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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경제

성극이쇠(盛極而衰): 동관의 진상

by 중은우시 2008. 12. 29.

글: 여약(余躍)

 

작년말, 주강삼각주(珠三角) 특히 동관(東莞)은 "민공황(民工荒, 민공부족현상)"을 개탄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은 과거가 되었다.

 

일찌기, 전문가들이 경고한 "루이스 터닝포인트(Lewis Turning Point; 노동력과잉에서 부족으로 바뀌는 전환점)"가 다가왔다고 말했었다.

 

사실상, 양휘(가명)은 그 사고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다.

 

2008년 10월 15일 아침, 예전과 마찬가지로, 양휘는 천천히 은백색 중고 엘란트라를 몰고 출근했다. 차를 장목두 보산공업구의 길까지 운전해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를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합준(合俊)완구공장의 문앞에 몰려와서, 구호가 적힌 플랭카드를 들고, 월급을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곁에 있는 사람이 양휘에게 말해주었다. 공장이 도산했다고.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양휘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문위에 교차로 붙여놓은 장목두법원의 차압표시를 보고, 그는 비로소 합준완구공장 지역에서 형틀을 만드는 자신의 소규모 공장도 따라서 '도산'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그저 동관기업 도산붐의 한 장면일 뿐이다. 연말이 가까워오면서, 동관은 거의 매일 등에 가방을 매고, 보따리를 싼 사람들이 길거리를 총총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동관시 4개구 28개진에 흩어져 있는 약 1000만명의 외지노동자들은 모두 걱정하고 있다: 다음에 도산하는 기업이 자기의 회사는 아닐까? 그러면 어떡해야 할까?

 

비록 합준완구공장의 도산으로부터 겨우 2개월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양휘는 지나간 시간은 뒤돌아보기 싫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막 시작했던 사업이 이렇게 무너졌어요" 말하는 중에 양휘는 억지 웃음을 지었다.

 

현실은 잔혹하다. 그는 현재 어떻게 합준공장구역내에서 자기의 설비를 가지고 나올 것인지의 문제로 정신없이 바쁘다. 그러나, 이들 설비를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계속 합준완구공장에서 냈던 형틀주문은 끝이 났다. 큰 공장에 의지하여 먹고사는 것도 리스크가 크다. 큰 공장이 문을 닫으면 작은 공급업체도 함께 끝장나는 것이다.

 

실업한 직공 외에, 합준에 공급하던 크고 작은 공급업체들도 모두 피해를 입은 무리이다. 그들은 합준에 적게는 수만위안에서 많게는 천만위안의 미수금이 남아 있다. 이전에, 청원(淸遠)의 모 지품(紙品)회사의 경리가 화물대금을 받아내러 왔고, 2달동안 동관과 홍콩을 뛰어다녔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흥리(興利)제선(製線)공장의 증사장도 합준의 공급업체이다. 합준은 작년 9-12월분 화물대금 합계 101만위안을 아직까지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 공급업체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합준도산으로 800여개의 공급업체 및 가공업체들이 연루되어 손실을 입었다. 그리고 이 대금만 2억위안가량이다.

 

장목두의 최대 완구업체로서 합준의 파산은 주삼각 제조기업도산 위기의 서막(序幕)도 아니고, 종곡(終曲)도 아니다. 그저 규모가 비교적 크고, 영향받은 사람들의 수가 비교적 많아서 외부에서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주삼각기업중 도대체 얼마나 도산했는지, 외지노동자가 얼마나 많이 실업했는지는 도저히 통계를 낼 수가 없다.

 

사실상, 합준완구공장외에, 일찌기 동관 최초의 완구생산기업의 하나인 요보안년(寮步安年)완구공장이 일찌기 금년초에 조용히 문을 닫았다; 동관 후가(厚街)에 위치한 오래된 기업인 계두(溪頭)완구공장도 몇개월전에 말소절차를 진행했다; 11월 1일, 장안위욱신발공장의 사장인 장가영도 도망쳤다, 근 4000명의 직원은 자신들의 두 세달 임금을 받지 못했다. 동관대외경제무역국의 데이타를 보면, 동관의 외자완구기업수량은 이미 2005년의 639개에서 2007년에는 500여개로 줄어들었다.

