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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광업

중국제일금광의 합자분쟁

by 중은우시 2008. 7. 8.

글: 이국화(李國華) 중국경영보 2008년 7월 7일자.

 

협상, 협상, 또 협상...

날카롭게 부닥치는 협상은 난소요(蘭昭耀)라는 이 귀주성 검서남주 황금관리국국장은 요 반년동안의 주요 임무였다.

 

협상 당사자는 각각 귀주성 검서남주 지방정부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오화황금유한공사(澳華黃金有限公司)이다. 쌍방의 협상촛점은 중국제일금광인 귀주성 검서남주 정풍현 사평향 란니구(爛泥溝)금광을 개발한 이 오스트레일리아회사가 현지정부에 세금을 납부해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7월 3일, 강경했던 외국회사측은 마침내 타협했다.

 

반년간의 힘든 협상을 거쳐 외국자본이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중국황금광산은 부득이 세금납부라는 형식으로 귀주성 검서남주 지방정부에 일부 이익을 납부하게 된 것이다. 황금 1톤당 1800만위안의 세금수익은 중국제일금광의 절대지배권이 외국측에 있고, 대부분의 이윤을 외국측에 두손들어 바친다는 현실을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중국제일금광의 운명은 여전히 외국인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3년전, 귀주성은 외자유치의 파도위에 서 있었다" 당시 현지관리에 의하면 그 해에 <<귀주성인민정부의 외자유치를 더욱 잘 추진하는데 대한 약간의 규정>>이 나왔고, 외국투자자가 광산자원에 리스크를 안고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되었으며 법에 따라 우선개발권을 누릴 수 있고, 각종 우세세제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귀주뿐아니라, 전체 중국이 당시에는 외자유치를 위하여 노력할 때였고, 외자유치수량과 유치금액은 지방관리의 실적을 평가하는 주요한 지표였다. 그리하여, 외상투자에 우대조치를 많이 부여했다" 그 관리의 말이다.

 

귀주성인민정부가 2003년에 반포한 <<서부대개발에 관한 약간의 정책조치의 실시의견>>에는 명확하게, "면삼감이(免三減二, 3년간 법인세 면제, 2년간 50%감면)"의 정책을 명시하고 있다. 즉, 외자기업은 3년간 기업소득세를 면제받고, 4년차 및 5년차에 기업소득세를 절반으로 감해서 내는 우대정책이다. 바로 이런 정책으로 인하여 란니구금광의 오화황금은 대량의 황금을 얻으면서도 세금을 납부할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현지정부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은, 2005년 즉 금광채굴의 첫해에 황금시장이 거대한 변화를 나타낸다. 국제황금가격이 2001년의 260달러/온스에서 일거에 2008년 3월 1032달러/온스가 된다. 이것은 7년만에 황금가격이 거의 4배 올랐다는 말이다. 란니구금광은 2007년 6월에 정식으로 황금을 제련하게 되는데, 때마침 최근 황금시장의 호황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오화황금이 내놓은 재무제표를 보면, 반년동안 1.5톤의 황금을 제련한 란니구금광은 황금가격급등의 배경하에서 오히려 결손을 보고 있다. 이런 재무제표는 란니구금광은 계속 면세를 받을 뿐아니라, 6위안/톤의 광산자원보상비도 납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등하는 황금가격에 오화황금은 현지정부와 당초에 체결한 계약은 균형을 잃게 되었다.

 

이전에 쌍방이 약정한 바에 따르면, 2005년 개시한 이 금광은 세수우대정책이 2010년까지 연장된다. 란니구금광은 전국제일의 대금광이다. 그러나 세수공헌은 0이다. 현지정부가 어찌 만족할 수 있겠는가? 검서남주 지방정부 및 전체 귀주성정부는 오화황금을 좋게 보지 않게 된 것이다.

 

현지정부가 란니구금광 재무제표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오화황금이 금광제련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화학제품인 시안화나트륨의 소모량에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시안화나트륨이라는 극독화학품은 반드시 정풍현 황금관리국 산하의 황금투자개발관리공사가 제공해야 한다. 이 전매회사의 한 내부인사에 의하면 란니구금광이 구매한 시안화나트륨은 부근의 또 다른 금광인 수은동금광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현지정부는 이를 가지고 추론하여, 란니구에서 생산한 황금은 수은동금광보다 많으면 많지 적지는 않다고 본다. 그런데, 두 회사의 재무제표의 데이타를 보면 각각 2007년도에 수은동금광은 순이윤이 2.7억위안인다. 그러나 란니구금광은 결손이다. "비록 광석의 품질이 다르고, 소모하는 시안화나트륨의 양이 다르지만, 절대로 이윤의 차이가 수억위안이나 날 수는 없다"라는 것이 현지관리의 말이다.

