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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언어

한자 번체, 간체논쟁이 오래 끄는 이유는

by 중은우시 2009. 3. 16.

글: 정계진(丁啓陣)

 

 

최근 2년동안, 인터넷에서는 여러차례 간체자/번체자에 관한 대규모 논전이 벌어졌었다. 며칠전, 모 포탈사이트의 한 편집인이 나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자 간체/번체논쟁에 참가하는가? 문자라는 거야 그저 글쓰는 도구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는 그 이유로 아래와 같은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한자는 엄밀하게 폐쇄된 부호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맣은 중국인들은 한자를 신성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 글을 쓰는 부호시스템으로써 한자는 여러가지 결점을 지니고 있다. 글자에 정해진 수가 없고(字無定數), 글자에 정해진 형태가 없으며(字無定形), 글자에 정해진 발음이 없고(字無定音), 글자에 정해진 의미가 없다(字無定音). 글자에 정해진 수가 없다는 것은 한자가 도대체 몇 글자나 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알 수도 없고, 아무도 모든 한자를 알지 못한다. 글자에 정해진 형태가 없다는 것은 누구든 글자에 대하여 의견을 얘기할 수 있고, 글자에 대하여 고치는 의견을 낼 수도 있고, 고치는데 반대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글자에 정해진 발음이 없다는 것은 서로 다른 방언지역, 서로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도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니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글자에 정해진 의미가 없다는 것은 동일한 한자에 대하여 인식수준에 따라, 파악하는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비전문가들도 그저 요란한 것을 즐기는 것이고, 전문가들은 그 내용을 보는 것이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도리가 있다" 결론적으로, 한자는 정교하고, 고효율적인 문자부후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저렇게 볼 때 모두 장점이 있고, 결점도 있다. 한자의 이런 특색은 끝도 없는 논쟁에 충분한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고, 튼튼한 기반을 마련해주는 셈이다.

 

둘째, 한자의 간체, 번체의 선택은 모든 사람에 관계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한자를 쓰는 사람은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쓴다. 중국인이건, 싱가포르인이건 말레이시아인인건 일본인이건 한국인이건 혹은 많건 적건 한자를 사용하는 외국인들이든, 중국내에 사는 사람이건 국외에 사는 사람이건, 본토에 살건 대만,홍콩, 마카오에 살건, 민족이나 당파가 무엇이든,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중국본토지역에서 간체를 쓰는지 번체를 쓰는지는 모든 사람들의 이해에 관련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의 개인적인 사심이나 잡념에 관련되는 것이다. 살고 있는 나라나 지역이 다름에 따라 글자를 쓰는 습관도 다르고, 한자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계속 간체자를 사용하건 아니면 번체자로 회복하든, 모두 어떤 사람은 찬성하고 어떤 사람은 반대할 것이다. 의견일치를 얻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다보니 논전이 한번 벌어지면 수습이 되지 않는다.

 

셋째, 한자인구는 3대분야가 있다. 중국국내와 국외, 해협양안을 포함한 모든 한자사용자는 아래와 같은 3대분야가 있다: 정치분야, 문화분야, 그리고 습관분야. 정치분야는 주로 간체자를 사용하는 대륙과 번체자를 사용하는 대만의 양대진영간의 대립이다. 홍콩과 마카오는 그 중간에 있다. 이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몸은 조조의 군영에 있으나 마음은 유비의 한나라에 가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다보니 논쟁에 불을 붙이고 선동하고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문자는 그저 글쓰는 부호이고, 정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왕왕 문자를 구실로 하여, 투쟁의 돌파구를 삼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쌍방이 모두 문자를 구실로 하거나 돌파구로 생각하지 않지만, 문자의 처지는 연못속의 물고기와 같다. 성문이 무너지고 성에 불이 붙으면, 그 해가 반드시 미치는 것이다. 문화분야는 현재 주로 서방과학기술제도를 계속 배워야 한다는 입장과 국수흥국의 민족자존심을 되살려야 한다는 가치관의 분화이다. 서방과학기술제도를 계속 배워야 한다는 입자에서는 문자를 평가할 때 단순하고 편리한 것을 우선으로 한다.그러나 국수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조상들이 사용해온 문자를 보배로 여기는 것이다. 습관분야를 보면, 어릴 때부터 간체자를 써오고 번체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극력 간체자를 주장한다. 어릴 때부터 번체자를 써오고 간차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극력 번체자를 주장한다. 모두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니, 잘잘못을 따질 것도 없다.

 

당연히, 상술한 세 가지 주요한 원인 이외에 또 다른 부수적인 원인도 있다. 예를 들면, 논쟁의 문턱이 낮다는 것이다. 문자는 사람마다 쓰는 것이고, 이해와 우열이 있다. 누구든지 흥분해서 자기의 한두가지 견해를 얘기해볼 수 있다. 한자는 처음에 만들어질 때부터 부드러운 붓으로 글자를 썼다. 필획에 경중, 굵기, 빠르기가 서로 다르다. 한자의 예술성은 심미관을 통일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거명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다.

 

내 생각에, 한자의 번체,간체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진시황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서, 철완정책으로 "서동문(書同文)"정책을 추진하고, 철저히 문자를 통일시키기 전까지는. 간체번체자의 논쟁은 그리 유익한 것은 아니다. 논쟁이 계속되면 그 해악도 게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