잘 알고 있고, 중국매체가 버마의 카지노에 대하여 보도를 많이하여, 중국측의 분노를 사지 않도록 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한다.

모든 일에는 한도가 있다. 그것을 넘어서서는 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