 

정풍현정부는 우대정책의 비호하에, 장래 오화금광이 금광을 다 캐고 나면, 현지정부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풍현과 검서남주정부는 정예역량을 빼내서 오화와 협상을 시작했다. 협상목적은 바로 오화로 하여금 현지정부에 세금을 납부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초의 계약에 위반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협상은 계속 교착상태에 빠졌다.

 

협상에 참여한 정풍현 현지관리의 말에 따르면, 오화황금측의 태도는 처음에는 아주 강경했다고 한다. 현지정부관리도 함부로 란니구금광의 광구지역을 드나들 수 없었다는 것이다.

 

상술한 관리의 회고에 따르면, 한번은 정풍현 정부와 오화황금측의 협상이 핵심단계에 이르렀을 때, 쌍방은 서로 양보하지 않고, 협상이 계속 진행될 수 없었다. 오화황금의 대표는 전혀 약세를 보이지 않고, "우리는 직접 국무원에 전화하겠다"고 말했다. 오화황금의 대표는 한편으로는 소리를 지르면서, 한편으로는 당시 국무원이 그들에게 부여한 우대정책문건을 협상테이블에 꺼내놓았다.

 

사실상, 오화황금의 배경은 확실히 현지정부가 꺼리는 바가 있었다. 현지관리가 털어놓은 바에 의하면, 오화황금의 고위층은 인맥관계가 아주 두터웠다. 예를 들어, 창시자의 하나인 서한경(徐漢京)은 일찌기 중국유색공업총공사 외사국국장과 중국유색금속진출구공사의 총경리를 맡았으며, 일찌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풍부한 광업리스크탐사경험을 쌓았다. 2002년, 서한경은 상장회사인 오화황금을 설립하는데 참여했고, 그의 현재신분은 오화황금의 동사회집행동사이다.

 

내부사정을 아는 사람에 의하면, 당초 오화황금이 란니구에 투자할 때 소개한 사람은 역시 중국황금총공사의 고위층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미 국가광업감독관리부문의 고위층이 되었다고 한다.

 

"주정부의 영도들은 할 수 없이 친히 이 일을 처리해야 했다" 협상을 책임진 난소요는 강조했다. 정부는 이 협상을 아주 중시한다는 점을. 협상과정에서 정부가 참조한 점은 정풍현 경내의 귀주자금수은동광산이 2001년에 건립된 이래, 이미 정풍현에 1.4억위안을 납부했다; 2007년에만, 정풍현 세수의 4분의 1인 6000만위안이 경내의 크고 작은 금광에서 나왔다.

 

비록 시골구석에 있지만, 란니구는 광업계에서 이름이 있다.

 

란니구금광은 검서남주에서 현재 투자규모가 가장 큰 중외합자기업이다. 이 광산은 이미 저잘양이 전국황금광산중에서 1위이고, 저장량은 100톤에 달한다.

 

사실상 란니구는 처음에는 1970년대에 이미 주목을 받았다. 당시 귀주성 지광국의 10여개 지질탐사부문의 기술인원이, 검서남구지역에서 원생금광탐사를 벌였고, 초보적으로 이 지역의 자원이 전국난선야원생금광총량의 80%에 달한다는 것을 탐사해냈다.

 

1978년, 귀주성 지광국은 정식으로 란니구를 특대형금광으로 정한다. 1992년이 되어, 귀주성 117지질대는 60여톤의 황금부존량을 확인한다. 바로 이해부터 란니구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1992년, 벌떼처럼 몰려온 사람들이 산화광 즉 노천광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란니구가 소재한 정풍현 사평향의 주민에 다르면, 당시 란니구에서 금광을 개발하는 것은 20여개의 소기업이었다. 이들은 지질계통도 있고, 성에서 온 곳도 있고, 일부 개인금광사업자도 있었다. "일거에 이렇게 많은 금광개발업자가 몰려들었고, 1995년에 정부가 광산을 정리하면서 지질대의 소규모광산이 폐쇄된 이후에야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1998년, 란니구금광은 외자유치를 하게 된다. "사실상 쉽게 채굴할 수 있는 노천광산은 이미 다 파냈고, 당시 국내에는 다시 계속 파내려갈 기술이 없었다"

 

