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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당)

오아전선(五牙戰船): 중국최초의 대량살상무기

by 중은우시 2008. 11. 9.

 

 

 

글: 노아평(蘆雅萍)

 

중국고대의 대규모살상무기중 가장 빠른 것은 수나라 개황8년의 오아전선(五牙戰船)이다. 이는 전문적으로 남조 진(陳)나라를 공격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고, 3백여년간 분열되어있던 남북통일대업을 이루는데 큰 공헌을 한다.

 

진나라말기부터 수나라초기까지, 강남의 여러 왕조는 장강의 천험에 의지하여 강남을 점거하면서, 남북항쟁의 국면을 형성했다. 수나라에 이르러, 남조 진국은 이미 통일되고 날로 강해지는 북조에 최종적으로 집어먹힐 운명을 피하기 위하여 수군선단을 발전시켰다. 수군의 강성함과 함선의 견고함에 수군의 훈련으로 북조의 수군은 여러번 패배를 안겨, 북조는 그저 장강의 앞에서 한탄만 할 뿐이었다.

 

수나라초기, 장강삼협의 칠백리수로는 양측이 산이 연이어 있고, 암초가 곳곳에 있다. 그중 협구 기협(夔峽)은 삼협중 가장 험한 곳이었다. 강물이 소리치며 하늘로 튀고, 소용돌이가 사방에 있다. 배를 항해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그리고 급류의 강중심에 커다란 초석이 있는데, 방원이십장에 높이 십장이었다.

 

북조의 여러 통치자들은 남조를 정복하여 천하를 통일하는 천고제업을 완성하려는 꿈을 꾸지 않은 자가 업었다. 일찌기 남조에 대하여 여러번의 도강전투를 벌였으나, 배 한 척, 병사 하나 남조의 국토에 진입할 수 없었다.

 

진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수나라는 건국초기에 선박을 건조하고, 장비를 갖춘다. 개황2년부터 대거 수군을 훈련시키고, 각종 도강의 전선병선을 건조하며, 각종 원거리사격의 노기(弩機)도 만든다. 도강하는 전선에는 공성의 포석기, 파성추, 운제, 소차, 호교등 각양각색의 전쟁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모두 50만의 수륙대군을 보내여 육합, 양양, 신주, 강릉, 기춘, 여강, 오주, 동해의 팔로로 진격했다. 각개격파를 거쳐 최종적으로 강을 따라 내려가서 하구에서 부대가 만나서 강을 가로건넌 후, 일거에 상륙하여 건강(建康)을 점령한다.

 

이번 남조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수나라는 중형 황룡전선(黃龍戰船)을 수천척 건조하고, 소형선박 수만을 건조하는 외에 몰래 5척의 대규모살상무기를 갖추고 수나라가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을 보증할 오아전선을 건조하게 되는 것이다.

 

오아전선은 천오백년전 중국인들의 뛰어난 발명품이다. 당시 "핵공격함"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이다.

 

수나라의 오아전선은 높이가 10장, 너비가 40장, 상하 5층이었다. 그리하여 오아(五牙)라고 불렀다. 매 선박은 사병 팔백을 수용하며, 배위에는 강노기(强弩機)를 설치하고, 뱃머리에는 철갑으로 둘렀다. 적선과 부닥치더라도 오아전선은 훼손되지 않았다. 전후좌우에 모두 6개의 높이 5장의 박간(拍竿)을 갖추고 있었다. 머리에는 수톤의 쇳덩이라가 있어 이것을 쏘면 적선을 부서뜨리거나, 침몰시키거나, 전복시킬 수 있어 위력이 아주 셌다.

 

그리고 오아전선보다 약간 작은 황룡전선은 매 선박에 병사 백명을 두었다. 더욱 작은 것은 용도가 서로 달랐다. 진격하는 것, 운송하는 것, 기습하는 것, 사람을 건네는 것...각각 그 용도가 달랐다.

 

개황8년 10월, 수나라 황제 양견이 칙령을 내려 남조를 토벌하는 격문을 발령한다. 먼저 남조의 국주 진숙보의 스무가지 잘못을 열거하고, 격문을 삽심만장이나 베끼게 해서 천하에 반포하고 강남의 곳곳에 걸었다. 수나라는 정의의 전쟁을 한다고 선언했다. 그 후, 진왕(나중에 수양제) 양광을 상서령으로 삼아, 총지휘관이 되어 군대를 지휘하게 한다. 진왕 양광은 병사를 이끌고 육합을 출발하며, 진황 양준은 병사을 이끌고 양양을 출발하고, 청하공 양소는 병사를 이끌고 신주를 출발하며, 형주자사 유인은은 병사를 이끌고 강릉을 출발하며, 의양공 왕세적은 병사를 이끌고 기춘을 출발하며, 신의공 한금호는 병사를 이끌고 여강을 출발하며, 양읍공 하약필은 병사를 이끌고 오주를 출발하며, 낙총공 연영은 병사를 이끌고 동해를 출발한다. 수나라의 변경의 모든 부대를 모아서 출발하니 모두 51만8천명이다. 동으로는 창해에서 서로는 파촉에 이르기까지 깃발과 배들이 수십리를 연이어 있었다. 장강 상류, 중류, 하류에서 병사를 8로로 나누어 함께 진나라를 치러 간 것이다.

