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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후기)

만철(滿鐵): 일본의 만주최대의 식민집단

by 중은우시 2009. 3. 24.

 

만철의 기차에 놓여졌던 만철마크로 된 재털이 

 

글: 설봉(薛鋒)

 

중국 동북지방의 철로연변에 있는 일부 지방에서 많은 노인들은 "만철"이라는 외래명사에 대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20세기때, "만철"은 일본의 중국에 대한 전면적인 식민침략의 주요진지였고, 일찌기 동북지방에서 정치, 경제, 문화적 식민침탈에 근 40년간 활동해왔으며, 이를 통하여 중국동북지방에 많은 식민침략의 역사적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만철"의 full name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일본어로는 "미나미만슈뎃도"가 된다. 영문명칭은 "South Manchuria Railways Co."이다. 일본이 중국동북에 설립한 남만철도를 관리하는 정치경제기구였다. 이 회사의 이름으로 식민침탈을 실행하였으므로, 일찌기 국제사회에서는 만철을 "일본의 중국에서의 동인도회사"라고불렀다. 1906년 6월 7일, 천황의 명의로 142호령으로 <<남만주철도주식회사성립의건>>이 정식 반포된다. 그해 11월 26일, 동경에서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설립된다. 자본금은 2억엔이었고, 초대총재는 후등신평(後藤新平) 남작이었다. 1907년초,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본사는 일본동경에서 중국동북의 대련으로 옮긴다.

 

러일전쟁이 끝난 후, 중국동북은 일본에 의해 점령된다. 원래 제정러시아가 만든 중동철도 장춘에서 여순까지의 구간은 제정러시아가 일본에 양도한다. 그리고 남만철도로 명칭이 바뀐다. 남만철도를 경영하기 위하여, 그리고 일본의 중국동북에서의 세력범위를 확대하기 위하여, 일본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두게 되는 것이고, 본사를 일본동경에서 동북대련으로 옮기게 된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설립된 초기에, 남만철도를 관리하는 외에, 남만철도연변의 양측에 16.7미터 내지 3000미터에 달하는 "만철부속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부속지의 총면적은 482.9평방킬로미터에 이르렀다.

 

사료의 기록에 따르면,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설립된 후, 원래의 남만철도를 이용하여 대거 중국동북의 철로운수사업을 전개하는 동시에, 중국동북 일부지역의 철로건설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한다. 그리하여 안봉(安奉, 안동-봉천, 지금의 단동-심양)철도로, 무순(撫順)철로, 우장(牛庄)철로등의 남만철도지선이 건설된다. 이리하여 남만철도는 봉천에서 동쪽으로 뻗어가서, 중국-조선국경의 단동에까지 이른다. 한반도와 시베리아철도와 완벽하게 연결을 하게 된다. 또 다른 측면으로, 만철은 만주항공회사를 만들어, 만주에서 일본동경, 만주에서 한반도등지의 국제항공운수업무도 시작한다. 그리고 대련에 만철에 속한 대형 항구를 보유한다.

 

"만철"은 중국동북경내에서 철로, 수운, 항공등 현대교통운수사업을 벌이는 외에, 광업, 야금, 전기, 농림축산, 문화, 교육, 관광등의 사업을 벌인다. 안산제철소(소화제강소로 안산강철의 전신), 만주채금, 만주연광, 만주광업개발, 만주경금속제조, 일만마그네슘공업, 동화기차, 만주전업, 만주화학공업, 만주염업, 그리고 동북각 주요도시에 분포된 만철의원 및 대화여관(大和旅館)등 열 일본회사와 문화교육 과학연구 의료기구등등이 있었다.

 

이와 동시에, "만철"은 만철부속지 봉천, 장춘, 안산, 대석교, 사평가, 공주령, 요양, 철령, 해성, 개원, 와방점 및 남철지선상의 무순, 안동, 본계호등지에 인프라사업에 투자하였다. 1936년에 이르러, 인프라관리사업면적이 1평방킬로미터이상인 도시가 29개에 이른다. "만철"의 경영범위가 확대되면서, 1920년 만철은 제1차증자를 통해 4.4억엔으로 자본금을 늘이고, 1933년에는 제2차증자로 8억엔으로 늘이며, 1940년에는 제3차증자로 14억엔으로 늘인다.

 

1931년, 9.18사건이후, "만철" 및 그들의 모든 사업은 일본군 관동군사령부의 관리감독하에 들어간다. 일본군이 중국동북 전체를 점령하면서, 원래 중국에 속했던 심해, 봉산, 길장, 길돈, 길해, 사도등 철로, 그리고 동북전지역의 항구, 수운, 석탄광산, 강철, 경공업 및 화학공업의 경영권도 무상으로 "만철"에 넘어갔다. 그리하여 "만철"과 그 부속지면적은 524.3평방킬로미터로 늘어났고, "만철"이 경영하는 철로연장길이도 6857.3킬로미터에 달했다.

 

"만철" 본사는 별도로 조사부를 두었는데, 이것은 일본이 중국에 설치한 최대의 "국책조사기관"이 되어, 전면적으로 중국과 소련의 정치경제정보의 수집업무를 책임진다. 1939년에는 대조사부(大調査部)로 명칭이 변경된다.

 

1942년, "만철" 본사는 대련에서 장춘으로 이전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투항하면서, 중국동북은 중국에 돌려주게 된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도 일체의 운영을 중단한다.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밀본이 투항한 후, "만철"의 자산 및 기업설비등은 대부분 소련홍군이 접수하여 소련으로 운반해갔다고 한다.

 

"만철"이라는 중국동북지방 최대의 식민집단이 도대체 중국동북에서 얼마나 많은 재물을 약탈해갔는지, 소련홍군이 다시 접수한다면 명의로 얼마나 많은 재물을 약탈해갔는지, 지금까지도 여전히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당시 민국정부가 전후에 부패하고 무능하여, 최소한 일본이 동북을 침략해서 입은 재산의 손실금액까지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일본과 소련이라는 두 강도국가에 모두 빼앗겨 버렸다. 이에 대한 역사의 수수께끼는 현재의 역사학자들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