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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중국고대의 다이어트 붐

by 중은우시 2008. 7. 14.

글: 아령(阿零). <<청년문적>> 2008년 제7기

 

요즘은 누구나 다이어트를 하는 시대이다. 요가, 기공, 점혈안마, 침구....온갖 방식이 다 동원되고, 심지어 뼈밖에 남지 않은 모델이 다이어트한다고 굶어죽기도 한다. 이는 2500여년전에 초(楚)나라에서 발생한 다이어트붐과 아주 유사하여,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반복 재연되는 것이다.

 

중국역사상 가장 유명한 다이어트운동은 초영왕(楚靈王)에서 비롯된다. 초영왕은 장화궁(章華宮)이라는 궁전을 짓는데, 이 궁전은 "세요궁(細腰宮, 세요는 가는허리라는 의미임)"이라고도 불렀다. 왜냐하면, 초영왕은 허리가 가는 여인을 좋아해서, 궁안의 미녀들은 모두 하나같이 가는허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초왕호세요, 궁중다아사(楚王好細腰, 宮中多餓死, 초나라임금은 가는 허리를 좋아해서, 궁안에는 많은 여인들이 굶어죽었네)" 초영왕의 기호에 맞추기 위하여, 궁중의 미녀들은 속속 다이어트를 하고, 먹는 음식을 줄였다. 살빼기를 극한까지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자주 사람들이 굶어죽는 경우가 나타났다. 이때부터 가는허리를 칭할 때 "초요(楚腰)"라는 말이 나타난다.

 

이번 다이어트운동은 여자들에게만 미친 것은 아니었고, 남자들도 그 화를 피하지 못했다. 초영왕이 가는허리를 가진 여인을 좋아했을 뿐아니라, 남자도 가는 허리를 좋아했다. 허리가 가는 대신들이 중용을 받고 총애를 받았다. 그리고 뚱뚱한 대신은 파면되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전국의 선비들이 모두 절식하고 다이어트를 했다. 매일 한끼만 먹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벽을 잡고서야 겨우 일어설 수 있을 지경까지 다이어트를 했다. 그러다보니 하나같이 얼굴이 시커멓게 되었다. 양식소비는 확실히 줄일 수 있었다.

 

초영왕은 전국의 남녀들이 모두 허리가 가늘어지고, 사람마다 마르게 되니 아주 기뻐했다. 이런 다이어트운동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한 시대를 풍미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황당한 일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요즘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텔레비전에서 눈알이 피로하게 나오는 다이어트 광고, 수백수천가지의 각종 다이어트방법, 곁에서 볼 수 있는 굶어서 비실비실하는 다이어트남녀, 옛날 초나라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역대제왕의 심미관은 시대의 조류를 가늠하는 풍향계였다. 한나라때 제왕은 마른 미인에 대하여 편집적으로 열광했다. 이것은 역사상 유명하다. 여연(麗娟)은 한무제가 총애한 궁녀로 노래를 잘했다. 몸이 가볍고 부드러워, 바람에도 흔들릴 정도였다. 거의 허리띠를 잡아당기는 것에도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녀가 영풍곡을 부를 때, 마당에서 나뭇잎이 휘날렸다. 그러자, 한무제는 그녀의 몸에 먼지가 묻을까 걱정하여, 그녀를 투명한 장막내에 감추어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허리띠를 그녀에게 매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했다. 한무제의 총애를 얻기 위하여, 여연은 호박으로 환패를 만들어 치마안에 두었다. 매번 환패가 부딛쳐 소리가 날 때면,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뼈가 부딛치는 소리라고 말하였다. 병약한 여인의 모습이다. 제왕의 기호에 맞추기 위하여 마른 뼈가 부딛치는 소리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한나라의 조비연이야기도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부드럽고 허리가 가늘어,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수 있을 정도였다는 신화를 지니고 있다. 한번은 그녀가 태액지(太液池)의 영주에서 춤을 추는데, 바람이 불었다. 곁에 있는 사람이 동작이 빨라서 치마를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바람을 타고 날아갔을 것이다. 한성제는 바람이 그녀를 불어갈까 걱정해서, 그녀를 위하여 "칠보피풍대"를 만들었다. 이들 제왕의 심미관때문에, 한나라때 뚱뚱한 여인들은 기운을 얻지 못했으니, 부녀들의 다이어트운동이 일어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른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조류는 여러 왕조에서 지속되었다. 위진시대의 거부인 석숭(石崇)은 천명이 넘는 미녀를 데리고 있었는데, 이 호색한의 일생일대의 취미는 바로 각양각색의 미녀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그의 미녀에 대한 요구조건은 아주 가혹하면서도 궤이했다. 그가 미녀의 체중을 점검하는 방법도 아주 기괴했다. 그는 침향을 갈아서 분말로 만든 다음에 상아침상위에 뿌려놓는다. 만일 어느 미녀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면, 석숭은 그녀에게 진주 백개를 내렸다. 만일 흔적을 남긴다면 바로 그녀에게 다이어트를 명했다. 그리하여 석숭의 집안에서는 "세골경구(細骨輕軀, 가는 뼈와 가벼운 몸)가 아니라면, 진주백개를 어떻게 얻겠는가"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진주 백개는 당시로서는 거액의 상이었다. 죽기살기로 다이어트 경쟁에 뛰어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남사. 서면전>>을 보면, 양나라때, 유명한 무녀(舞女)인 장정완(張淨琓)의 허리둘레는 1척6촌이었다고 한다. 역시 조비연처럼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수 있었다. 조비연이후, 손바닥위에서 춤을 출 수 있느냐 없느냐가 최상급미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같다. 이런 고난도의 동작은 오늘날이라면 서커스단원이나 가능할 것이다. 용문석굴과 운강석굴에는 북위시대의 불상이 있는데, 얼굴은 가늘고 길며, 어깨도 가늘고 좁다, 가슴은 편평하고, 청풍수골(淸風瘦骨)의 모습이다. 북위는 북방의 소수민족정권이었다. 이로써 볼 때, 남북조시대는 한족이던 북방유목민족이던 모두 마른 것을 아름답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표준은 여인들에게만 적용되지는 않았고, 남자들에게도 적용되었다.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다이어트 클럽에는 적지 않은 남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여성의 뚱뚱함과 마름을 가지고 미추의 기준을 삼는 것은 남자들 자신의 손에 들어있다. 그러나, 결국은 남자들 자신도 그 속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미 형성된 게임규칙에 따라야 한다. 이것이 유행, 조류의 영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