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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농민

중국농촌의 성비불균형

by 중은우시 2008. 11. 11.

글: 오치평(吳治平)

 

농민은 왜 아들을 특히 중시하는가? 성별비율이 균형을 잃은 이유는 부계혈연계승제 때문이다. 바로 아들이 부친의 피를 잇고, 아이들이 부친의 성을 따르고, 아들이 아니면 대를 잇지 못하고, 아들이 없으면 집안의 대가 끊긴다: 농촌에서는 가보, 족보가 있고, 사당을 건립하고 조상숭배사상이 있고, 제사를 이어야 하는데, 모두 남성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다. 가정재산분배와 상속에 있어서도 남성중심이다. 만일 아들이 없으면, 바로 "단자절손(斷子絶孫)"이다. 이는 일생 최대의 실패작이다. 그리하여 아들을 낳는 것은 여인에게 있어서 하나의 영광이 된다.

 

2006년 겨울, 나는 호북성 서북과 하남성의 접경지역의 석촌을 조사했다. 촌간부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들 촌에서 최근에 출생한 남아여아의 성비는 200:100이라고. 다시 10년이 지나면, 아마도 천하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남자들이 부인을 얻는 것이 될 것이라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마누라를 구하는게 무슨 농사짓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봄에 심어야 가을에 날 것이 아니냐. 성별비율이 너희 촌처럼 높으면, 여자가 없는데 어디서 찾느냐?" 그러자, 촌간부는 웃으면서 말했다. "현재는 개혁개방시대가 아니냐. 중국에서 못찾으면, 외국에서라도 수입해야지."

 

촌지부서기인 장파이(張發義)에 따르면, 그 마을의 총인구는 2,871명인데, 2004년에 29명의 아이들이 태어났고,그중 11명이 딸이다. 그런데, 둘째는 10명이었는데, 그중 9명이 아들이고 1명이 딸이다. 2005년도에는 39명이 출생하였는데, 그중 둘째는 15명이었다. 그중 11명이 아들이고, 4명이 딸이다.

 

촌간부는 몇몇의 촌민을 불러와서 우리와 얘기를 나누었다. 좌담회에 참가한 촌민들은 전부 농촌에서 집안에 아들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남성노동력이 없으면 농촌일, 특히 밭갈고 쟁기끄는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마을의 대부분의 남성노동력은 외지로 나가서 일하고 있었다. 집안에서 농사짓는 사람의 70%이상은 여성이었다. 확실히, 농촌에 남성노동력이 모자라서 아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나는 물어보았다. "왜 둘째에서 아들이 특히 많은가? 혹시 성감별을 한단 말인가?" 촌지부서기는 극력 부인했다. 그는 "농촌에서 성감별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성감별에 대하여는 부인했다. 어떤 사람은 우리 마을에서 남자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여기의 물과 흙이 좋아서라고 했고, 많은 촌민의 집안에는 궁중비방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는 표가 하나 그려져 있고, 표에는 어느 달에 수태하면 아들이 많고, 어느 달에 수태하면 딸이 많다는 내용이 있었다. 임신을 하고 시으면 표에 있는 기간을 계산해서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 있던 부녀들에게 '궁중비방'책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그녀들은 웃으면서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촌 부녀연합회주임인 왕진샹(王金香)은 촌의 성비가 높은 이유는 노인들 중에서 사내아이를 두어 대를 잇는 것을 중시하는 사상이 있어, 아들이 많은 집안이 흥성한 집안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노인은 아들이 없으면 죽어서 영혼이 외롭다고 생각하며, 농촌부녀들은 아들을 낳지 못하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촌에서 가장 심한 욕은 '단자절손' 절종(絶種)'과 같은 것이다. 어떤 집의 시어머니의 성이 양씨인데, 며느리가 효도를 다하지 않고 매일 시어머니를 욕했다. 시어머니는 화가나서 산언덕에서 곡을 했다. 한 나이 일흔된 과부가 다가와서 말했다: "양씨. 뭐 울게 있느냐. 나는 욕하는 며느리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

 

한 나이든 부녀는 "어느 집에서 며느리를 들인 다음 손녀를 보려고 하지 않겠는가? 아들이 없으면 제사가 끊긴다. 노인이 죽은 후에 제사지내줄 사람도 없다. 다시 말해서 양 한마리도 풀어기르고, 양 한무리도 풀어기른다. 옛날에 그렇게 많이 낳았지만, 모두 다 어른으로 키운 것은 아니었다."

