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문화/중국의 음식

황제의 식사때 독살을 방지하지 위한 조치는?

by 중은우시 2008. 10. 11.

 

 황제의 식사장면(영화)

 

 

글: 예방육(倪方六)

 

황제는 존귀한 인간천자이다. 입는 것은 용포(龍袍)이고, 사는 곳은 금란보전(金鸞寶殿)이며, 움직일 때는 연(輦)을 타고 다닌다. 먹는 것도 자연히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 황제는 어떻게 식사를 하는데, 보통사람들처럼 일가식구들이 한 식탁에 모여앉아서 식사를 하는가? 먹는 것은 항상 산해진미, 만한전석(滿漢全席)이었던가? 위진(魏晋)시대에 사람의 젖으로 요리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나중의 황제의 식사도 그러했던가?

 

황제의 식사문제는 과거에 황실의 기밀이었고, 외부에 알리지 않았었다.

 

황제가 어떻게 식사하는가? 매 왕조마다 각각 다른 점이 있다. 요리가 얼마나 풍성한지와 조합하는지는 황제들의 구미와 기호에 따라 달라졌다. 현재 많이 알려진 것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식사방법이다.

 

황제가 식사하는 것은 일반사람들처럼 하루에 세끼가 아니었다. 어떤 경우는 많았고, 어떤 경우는 적었다. 예를 들어, 청나라황제는 일반적으로 매일 단지 두 끼만 먹었다. 아침과 저녁이었다. 두끼를 먹든 세끼를 먹든 황제가 배고플 일은 없었다. 중간에 점심(點心), 간식등이 있었다.

 

황제는 스스로 고가과인(孤家寡人)이라고 칭하는데, 식사할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자기 혼자서 먹는다. 전용식탁에서 혼자 먹는다. 혼잣상을 받는 것이다. 비록 황제는 혼잣상을 받지만, 식사할 때 그 혼자인 것은 아니다. 곁에는 시중드는 환관 시선태감(侍膳太監)이 있다. 요리가 많으므로, 식탁 위에는 가득 차려진다. 식사할 때, 먼 곳에 있는 요리는 집기 어렵지 않았을까? 그건 걱정할 것이 없다. 황제가 식사할 때는 자기가 요리를 집을 필요가 없다. 태감이 입까지 가져다 준다.

 

황제가 식사할 때, 태감이 곁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총신(寵臣)이나 황자(皇子)들이다. 황제가 먹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기분이 좋거나 더 많은 경우에는 다 먹지 못하게 되면, 차린 맛있는 음식을 그들에게 하사하여 먹게 하는 것이다. 하사받은 사람들은 별도로 차린 탁자 앞에서 서서 먹어야 한다. 황제가 내린 것은 배고프지 않거나 먹고 싶지 않더라도 먹어야 한다. 그리고, '맛이 아주 좋다'고 표시하여야 한다.

 

일찌기, 황제가 식사할 때 음악을 연주하여 흥을 돋군 적이 있다. 나중에 황제는 생일잔치나 경축행사연회에서만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다만, 식사할 때, 요리이름을 늘어놓는 것은 계속되었고, 청말에도 여전히 그러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부의는 그의 자서전 <<나의 전반생>>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황제의 식사에 관해서는 별도의 전문용어가 있다: 절대 다른 사람들이 말실수해서는 안된다. 식사는 식사라고 부르지 않고 "선(膳)"이라고 한다. 식사를 하는 것을 "진선(進膳)"이라고 한다. 식사를 시작하는 것을 "전선(傳膳)"이라고 한다. 주방은 "어선방(御膳房)"이라고 한다. 식사를 할 때는 고정된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황제가 마음대로 결정한다. 내가 "전선"이라고 분부하면, 앞에 있던 어전소태감이 양심전의 명전에 기다리고 있던 전상태감에게 "전선"이라고 소리친다. 그러면 전상태감이 다시 이 말을 양심전 밖에 서 있던 태감에게 전한다. 그는 다시 서장가의 어선방태감에게 전한다....이렇게 하여, 계속 어선방에까지 전해진다. 대답소리가 전해지기도 전에 마치 시집가는 행렬같은 행렬리 어선방을 나선다. 이는 수십명의 차려입은 태감으로 구성된 것이다. 크고 자은 일곱 탁자의 선탁(膳卓)을 들고 수십개의 금룡이 그려진 주칠합(朱漆盒)을 들고, 양심전을 향하여 직행하는 것이다. 명전으로 들어와서, 소태감이 받아서, 동난각(東暖閣)에 차린다. 평소의 요리는 두 탁자이고, 겨울에는 또 다른 하나의 탁자에 샤부샤부를 차린다. 이외에 각종 점심, 미선, 죽품의 세 탁자가 있고, 함채(咸菜) 작은 식탁이 하나 있다.