 

상류에서 행군원수 양소는 친히 수만의 수군을 이끌고, 4척의 "오아전선"으로 길을 열며, 수천척의 "황룡전선"과 "책맹(舴艋)"이 뒤를 따랐다. 밤을 틈타서 강물을 따라 내려갔다.

 

바람은 불고 돛은 가득찼다. 파도는 거세고 물은 급했다. 대군은 바람을 타고 바로 삽협입구로 향했다.

 

이때 남조의 수군대장 여총숙(呂忠肅)은 충성스럽고 용맹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개인재산을 내놓아서 병사들에게 상을 내걸었다. 남조수군의 투지는 아주 높았다. 양안에 장벽을 만들고 누대를 쌓았으며, 철삭을 걸어놓았다. '청룡'전선 수백척을 가지고 있는데, 배 하나에는 수군 백명씩을 실었고, 강노화전을 장비하고 있었다. 하류의 협곡마다 병사를 배치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상류에서 내려오는 수나라 수군을 막으려고 하였다.

 

수나라군대는 오아전선을 이용하여 남조가 강에 걸어놓은 세 개의 철삭을 끊어버리고, 마침내 가장 험준한 몇 군데 관구를 돌파한다.

 

진나라이래로 삼백년간 남북의 싸움에서 장강의 천험에만 도달하면 북조의 수군은 전멸하고 끝이 났었다. 남조는항상 장강의 천험에 의지하여 안정을 구해왔다.

 

남조의 하류에 있던 수군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남조의 상류의 수군이 수나라의 수군과 교전하는 중에 연안의 각 성들이 차례로 수나라에 함락될 줄은. 그리고 수나라에 다섯 척의 "오아전선"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 배에 대한 각종의 전설을 들으면서 그들은 모두 겁을 먹었다.

 

과연 수나라의 수군이 당당하게 삼협의 최종관문인 서릉협에 도착했을 때, 하류의 남조수군은 자기의 청룡전선보다 몇배나 높은 몇척의 오아전선을 바라보았다. 검은 산이 누르는 것처럼 풍랑을 일으키면서 다가올 때, 남조의 수군은 이것이 천신이 인간세상에 내려온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혼비백산했고, 겨우 용기를 내어 배를 몰아 싸우러 나갔다.

 

남조의 수백척의 청룡전선은 강노화전을 한꺼번에 쏘아댔다. 졸지에 칠흑의 강물위에 유성이 쏟아지는 것처럼 강물은 대낮처럼 밝아졌다.

 

강물결소리, 죽여라는 소리, 북소리, 활소리가 벼락과 천둥처럼 들려왔다.

 

수나라의 오아전선은 철갑으로 머리부분을 보호하고 있고, 높고 컸으며 또한 용맹했다. 궁노화전 정도로는 그를 상하게 할 수 없었다. 반대로, 위에서 내려보면서 강노를 쏠 때 화살은 백발백중이었다.

 

남조의 청룡전선은 연이어 오아전선에서 쏘는 강노를 그대로 맞았다.

 

남조의 대장 여중소가 지휘하는 백척의 "청룡"전선은 수개로 나누어 오아전선을 포위공격했다. 양소는 남조의 전선이 다가오자, 배에 박간을 휘두르게 하여, 수십명의 장사가 함게 도르레를 끌어올려 높이 들어서 낙하시켰다. 이것이 떨어지는 곳에 있는 남조의 선박은 박살이 났다.

 

강위에는 전선의 잔해만 가득했고, 도망치는 병사들이 가득했다

 

혼란을 틈타서, 수나라수군은 '책망'의 작은 선박에 물에 밝은 수군을 물 속으로 잠수하게 하여 날카로운 도끼로 남조의 청룡선박의 바닥을 뚫었다.

 

8로로 진격하는 수나라군대가 하구에서 모인 후에 일거에 강남으로 상륙하고, 파죽지세로 남조의 도성 건강성까지 무너뜨리고, 황궁으로 진입한다. 우물 속에서 남조의 후주 진숙보와 그의 경국지색부인 장여화를 생포한다.

 

수문제 양견이 남북의 삼백년간의 분열역사를 마무리 지은 것이다. 수문제의 오아전선은 당시의 신식무기로 남조수군을 훼멸시킨 신화를 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