 

얘기하는 중에, 촌민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한 사실은 "불효에 세 가지가 있지만, 후손을 두지 못한 것이 가장 크다" 여기서 '후손'은 아들을 말한다. 딸을 낳는 것은 손해보는 일이다. 마을의 풍습으로 '아들을 낳으면 기뻐하지만, 딸을 낳으면 걱정한다" 촌에서 부녀가 첫째도 딸, 둘째도 딸을 낳으면 축하행사도 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만나도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 이것은 우려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안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 것이다. 둘째로 아들을 낳으면, 그건 큰 기쁨이고, 만월연(滿月宴)을 첫째보다 더 융숭하게 한다. 아들과 딸의 가족에서의 지위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법률상으로는 아들이나 딸이나 모두 상속권을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촌에서는 딸이 상속권을 갖지는 않는다. 가정에서의 모든 재산은 아들이 상속받는다. 딸은 이를 다투지도 않는다. 모두 이걸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딸은 부모를 봉양하는 의무를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촌에는 불문율이 있다. 즉 딸만 있고 아들은 없는 노인은 보호대상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 촌에서, 딸만 낳은 부녀는 남자들의 차별대우를 받고 심지어 이혼까지 당한다. 촌의 한 부녀는 두 딸을 낳았는데, 남자가 나가서 산다. 아직 이혼은 하지 않은 상태로, 바깥에서 첩을 두었고 아들을 낳았다. 현재는 큰부인과 이혼하고 두 딸은 모두 엄마와 함께 산다. 여자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외지로 나가서 일을 하고 있다. 촌에 또 한 집이 있는데, 부인이 세 딸을 낳았다. 네번째로 밖에서 낳은 것이 마침 아들이었다. 남편은 바로 이혼하자고 했다. 부인은 할 수 없이 딸 하나를 데리고 촌을 떠났다. 남자는 나중에 아들을 데려온 여자와 결혼했다.

 

또 한 농촌부녀는 그녀와 남편은 모두 남아선호사상이 심해서, 아들 낳을 때까지 쉬지 않고 연속으로 네 딸을 낳았다. 여러번 가족계획위반으로 처벌도 받았다. 마을 촌간부가 네번째 딸을 낳았을 때 가족계획위반으로 벌금을 받으러 왔는데, 그 여자는 폭약을 품속에 안고 촌간부를 위협했다: "너희가 우리 집 문을 들어서면, 나는 같이 죽겠다." 집안은 자식이 많아서 원래 가난했던 집안이 지붕에서는 물까지 새게 되었다. 먼저 14살된 큰 딸이 골수암에 걸려, 달을 치료하느라고 그녀의 집은 큰 부채를 안게 되었다. 이어서 남편이 바깥에서 운송사업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다른 사람에게 중상을 입혔을 뿐아니라, 그 자신도 상처를 입었다.

 

