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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대학

북경대학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두가지 반의 원인

by 중은우시 2009. 1. 3.

글: 정계진(丁啓陣)

 

오랜 친구인 공경동(孔慶東)이 최근 블로그에 <<이 형, 나는 본 적이 있다>>라는 글을 썻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다: "....대부분의 매체는 시류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고, 모종 세력을 겁낸다. 청화(淸華)에 대한 추문은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 요 몇달간 그렇게 많은 청화학생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렸는데, 매체의 목구멍은 마치 모두 잘려버린 듯하다. 그러나, 북대는 매일 여론에 시달린다. 교장과 서기는 매일 헛소문을 막느라고 바쁘다." 여기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북대가 최근 들어 계속 여론에서 비판의 촛점에 되는데 대하여 그는 아주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소동파의 유명한 싯구 "불식여산진면목, 지연신재차산중(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여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 바로 몸이 그 산 가운데 있기 때문에)"를 확인시켜준다. 모교 겸 직장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때문에 공경동은 이번에 조금 흐리멍텅했다: 그는 북대가 여론의 촛점이 되는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나의 관찰과 분석에 따르면, 북경대학이 계속하여 여론의 촛점이 되는 주요한 이유는 두 가지 반이다. 다음과 같다.

 

첫번째 원인은: 북대가 아주 대단하기 때문이다. 중국문화는 역대 이래로 하나의 전통이 있다. 장원숭배(狀元崇拜)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장원에 대하여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방안(榜眼, 2등), 탐화(探花, 3등)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면서, 항상 이렇게 말한다: 공부를 잘하면 장래에 장원이 될 수 있다; 사랑이야기를할 때도 남자주인공은 반드시 장원급제를 한 후에 미인을 안고 화촉동방에 들어간다; 술 한병을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아들이 큰 후에 비로소 꺼내서 먹는데, 소흥사람들은 이 술을 "장원홍(狀元紅)"이라고 부른다. 안에 고기를 싸고 있고, 모양은 신발바닥같은 일종의 낙병(烙餠)을 산동사람들은 굳이 "장원병(狀元餠)"이라고 부른다. 혹시 누가 들어보기는 했는가? 공부를 잘하면 나중에 방안, 탐화가 될 수 있다는 훈계를. 남자주인공이 방안 혹은 탐화인 사랑이야기를, 술의 이름이 방안이나 탐화인 경우를, 전병의 이름이 방안이나 탐화인 경우....가 있었던가? 북대가 계속 비판의 촛점이 되는 원인은 바로, 북대는 사람들에게 전국대학중에서 장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중국대학중의 큰형님이다. 만일 북대가 중국인의 마음 속에 둘째, 셋째 대학이라면, 아마도 뭘먹고 멀마시는지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라고 부탁해도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청화는 비록 일부 대학랭킹방이나 신입생합격점수에서 북대와 서로 경쟁하고 있지만, 중국인의 마음 속에 청화는 이공과에 편중되어 있고, 문화사상으로 유명한 학교는 아니다. 어느 정도 양무(洋務)의 색채가 있다. 그것은 중국식 대학의 대표는 아니다.

 

두번째 원인은: 북대가 아주 재미있기 때문이다. 부호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열중하는 경제학 교수가 학교안에서 물만난 고기처럼 호풍환우하고 있고, 많은 월급을 주고 데려온 허위조작이나 하는 해외 '인재'가 백성의 고혈을 허비하고 있고, 현대교육기구이면서도 봉건예교의 효도에 의지하려고 하고 있고, 개혁개방 삼십년에 나라의 문까지 다 열고 있는데, 오히려 무슨 생각에서인지 학교를 봉쇄하려는 제도를 취하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본교의 대표적인 교수의 서화수장품의 '아마도 절도'사건를 처리하고 있고...이 모든 것은, 그 자체가 바로 대중들의 눈길을 끄는 것들이다. 매체가 일부러 북대와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일들을 매체가 보도하지 아니한다면 그것이 매체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또 다른 반개의 원인은: 많은 사람들은 중관촌 북경대학의 전신인 사탄(沙灘) 북경대학의 창시자 채원배(蔡元培)의 교육사상에 대하여, 사탄 북경대학이 5.4신문화운동시기에 보여준 그리고 배출한 많은 저명한 학자에 대하여 태어나면서부터 호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호감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일찌감치 옛모습은 전혀 없고, 근골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중관촌 북경대학에 대하여 여전히 커다란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북경대학이 예전처럼 사상, 문화해방의 측면에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많은 비판은 모두 사랑하는 마음이 깊기 때문에 심하게 질책하는 것이라고 봐도 좋다. 대다수의 비분강개하는 문자들이 얘기하는 것은 북경대학의 타락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현재의 모든 대학 그리고 전체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과학, 민주, 자유정신의 결핍현상을 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