 

요리이름을 늘어놓는데, 청나라의 표준 어선은 매 끼니마다 120가지 요리가 나왔다. 3개의 큰 식탁에 차린다. 이외에 주식, 점심, 과일등이 있다. 나중에, 어떤 황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너무 낭비라고 생각하여 요리수를 주렸다. 120가지를 64가지로 하였다. 서태후의 남편인 함풍제가 황제일 때는 다시 32가지로 줄였다; 함풍제가 죽은 후 수렴청정하던 동태후(자안태후)는 다시 24가지로 줄였다. 동태후가 죽은 후에 대권을 장악한 서태후는 다시 요리를 늘였다. 매끼 120가지의 옛날 기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식사 1끼에 최소한 200냥의 은자를 썼다.

 

황제가 식사할 때, 요리이름을 늘어놓는다는 것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바로 매 요리마다 이름이 무엇인지, 만든 요리사가 누구인지, 접시의 곁에 분명하게 적어둔다. 이렇게 하는 것은 첫째, 요리의 품질을 보증하고 요리사의 솜씨를 드러내기 위하는 점이 있고, 둘째, 요리에 품질문제가 있는 경우 책임추궁을 하기 위해서이다. 최근들어 고급식당에서 이렇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황실에서 배운 것인지 모르겠다.

 

황제의 식사도구도 아주 따진다. 금은기를 위주로 한다. 혹시 도자기제품이더라도, 최고수준의 제품이다. 그주에 금으로 된 완(碗, 주발), 접(碟,접시), 반(盤, 소반)등의 식기는 모두 황실의 호사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황실은 모두 "금그릇"을 좋아했다. 만일 다른 것으로 만든 식기로 요리를 담아온다면, 주인이 화를 낼 지도 모른다.

 

청나라 순치황제가 쓴 <<단경황후행장>>에는 당초 황후 보얼지지터를 폐위시킨 상황을 언급하고 있는데, 원인의 하나가 바로 사치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식사를 할 때, 식기 하나라도 금으로 되어 있지 않으면 바로 불쾌해 했다는 것이다.

 

금식기 외에 은식기도 황제의 식기에 들어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건륭21년(1756년) 십일월 초삼일 <<어선방금은옥기보관명단>>에 기록된 식기는 다음과 같다:

 

