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요소원(姚小遠)
원숭환을 연구할 때면, 나는 종종 서로 모순되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자체 모순은 어떤 때는 우습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하여, 뭐가뭔지 모르게 만든다. 원숭환은 민족영웅이지만, 아주 의심스러운 민족영웅이다.
만일 관방의 공식자료에서 역사의 진실을 찾으려 하면, 왕왕 진실과 반대로 가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사항을 연구하다보면 많은 경우 더 손쉽게 진상에 접근할 수 있다.
원숭환의 용모문제도 신비스럽다. 이것은 많은 연구자들이 별로 주의하지 않는 부분이다. 명나라사람들의 기록에 따르면, 원숭환은 아주 추하게 생겼다. 전룡석(錢龍錫)에 숭정3년에 올린 상소문을 보면, "원숭환이 처음에 폐하를 배알할 때, 신은 그의 용모가 추악함을 보고....이 자가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라는 글이 있고, 이 상소문은 <<숭정장편>>에 기록된 것이다. 또 다른 명나라때 사람인 장대(張垈)도 <<석궤서후집.원숭환열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원숭환은 키가 작고 날카롭다. 몸은 작은 원숭이같고, 성격은 아주 조급하며 폭력적이었다" 여기서는 직접적으로 원숭환의 키가 작고, 생긴 모양이 원숭이와 같으며 성격도 조급하고 폭력적이었다고 적고 있다. 당연히 명나라사람들은 원숭환을 매국노로 보았기 때문에 고의로 그의 용모를 추화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청나라때가 되면, 원숭환을 졸지에 헌앙한 미남자가 된다는 점이다.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리 보는 원숭환의 화상은 청나라의 건륭제가 사람을 시켜 그리게 한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원숭환은 얼굴이 길고, 피부가 하얀데, 만주족의 용모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건륭제가 자기의 용모를 기준으로 하여 원숭환의 화상을 그리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원숭환 이야기가 아주 괴이한 부분중의 하나이다.
사실, 더욱 괴이한 일은 원숭환사건의 명예회복에 있다. 원숭환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것은 그가 충성을 다하고 보호하려던 명나라가 아니다. 그가 당시 죽어라 싸웠고, 그에게 능지처참의 형을 내리게한데 관련이 있는 청나라이다. 이것은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다. 건륭49년(1772년) 건륭제는 조서를 내려 원숭환의 명예를 회복시켜준다. <<청고종실록>>에 "원숭환은 계료독사로서 우리 황조를 곤란하게 하였지만, 그는 일을 충성스럽게 수행했다. 당시 군주가 멍청하여, 그를 죽게 만들었으니, 깊이 측은한 점이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비록 후세사람들은 건륭제가 원숭환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것이 유가를 중시함으로써 한족 지식인을 회유하고, 만주족과 한족의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해석은 아무리 보아도 견강부회이다.
만일 청나라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숭정제가 원숭환을 능지처참한 것이 청나라의 반간계(反間計)에 걸린 것이된다. 그러나, 원숭환은 반년간 구금된 후에 비로소 처형당했다. 이것은 숭정제가 일시적인 흥분으로 원숭환을 죽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숭정제가 반간계에 걸려들어 원숭환을 능지처참했다는 이유는 확실히 생경하고 의심스럽다. 그 안에는 허위조작의 냄새가 풍기는 것이다. 건륭제가 원숭환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진실한 의도는 더욱 종잡을 수 없다.
사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역사자료를 보면, 원숭환을 죽일 이유가 없는게 아니다. 그에게 의심스러운 점이 없는 게 아니다. 그가 모문룡을 죽이면서 당당한 이유를 내세웠다. 다만, 개인은원이 작용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중요한 결과는 바로 원숭환이 모문룡을 죽인지 3개월후에, 청나라군대의 진격을 저지할 역량이 사라져, 직접 북경까지 쳐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숭환은 스스로 장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 부분은 입이 백개라도 변명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가 죽임을 당하는데, 가장 치명적인 화근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청나라의 모문룡에 대한 태도이다. 많은 사료를 보면, 모문룡은 청나라와 결탁하여 청나라에 투항한 혐의가 있어, 원숭환이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모문룡을 칭찬하는 <<요해단충록>>은 청나라의 금서였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청나라는 자신들의 조상을 이긴 적이 있는 악비에 대하여 미워하는 태도를 견지했었다. 청나라사람들은 그다지 도량이 넓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직 원숭환에 대하여만 이렇게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그 진실한 동기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광명정대한 것은 아니라고 추정할 수 있다.
많은 경우에, 역사는 잡탕죽이다. 그 안에는 너무나 많은 주관적인 억측이 포함되어 있다. 원숭환의 민족영웅이라는 장삼의 아래의 주름과 이(蝨)를 꿰뚫어보고, 자세히 검토해보면, 아마도 정반대의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추론은 정말 놀라서 가슴이 다 떨릴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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