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위루풍세세(佇倚危樓風細細)
망극춘수(望極春愁)
암암생천제(黯黯生天際)
초색연광잔조리(草色煙光殘照裏)
무언수회빙란의(無言誰會憑闌意)
의파소광도일취(擬把疎狂圖一醉)
대주당가(對酒當歌)
강락환무미(强樂還無味)
의대점관종불회(衣帶漸寬終不悔)
위이소득인초췌(爲伊消得人憔悴)
높은 누각에 우두커니 기대어 있는데, 바람은 살랑살랑.
멀리 땅끝을 바라보니 봄날의 우수처럼 봄풀이
하늘 끝에서 흐릿하게 자라나고 있네.
석양의 희미한 빛 속에 봄풀의 파란 색과 아지랑이의 빛이 보이는데,
말하지 않는데 누가 난간에 기대선 내 마음을 알아주리오.
마음 껏 술에 취해버릴까 하고
술잔을 들고 노래도 불러보지만
억지로 즐거워하려니 재미가 없네
옷과 허리띠는 점점 헐렁해져도(살이 빠져도) 아무런 후회는 없다
그대를 위해서라면 몸이 초췌해지는 것쯤이야.
이 사를 보면 유영이라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우수주의자이다. 봄날에 피어나는 풀을 보고도 그것을 "봄날의 우수(春愁)"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뒷쪽을 보면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때문임은 알 수가 있지만, 그래도 봄날에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풀을 보면서 강한 생명력을 느끼거나 삶의 활력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누르고 눌러도 사라지지 않고 새로 돋아나는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슬픔'(그게 숙명적인 것이건 떠나간 사랑이건)으로 느끼고 있다. 아마도 그는 봄풀이 돋아나며 대지를 찌르는 것을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슬픔이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으로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따스한 봄날이 오니, 작가는 소풍이라도 가면 기분이 풀릴까 하여, 야외로 나가서 높은 누각에 올라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기분전환을 시키려고 높은 누각에 올라가서 멀리 바라본다. 원래 기대한 것은 가슴이 탁트이고, 만물이 소생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 속의 자잘한 슬픔은 잊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땅과 하늘이 마주하는 땅끝, 하늘끝에는 파르스름하다. 아마도 봄풀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원래는 봄날에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을 보면 슬픔을 잊을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소리소문없이 어느 새인가 온 들판을 뒤덮어 버리는 봄풀을 보니, 오히려 마음 속에서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아무리 억제하려해도 억제되지 않는 그녀, 그녀에 대한 그리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떠올라서 슬픔만 더해질 뿐이다. 내 마음도 슬픈데, 봄날의 대지도 슬퍼하고 있다.
외부의 조건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반영한다. 마음이 슬플 때는 화창한 봄날마저도 슬프게 보이고, 마음이 즐거우면 낙엽지는 가을마저도 즐거워보이는 것이다. 봄날에 소풍가면 사랑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난간에 기대어 있는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그녀의 숨소리 같고...파릇파릇 돋아나는 봄풀은 마음 속에서 살아나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 피부로 느끼는 모든 것은 그녀에 대한 사랑 뿐이다.
작가는 잊어버리는 도구로 또 하나를 준비했다. 바로 술이다. 술을 먹고 노래를 부르면 슬픔을 쫓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누각에 오를 때 술을 한통 들고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러봐도 마음이 풀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빠른 속도로 그리움이 번져가서 어느새 마음을 온통 점령해 버린다. 억지로 웃고 즐기려 한다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왜 이런 행동을 했고, 왜 이런 상태에 처했는지에 대한 해답은 마지막의 두 문구가 그대로 보여준다.
"옷과 허리띠가 헐렁해진다." 이는 사랑하는 여인과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민하느라 살이 빠졌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직접적으로 살이 빠져서 바짝 말랐다는 표현보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결국, 작자가 살이 빠지고, 봄날에 술을 준비해서 높은 누각에 올라가는 것은 모두 사랑하는 여인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와의 애정전선이 순조롭지 않았던 모양이다. 서로 다른 곳에 있어서 만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고,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처지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고민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이것보다 잘 그리기는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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