 

많은 나쁜 소식이 전해졌다.그리고 합준등 적지 않은 대형제조기업이 도산했다. 그리하여 동관의 "도산붐"에 관한 소문이 일시에 사방으로 퍼져갔다. 2008년 8월, 광주의 모 매체는 동관에 도산한 기업중 1600개의 대만계기업, 3000개의 홍콩계기업이 있다고 보도했다; 9월에 동관정부는 이런 추측을 반박하기 시작했다. 1-9월에 동관의 도산기업은 627개라고 하였다; 10월에 동관의 대외경제무역국의 통계로는 1-10월에 동관에서 누적적으로 문을 닫고 외지로 옮겨간 기업이 714개라고 하였다, 현존 외자기업의 4.79%이며, 계약투자금액은 미화8.8억달러라고 하였다.

 

관방, 매체, 민간의 숫자는 서로 맞지 않는다. 그리하여 외부에서는 동관의 진실한 상황에 대하여 오리무중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양휘는 느끼고 있다. 연말이 가까워오면서 곁에 있던 외지사람들이 하나둘 모두 귀향하고 있다; 원래 부근의 임차주택 임차료도 갈수록 내려가고 있다. 현재는 50-60평방미터짜리 집의 월임료가 300-350위안이다. 2007년에는 원래 500위안이상이었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한 것은 단지 "정규"공장의 상황이다. 빙산의 일각이다. 보도되지도 않는 "비정규"공장의 도산상황은 더욱 엉망이다. 비록 동관정부부서는 도산숫자를 계속 비밀로 하고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대외로 선전하는 것을 보면 바로 동관기업의 생태의 현실을 나타낸다. 이곳의 크고 작은 기업의 숫자는 부지기수이다. 수량이 많은 소규모공장은 아예 공상국에 등기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양휘에 따르면 동관에 이런 공장은 도처에 있다. 예를 들어, 양휘의 친구는 호북사람인 여빈이 연 종이포장인쇄공장이 있다. 공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작은 작업장이다. 이 공장은 도로의 뒷편에 있는 작은 골목안에 있다. 입구에 아무런 회사간판도 걸지 않았다. 공상국에 등록도 하지 않았다. 80평방미터되는 방을 사무실과 작업장으로 나누어, 3-5명이 일하고 있다."

 

광주대학의 한 주삼각제조업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합준완구공장등 대형기업이 도산한 후,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지만, 이들 무수한 소규모기업의 도산은 거의 통계조차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동관의 제조업이전, 도산의 위기는 일조일석의 문제가 이니다. 합준의 경우는 이 위기의 축소판이다. 동관의 많은 기업은 모두 수출환급정책의 변화, 노동계약법의 시행, 인민폐평가절상 및 금융위기등 여러가지 곤경에 직면하고 있다.

 

이때, 동관의 기업들이 또 하나의 유령을 만난다: 서브프라임위기. 이전에, 미국은 동관의 최대수출대상국이었다. 통계수치에 따르면, 동관은 매년 근 300억달러의 상품을 미국에 수출했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위기가 발발한 후, 미국시장의 수요가 위축되었다. 달러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주문과 환율방식으로 그 영향은 동관에 미쳤다. 2008년 3월 19일에 동관해관이 공포한 데이타에 따르면, 2008년 1월-2월, 전년도 동기와 비교하여, 전통적인 대량상품의 수출이 17.2억달러로 0.2% 감소했다.

 

금융위기는 수출과 OEM을 기초로 하는 동관제조업의 뿌리를 뒤흔들었다. 이전에 근 30년간 동관은 이런 발전모델과 홍콩대만자본에 의지하여 전자, 기계, 복장, 모방, 완구, 가구, 신발등 8대지주산업을 키우고, 동관은 2007년에 3,151억위안의 GDP총액과 590억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으며, 근 1000만명의 외래인구의 취업을 해결해 주었다.