젊은 부인인 꾸이윈(桂雲)은 눈을 붉히면서 말했다: "내가 첫번째 딸을 낳은 후에는 별로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두번째 딸을 낳은 후에는 압력이 컸다. 심리상으로 자괴감이 들고, 다른 사람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사회든 여자는 아들을 낳아야 귀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내 언니는 첫째는 딸이지만, 둘째는 아들이었다. 그런데 선천성심장병으로 잃게 되었다. 셋째를 낳았는데 또 딸이었다. 시어머니는 화를 내고, 시누이는 무시하고, 자형은 비관적이 되고, 언니가 받는 압력이 너무 컸다. 어떡할 거냐. 농촌은 남아선호사상이 너무 심하다. 나는 모두 딸만 낳았는데, 나중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29살의 동핑(董萍)은 첫째가 딸이었고, 지금 이미 5살이다.현재 그녀는 다시 임신했다. 그녀는 말한다: "촌에 지금 여자아이는 둘 뿐이다. 현재 집안에 아들을 낳았다고 좋아할 것도 없다. 나중에 며느리도 들이지 못하면 기분이 안좋을 것아닌가? 그런데,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걱정한다. 나중에 아들이 며느리를 들이지 못할까봐. 홀아비로 살면 어떡할거냐?"

 

남아선호의 사상과 사실상 아들이 없는 집이 적어서, 이곳에서 데릴사위는 아주 적다. 전 마을에 겨우 두 집에 데릴사위가 있다. 이 두 집안에서 데릴사위를 보낸 집안은 가정형편이 아주 좋지 않다.

 

한 데릴사위를 들인 집안은 장인장모도 후회하고 있다(사위가 뇌일혈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딸도 후회하고 있다(자기가 집안에 남아서 데릴사위를 들인게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네명의 여동생을 시집보내고, 지금도 다시 두 노인을 모시고 있다), 사위도 후회한다.

 

또 다른 데릴사위를 들인 집안의 사위는 하남사람이다. 집안에 형제가 다섯이고, 가난해서 며느리를 들일 수는 없어서, 데릴사위로 들어오니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자괴감을 지니고 있다. 매일 집에서 잠만 자고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여자도 아주 억울하다고 느껴서 사람만 보면 운다. 두 부분은 싸우기만 하면, 남편은 이혼하고 하남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원래 이미 사내아이가 하나 있는데, 남편은 하나를 더 낳자고 한다. 촌간부는 "너희 집안은 가족계획에 맞지 않는다. 더 이상 낳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는 촌간부를 위협한다: "나보고 더 낳지 못하게 하면, 나는 하남으로 돌아가겠다. 노인들을 모시지 않겠다."

 

마을에서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것은 가장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그저 바보이거나, 가난하거나, 형제가 너무 많아서 결혼하기 힘든 남자들만이 데릴사위로 들어간다. 데릴사위로 들어가면 결혼비용이 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여자가 부릴 수 있는 소를 데려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자가 호주이고, 낳은 아이도 여자의 성씨를 따른다. 데릴사위의 역할은 그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무료로 여자에게 정자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데릴사위는 자신이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보다 신분이 낮다고 생각한다. 데릴사위가 촌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거꾸로 남아선호사상을 더욱 강화시킨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아들이면 바보라 하더라도 사위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촌민들에게 어떻게 국가의 독생자녀정책과 여자호주양로의 우대정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촌민들은 "모든 여자호주가 부모가 만60세가 된 이후 매년 1인당 600위안을 도와주는데, 이 정책은 마을에서 하나의 방향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정책이 아무리 좋더라도 아들만 못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들만 있다면 600위안의 양로비는 벌 수 있고, 집안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예측한다: 만일 성비불균형이 계속 심화되면, 2020년이 되었을 때, 3000만-4000만의 결혼적령기의 남성들이 총각으로 지내야 한다. 그 때, 여러 남자가 한 여자를 처로 삼으려고 싸우는 심각한 모순 내지 악성사건이 대폭 증가할 수 있다. 많은 남자들은 평생 결혼하지 못하는 결과도 나올 것이어서, 생활품질이 아주 악화되고, 행위와 심리가 비정상이 되어 일련의 사회문제화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은 성비불균형만 얘기하면 바로 장래 수천만의 남자들이 홀아비로 지낼 것을 걱정하면서, 여자아이를 죽여버리는 행위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을까? 설마 사람들은 성비불균형문제에 대한 인식과 처리에서 살을 베는 고통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남녀는 마찬가지로 평등하다는 관념을 받아들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