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계진(丁啓陣)
사학계 혹은 비사학계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다: 악비를 죽인 것은 실제로 송고종 조구의 뜻이고, 진회는 그저 이 최고의사결정권자의 결정을 집행하였을 뿐이다. 그리하여 천고의 악명을 얻은 진회가 실은 억울한 점이 있고, 속죄양의 측면이 있다.
이 견해는 금방 들으면 이치에 맞는 것같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부인지인(婦人之仁)의 논리이다. 측은의 배후에는 충간(忠奸)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흑백을 뒤섞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실제로 자세히 생각해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나라가 송나라의 영토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언제든지 부대를 이끌고 남침하여 송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전쟁을 하든 화의를 하든 군사역량을 유지하는 것이 조정으로서는 급선무였다. 최고행정수뇌이자 재상(진회는 재상으로 조정을 18년간 좌지우지했다)으로서 그는 군사역량을 보호하는데 실패하였을 뿐아니라, 오히려 가장 중요한 군사장수중 하나를 죽여버리는데 골몰한다. 그리하여 송나라는 금나라에 대한 군사역량이 크게 감쇄된다. 이것은 송나라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일이다. 그를 간신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도 그에게 억울할 것이 없다.
어떤 사람은 악비를 죽이지 않으면, 진회와 조구가 제정한 "심시도세(審時度勢)"의 화의방침을 실시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진회가 악비를 죽여버린 곳은 항주이지, 전선이 아니었다. 즉, 악비는 이미 그의 회군명령을 받들어 항주로 돌아왔다. 이때, 진회의 권세로는 완전히 악가군을 다시 전선에 나가지 않게 할 능력이 있었다. 혹은 한세충의 '한가군'을 해산시킨 것처럼, '악가군'을 해산시켜버릴 수도 었다. 혹은 악비의 군권을 약화시키고, 지방관료로 임명할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로써 볼 때, '화의'를 위한 것이라면, 악비부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어떤 사람은, 송고종이 악비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은 그 이유가 바로 악비가 군대를 이끌고 직도황룡(直搗黃龍)한 후, 휘종, 흠종의 두 황제를 모셔오면 자신의 처지가 난감하게 될 것이고, 심지어 황제의 보좌를 넘겨주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주장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의문점이 있다. 첫째, 악비가 당시 직도황룡할 수 있을지, 두 황제를 모셔올 수 있을지는 그 가능성이 아주 낮았다. 둘째, 두 황제를 데려오는 난감한 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조구는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직접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제거해도 된다. 악비를 살해하면서 송나라군대의 북벌을 저지한 최종목적이 겨우 두 황제를 데려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도저히 현실성이 없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자신을 보위할 수 있는 군대를 망가뜨리게 된다. 이해득실을 따지자면 조구가 그렇게 모를 리는 없다. 셋째, 만일 휘종, 흠종의 두 황제를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할 목적이라면, 왜 악비만 살해하고, 한세충, 장준, 유광세 등은 놔두었는가? 알아야 할 것은 그들도 당시에 중요한 항금장수였다는 점이다. 특히 한세충은 항금의 태도나 군사역량에 있어서, 악비와 비견할 정도이고, 항금투쟁에서 부분적인 승리를 쟁취하고, 심지어 휘종, 흠종 두 황제를 모셔올 수도 있었다.
설사 백보 양보하여, 진회가 송고종의 뜻을 받들어 악비를 죽였다고 하더라도, 진회는 여전히 책임이 크다. 왜냐하면 그는 권력을 장악한 재상이므로, 주모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공범은 된다. 그리고, 진회가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악비부자를 죽였다는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직무를 수행하는 재상이라면 어떠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당태종때의 위징처럼, 황조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여야 하고, 자기의 생명과 지위는 도외시해야 한다고 본다. 필요할 때면, 분연히 일어나서, 직언을 해야 한다. 재상이 되어서, 황제의 멍청한 결정에 반대를 하지 못할 뿐아니라, 오히려 도와준다면, 아무리 적게 보더라도 직무유기이다.
진회가 악비부자를 죽인 것이, 송고종의 뜻을 집행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심판을 진행할 때는 진회만 심판하고 송고종은 심판하지 않는 것이 현대국제관례에도 맞는다. 2차대전이 끝난 후, 동경전범재판때, 죽인 것은 수상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와 기타 정부와 군대의 고급관리였고, 히로히토(裕仁) 천황은 상응한 제재를 받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도조 히데키가 죽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도조 히데키가 히로히토천황의 속죄양이어서 그가 억울하며, 일본군의 총칼에 희생된 각국인민들처럼 그가 무고하고 불쌍하다는 말을 들어봄 적이 없다.
악비, 악운부자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그가 권력을 장악한 18년간, 송나라는 계속 땅을 넘겨주고, 배상금을 지급하고 고개를 숙이며 신하를 자처했다는 상황으로 보더라도, 진회는 책임을 벗어나기 힘들다.
필자는 진회를 무죄라고 입증하기 위하여는 최소한 아래의 세 가지가 입증되어야 한다고 본다.
1. 진회의 '화의'계획이 일단 실시되면, 금나라에 점령된 실지를 전부 수복하고, 금나라에 고개를 숙이고 신하를 자처(혹은 '兒皇帝'라고 칭)하지 않아도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매년 금나라에 돈과 비단을 보내지 않아도 되어 송나라의 신민들에게 혜택이 있어야 한다.
2. 진회는 이미 악비, 악운 부자가 송나라조정을 배신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준비했었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3. 악비의 평생은 날조된 것이고 악가군의 전적도 기본적으로 허위보고이며, 여하한 제대로된 승리도 거둔 적이 없어야 한다. 금나라 사람들이 '산을 뒤흔들기는 쉬워도 악가군을 뒤흔들기는 어렵다'고 한탄한 것이라든지, 한세충이 악비가 감옥에 갇힌 후 재판을 하기도 전에 달려가서 악비부자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진회가 '막수유(莫須有)'라는 세 글자를 말하였다는 것등등이 모두 허구의 이야기여야 한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건데, 이 세가지중 어느 하나를 증명하려면, 그 모든 것이 천방야담(天方夜譚)에 다름아니다. 그러므로, 진회의 간신이라는 칭호는 아마도 손쉽게 지워버릴 수 없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모든 것은 진회가 오명을 벗으려는 시도는 무위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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