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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농민

어느 임산부의 죽음

by 중은우시 2007. 11. 28.

글: 장명(張鳴)

 

해산을 앞둔 임산부가 있고, 수술을 해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남편이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계속 거부하여, 결국 임산부는 병원에서 죽었다. 어떤 사람들은 병원이 너무 고지식하게 일처리하였고,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하며, 어떤 사람들은 남편을 질책한다. 그가 무지하고 고집불통이었기 때문이라고, 심지어 그가 고의로 그의 처를 해쳤다고 의심하기까지 한다.

 

당연히, 경찰이 개입하면, 조사를 거쳐 진상이 밝혀질 것이다. 그런,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만으로 보면, 이 사건은 그저 보통 가난뱅이의 특수한 비극일 뿐이다.

 

특수하다고 하는 것은 이 사건이 북경의 대형병원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환자의 남편이 고집스럽게 병원에서 정한 수속을 이행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이라고 하는 것은, 예를 들어 이 부부가 북경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시골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드문 것도 아니다. 농민은 아픈 것정도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병원에 입원하기를 꺼린다. 그래서 결국 집안에서나 조건이 열악한 개인진찰소, 혹은 지방의 위생원(보건소)에서 소리소문없이 죽게 된다. 죽으면 죽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가족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주의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

 

이 사건의 부부는 북경의 작은 식당에서 그릇을 씻는 일을 하는 농민이었다. 식당에서 이들을 일하게 된 것도 식당주인이 이들을 불쌍히 여겨서였다. 두 사람은 1그릇에 6위안하는 면을 나누어서 먹으면서 일했다. 임신한 부인은 계속 일을 하기는 했지만, 아마도 병이 든 게 오래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개인진찰소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았지만 낫지가 아니하여 어쩔 수 없이 큰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큰 병원을 찾아오기는 왔지만, 그저 감기를 치료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는 아마도 시골사람인 부인이 도시사람처럼 정상적인 임신후의 여러 검사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며, 부부 두사람은 확실한 해산일자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당사자중의 하나인 남편은 확실히 고집불통인 사람이었고, 우매하고 무지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은 병에 대하여, 임신과 수술에 대하여 겨우 단편적이고 잘못된 지식만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배를 가르고 수술하는 것은 아주 큰 일이었다. 그는 자기의 잘못된 지식을 믿었고, 부인의 해산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믿었으며, 단순한 감기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판단을 믿었고, 심지어 점쟁이의 말은 믿었지만, 의사의 말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북경의 큰 병원이었음에도.

 

당사자들은 미개한 원시인이 아니다. 무당만 믿고 현대의술을 거절할 정도에 이르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병원 문을 들어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병원의 의술을 못믿어서는 아니고, 의사와 병원의 도덕성을 믿지 못해서이다. 이런 사정을 우리가 한두번 들었는가? 작은 병을 큰 것처럼 과장하여 치료한다든지, 치료수준을 터무니없이 높인다든지, 비싼 검사기기를 사용한다든지, 값비싼 약물을 사용한다든지 하는 것들, 그리고 환자에게 필요하든 말든 무조건 수술을 해버린다든지 하는 것이다. 가장 피해를 입기 쉬운 농민으로서 그는 30년동안 이런 얘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니, 조금도 이상할 것도 없다. 사건발생지인 북경조양의원은 이 사건에서 그래도 대응을 괜찮게 한 편이다. 환자가 농민이라고 하여 무시하지도 않았고, 환자가 돈이 없다고 하여 수술을 거절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환자의 남편을 설득하느라고 애를 썼고, 그에게 수술동의서 서명을 요구한 것은 규정에 따른 것이니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환자는 죽음에 이르렀다. 조양의원의 이런 선의적인 태도도 사람들의 의료계에 대한 불신은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병원과 의사들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실, 비극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은 당사자들이 가난하다는데 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당사자들이 당시 몸에 지닌 돈은 겨우 130위안(한화 약 16000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 중 100위안은 작은 식당주인이 그들에게 빌려준 것이다. 이 정도의 돈을 가지고는 처가 감기만 걸렸더라도 치료비로 부족했을 것이다. 이런 가난, 극도의 빈곤이 이들의 심리를 왜곡시킨 것이다. 어쨌든 모두 병치료에 돈을 많이 쓰고 싶어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 돈이 다른 사람이 빌려준 것이라도. 이런 심리는 우리가 많은 농민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사건발생당시에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1만위안을 부담해서 그들을 도와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먼저 당사자들이 아마도 그 말을 믿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다음으로는 당사자가 선량해서, 그는 병원이 고의로 작은 병을 큰 것처럼 과장한다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 마음씨 좋은 사람의 돈을 받아서 헛되게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이 발생하였다. 모자의 두 생명은 이렇게 갔다. 이것은 가난한 농민부부의 비극일 뿐아니라, 의료계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