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처절, 대장정만, 취우초헐(寒蟬凄切, 對長亭晩, 驟雨初歇)
도문장음무서, 유련처, 난주최발(都門帳飮無緖, 留戀處, 蘭舟催發)
집수상간루안, 경무어응열(執手相看淚眼, 竟無語凝噎)
염거거천리연파, 모애침침초천활(念去去千里煙波, 暮靄沉沉楚天闊)
다정자고상리별, 경나감랭낙청추절(多情自古傷離別, 更那堪冷落淸秋節)
금소주성하처, 양류안효풍잔월(今宵酒醒何處, 楊柳岸曉風殘月)
차거경년, 응시양신호경허설(此去經年, 應是良辰好景虛設)
변종유천종풍정, 경여하인설(便縱有千種風情, 更與何人說)
가을 매미 슬피 우는데, 헤어지는 정자의 날은 저물고, 몰아치던 비는 잠시 쉬고 있네.
성문밖에 마련한 송별자리는 도저히 흥이 나지 않고, 떠나기 아쉬워 하고 있는데, 배는 떠나자고 재촉하네.
서로 손잡고 눈물어린 눈동자를 마주하고, 말은 한마디 못하고 울먹이기만...
앞으로 갈 길은 생각하니 천리 먼길이 아득하고, 저녁아지랭이가 어둑하게 남쪽 하늘을 뒤덮고 있네.
정이 많으면 자고로 이별이 서러운 법, 더구나 차가운 가을 날임에야.
오늘 밤은 어디서 술을 깰 것인가? 버드나무 둑에서 아침 바람을 맞으면서 이그러진 달을 바라보겠지.
이번에 가고나서 해가 흐르면, 분명 좋은 시절이 오더라도 모두 헛된 것이리.
아무리 좋은 풍경이 많다고 하더라도, 누구와 얘기할 수 있으리오.
이 송사는 유영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만히 음미해보면 참으로 그림처럼 광경이 펼쳐진다.
한선(차가운 매미), 장정(송나라때 역참에는 10리마다 장정, 5리마다 단정을 세웠다고 함. 그래서 장정은 길떠나는 사람을 송별하는 곳으로 인식됨), 만(저녁), 취우(비)...첫 구절만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인지를 다 말해주고 있다. 가을에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멀리 떠나야 하는 것이다.
도문(경성의 문)으로 작자가 떠나는 곳이 경성임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지방으로 부임하거나 쫓겨가는 것이리라. 헤어지는 송별연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마주 앉았지만, 도저히 마음이 정리되지 않는다. 떠나기 싫어 계속 있는데, 뱃주인은 떠나자고 재촉하고 있다. 운하옆에 정자가 있고, 정자 아래에는 배가 기다리고 있으며, 뱃사공은 아마도 하품이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정자에서 마지막 송별연을 벌이고 있는데, 영 떠나기가 아쉬워 움직이지 않는데, 뱃사공은 무정하게 자꾸 재촉하고 있다.
서로 손잡고 눈물흐르는 눈을 바라보면서 말한마디 못하고 울먹이는 모습이 클로징된다. 첫구부터 여기까지는 마치 카메라로 먼 곳에서 정자를 비추고, 배를 비추고, 뱃사공을 비추고 나서, 주인공 남녀를 비추다가, 다시 꼭잡은 두 손, 눈물로 마주한 두 남녀가 화면이 바뀌는 느낌을 갖게 한다.
유영은 여기서 더 이상 풍경을 읊지 않고, 바로 헤어진 이후의 광경을 그려보고 있다. 이는 작자의 솜씨기 비범한 것을 말해준다. 생각을 따라 옮겨가니, 이제 배를 타면 천리 먼길을 떠나야 하는데, 뱃길을 바라보니 아득하게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리고 시간은 저녁때가 되다보니 저녁아지랭이가 내려앉았는데, 가야할 남쪽지방의 하늘이 넓게만 느껴진다. 초천(楚天)은 초나라의 하늘, 초나라는 지금의 호북, 호남등의 지방에 걸쳐 있는 남쪽 나라이다. 이로써 작가의 도착지점은 남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 생각을 또 해본다. 원래 헤어지는 것은 항상 슬픈 일이지만, 낙엽지는 가을은 헤어지지 않아도 사람이 서글픔을 느끼는 계절인데, 게다가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져야 하다니...설상가상으로 더욱 슬퍼지는 광경이다.
내일 아침에는 어디서 술이 깰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잃지 않고서는 여인과 헤어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 술잔만 들이키는 그의 모습이 잡히는 것같다. 생각해보니 술에 취한 후에 아침바람이 차갑게 불면 깨어날 것이고, 아마도 장소는 버드나무 둑가가 될 것같고, 하늘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는 이그러진 달이 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둥근 보름달이면 고향사람들과 서로 바라보며 단원(團圓)을 생각하겠지만, 이그러진 달은 홀로 떨어져 있는 자신의 모습과 혼자 남아 있을 여인의 모습, 어디 한 곳이 떨어져 나가서 불완전하게 된 모습을 그리게 된다. 이 구절은 천고의 명구로 이름높다. 작자는 이 구절로 인하여 "효풍잔월유삼변"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고, 한번은 소동파가 주변의 노래를 잘하는 자에게 자기의 사와 유영의 사를 비교하면 어떠냐고 물어보니, 아부를 잘하던 그 막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유랑중(유영)의 사는 그저 십칠팔세의 여자아이에게나 적당합니다. 붉은 나무판을 들고서 '양류안효풍잔월'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소학사(소동파)의 사는 관서의 사나이가 동비파 철작판을 들고, '대강동거'라고 부르는 것이지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처럼 이 구절은 유영의 완약사를 대표하는 문구이다.
이번에 가서 해가 지나면, 아무리 좋은 계절이 오더라도 다 헛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치만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아야 하는데, 그 요소가 빠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좋은 풍경을 만나게 되면 누구와 함께 그 풍경을 즐길지를 미리부터 한탄하고 있다.
이 사는 송별을 주제로 하여, 송별의 장면, 송별이후를 예측하는 것을 통하여 작자의 심정을 하나하나 까발리고 있다.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유영이라는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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