금갱시(金羹匙) 1개, 금시(金匙, 금숫가락) 1개, 금차자(金叉子) 1개, 금양아저(金鑲牙箸) 1쌍, 은서양열수과(銀西洋熱水鍋) 2개, 유개은열과(有蓋銀熱鍋) 23개, 유개소은열과(有蓋小銀熱鍋) 6개, 무개은열과(無蓋銀熱鍋) 10개, 은과(銀鍋) 1개, 은과개(銀鍋蓋) 1개, 은반관(銀飯罐) 4개, 유개은도자(有蓋銀桃子), 은선자(銀[金旋]子) 4개, 유개은난완(有蓋銀暖碗) 24개, 은개완(銀蓋碗) 6개, 은종개(銀鍾蓋) 5개, 은참화완개(銀鏨花碗蓋) 2개, 은시(銀匙) 2개, 은갱시(銀羹匙) 13개, 반변흑칠호로(半邊黑漆葫蘆) 1개, 내성은완(內盛銀碗) 6개, 은통(銀桶) 1개, 내성금양아저(內盛金鑲牙箸) 2쌍, 은시(銀匙) 2개, 오목쾌(烏木) 10쌍, 고려포(高麗布) 3개, 백방사(白紡絲) 1개, 흑칠호로(黑漆葫蘆) 1개, 내성피7촌완(內盛皮7寸碗) 2개, 피5촌완(皮5寸碗) 2개, 은양리피차완(銀鑲裏皮茶碗) 10개, 은양리5촌무푼피완(銀鑲裏5寸無分皮碗) 1개, 은양리형구3촌6푼피완(銀鑲裏馨口3寸6分皮碗) 9개, 은양리3촌피완(銀鑲裏3寸皮碗) 22건, 은양리피접(銀鑲裏皮碟) 10개, 은양리피투배(銀鑲裏皮套杯) 6개, 피3촌5푼접(皮3寸5分碟) 10개, 한옥양감자단은갱시(漢玉鑲嵌紫檀銀羹匙), 상사은시(商絲銀匙), 상사은차자(商絲銀叉子) 2개, 상사은쾌(商絲銀) 2쌍, 은양리호로완(銀鑲裏葫蘆碗) 48개, 은양홍채칠완(銀鑲紅彩漆碗) 16건.

 

이 자료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건륭이 사용한 식기중에서 절대다수는 모두 은기이다. 만일 황실에서 금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기세와 고귀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은기를 사용한 것은 많은 경우 실제기능때문이다.

 

중국역사상, 황제가 요리에 누군가가 장난을 쳐서 독살된 사건이 적지 않다. <<자치통감. 진기8>>(권86)의 기록에 따르면, 한혜제 사마충은 "떡을 먹고 중독되어, 경오, 현양전에서 붕어하다". 그리하여, 황제를 독살하는데에는 주방장이 가장 손쉽게 성공할 수 있다. 다만, 황제도 주방장의 독살시도에 대응하는 수법이 여러가지 있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맛보게 하는 것인데, 이 임무는 왕왕 시선태감의 임무이다. 이를 "상선(嘗膳)"이라고 한다. 만일 독이 있으면, 황제는 바로 피하여 절명될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이것은 보통사람도 생각해낼 수 있는 독살을 피하는 수법이다.

 

또하나의 가장 간단하고 가능한 방법은 은기를 사용하여 요리를 차리는 것이다.이는 개략 황가가 주방장 혹은 아랫사람이 독을 넣는 것을 방지하는 작은 기교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황실에서 은기를 많이 쓰게된 실질적인 이유이다.

 

원래, 만일 독이 있으면, 은기는 즉시 색깔이 검은색으로 변한다. 현대과학은 이미 증명한 바 있다. 이런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유효하다고. 왜냐하면 은은 황화합물을 만나면 화학반응을 보이고, 흑색의 황화은이 된다. 과거에 자주쓰던 독약은 비상(砒霜)인데, 채취할 대 왕왕 황화합물을 포함하게 되므로, 은기가 독을 찾아내는데 영험했다.

 

만일 다른 재질의 식기 예를 들어 도자기를 사용한다면, 식기의 바깥에 작은 은패를 두른다. 이런 작은 은패가 바로 독을 감별하는 도구이다. 두껑을 연 후에 태감은 황제의 앞에서 은패를 탕속에 넣어서 휘저어 본다. 부의도 이를 확인해준 바 있다. "매번 요리접시나 차완에는 모두 은패가 있다. 이는 독을 넣는 것을 방비하기 위한 것이다"

 

당연히 황제가 독을 넣는 것을 방지하는 수법은 이외에도 많다. 예를 들어, 청나라때의 황제는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를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법도는 바로 '식사를 할 때 세 숫가락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매번 식사가 들어오면, 어선방은 요리샘플을 남겨두어, 검사를 받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