 

그리하여, 기업들은 스스로 과도한 확장의 함정에 빠졌고, 국제주문을 받아내고 재고상품을 팔아버리기 위하여 힘을 썼다. 연초의 원자재가격인상과 노동계약법으로 이들 기업의 생산원가는 급격히 상승한다. 이어서 수입이 감소하고, 제조업의 확장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어, 생산과 인력원가를 삭감하기 시작한다.

 

글로벌 경제가 금융위기의 그림자속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동관의 제조업도 자신의 발전모델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반덤핑, 인민폐평가절상, 노동력원가상승, 원자재가격상승은 동관제조업을 숨쉬기 어렵게 만들었다. 국가의 수출환급율, 가공무역에 대한 정책조정의 기회를 빌어, 동관은 산업이전과 업그레이드를 통하여 자구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금방 두 가지 관건요소가 다시 동관을 비관에 빠지게 하였다. 국제수요가 급격히 하락하고, 고도로 밀집된 산업업그레이드는 동관브랜드의 병목현상에 부닥쳤다.

 

"현재, 동관의 많은 중소기업이 곤란을 겪는 것은 정상적이다. 그들은 형세변화에 적응할 수가 없다.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다. 이는 중국산업업그레이드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모우식은 동관에 대한 리서치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2008년 11월 26일, 동관의 부시장 강릉은 대외적으로 "동관의 실제상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숫자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10억위안으로 기금을 건립하여 가공무역형기업이 산업전환을 하는 것을 지원하기로 한 후, 동관은 최근들어 다시 일시불로 10억위안을 내놓고 곤경에 빠진 중소기업과 가공무역기업에 융자해주고 있다.

 

이에 대하여, 모우식의 견해는 "정부는 목표를 취업에 두어야 한다. 취업이 잘되면, 금융위기는 중국에 있어서 별 것이 아닌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취업을 해결할 것인가? 동관은 현재 팔을 잘라버리는 시험에 들었다. 동관은 글로벌금융위기가 이전에 확정한 산업업그레이드의 발걸음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기업도산과 인원감축위기가 계속 만연하고 있고, 농민공은 대량실업과 체류문제를 낳고 있다.

 

동시에, 일부 업계인사들도 점차 인식하고 있다. 저원가제조기업의 도산이 산업업그레이드 세대교체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사실상, 대형 OEM기업들 예를 들어, 합준완구공장등이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데, 각지에 소기업이 흩어져 있는 동관이 자체브랜드를 보유하고, 뿌리가 튼튼하며 국제경쟁력을 가진 하이엔드기업을 끌어들이는데는 아주 부족하다. 동관의 산업구조는 여전히 대규모 진공상태이다.

 

몇년전에, 광동성정부는 "등롱환조(騰籠換鳥, 새장을 비우고 새를 바꾼다)"정책을 내놓고, 주강삼각주에 전통적인 노동밀집형기업을 광동북부 산간지역과 동서의 양쪽으로 이전시키고자 하였다. 동관정부의 생각도 이들 기업의 연구개발과 설계부문은 남기고, 가공부문은 점차 이전하는 것이었다. 동관은 동서양익의 지방정부와 9개의 산업이전단지를 합작설립했다. 그리고 기술수준이 비교적 낮고 환경오염이 크며, 에너지소비가 많은 기업을 이전시키고자 하였다.

 

"동관의 산업구조조정, 전환, 업그레이드는 외상과 외래인구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윈윈을 위한 것이었다" 수천만에 이르는 동관의 외지노동자들에 대하여 동관시위 서기인 유지경은 외부에 이렇게 말했다. 동관이 외부로 인구를 이전시키는 것은 신동관인을 중시하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신동관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그러나 양휘에게 있어서, 비극은 깜짝 놀란 그날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힘들여 이룩한 형틀공장이 문을 닫은 후, 두 장의 차압표시가 붙었다. 그리고 양휘의 일가 3식구가 계획한 동관의 행복한 미래생활은 같이 사라졌다. "그것은 근 10년간 모은 것이다" 그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현재, 모든 것은 허망해졌다. 다시 이틀이 지나면 그들은 온 가족을 데리고 고향인 호남 누저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