2001년, 란니구금광은 중국-호주 합자회사인 금풍회사와 개발채굴계약을 정식으로 체결한다. 이와 동시에 중국황금총공사, 귀주성지광국, 검서남주주정부와 정풍현정부의 4당사자는 공동으로 귀주란니구유한책임회사의 성립을 선포한다. 귀주란니구유한책임공사와 호주의 오화황금유한공사는 공동으로 중외합작기업인 귀주금풍광업유한공사(이하 "금풍")를 설립하여 공동으로 란니구금광을 개발하게 된다. 중국측은 "모든 유효한 탐사허가증 및 채광허가증 및 지질탐사와 광산생산에서 취득한 성과, 향유하는 각종 권익"을 출자하고, 오스트레일리아측은 "F/S(타당성검토보고)"와 프로젝트 개발에 소요되는 모든 자금을 부담하기로 한다. 그 지분구조는 오화황금이 85%를 점유하고, 중국측이 15%를 점유한다. 당시에 오화황금이 채용한 미생물세균예산화공법은 중국에서 없던 것이었다.

 

중국측의 4당사자가 겨우 15%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고, 오화황금이 85%나 가져가게 된 협상결과에 대하여, 정풍현의 대다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의문을 표시한다. 이런 지분안배하에, 금가격이 급등하자 지방정부는 전혀 얻는 것이 없게 되었다.

 

오화황금은 2002년 6월, 정식으로 란니구금광에 진입하고, 2002년 12월 4일부터 탐사와 시범채굴을 한다. 2003년말에 모두 850만달러를 투자하여 F/S를 마친다.

 

2004년 6월, 오화황금이 12,670만달러를 투자하여 자원에 대한 보충탐사, 광산박리, 광산건설을 완성한다. 이는 당시 중국황금광업계에서 최대의 투자항목이었다.

 

2005년 6월 6일, 금풍은 란니구금광의 채굴개시의식을 거행한다. 2006년 중국국제광업대회에서 금풍프로젝트는 "2006년중국국제광업대회최우수국제합작개발상"을 획득한다.

 

2007년 3월 18일, 란니구는 마침내 첫번째 황금을 제련해 낸다. 이때, 오화황금은 미생물세균예산화공법을 채택하는데, 이미 국내에서도 이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부터 쌍방의 허니문은 끝나고 서로 대치하는 협상이 시작된다.

 

그러나, 6월에 다시 변화가 발생한다. 오화황금이 매 황금1톤생산에 현지정부에 1800만위안의 세금을 납부하겠다고 동의한 것이다. "검서남주, 정풍현과 란니구금광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의 체결로 서흥영(徐興榮)은 마침내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서흥영은 정풍현 황금관리국의 부국장이다. 또한 정풍현이 란니구금광에 파견한 업무소위원회의 구성원중 하나이다. 이 소위원회는 정풍현 국토자원국, 정풍현 황금관리국등 부서에서 뽑은 5명의 간부로 구성되었다.

 

계약의 페결은 란니구금광이 현지정부에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뿐아니라, 오화황금이 매년 현지국토자원국에 1000만위안의 환경보호보증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그들이 승락대로 하면, 즉 채광후에 식피를 회복하고 합리적으로 이주를 처리하면 보증금을 반환한다"

 

현지정부는 협상시에 오화황금이 짧은 시간내에 대량의 황금을 채굴한 사실은 란니구금광이 원래 사람들의 이미지대로 "제련이 어렵고" "품질이 나쁜" 금광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상술한 두 개의 조건에 따라 오화황금에 제공한 우대정책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이고, 오화황금은 반드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화의 생산기술수준으로 보아, 완전히 저비용, 고이윤을 실현할 수 있다. 하물며, 현지정부는 오화황금을 도와서 촌민을 이주시키는 구체적인 일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금을 내야 한다"

 

협상에서 정부는 그들에게 한가지 요구를 했는데, 비용을 절약하고, 하루빨리 이익을 내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인건비는 이전에 오화황금이 40여명의 외국적 광산안전고문을 고용했는데, 중국인들도 완전히 이 업무를 맡을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 이미 20여명으로 외국인을 줄였다. 서흥영은 "란니구금광은 12년을 더 채굴할 수 있고, 매년 3-5톤의 황금을 생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다른 오화황금의 마음을 건드린 것은 오화황금이 중국내에서의 전략목표가 중국최대, 이익최고의 황금생산기업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거대한 목표를 실현하려면, 현지정부의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란니구금광은 오화황금의 중국내에서의 유일한 금광이 아니고, 오화황금은 길림성 백산금광, 전차령금광에 대하여 탐사를 진행하고 있고, 금강금광도 탐사개발하는 중이다. 이외에 광서, 운남, 산동, 복건, 흑룡강, 길림, 감숙, 신강, 내몽고등지에서 오화황금은 많은 지질탐사프로젝트를 가지고 있다. 오화황금은 현지정부와 합작해야할 일이 많은 것이다.

 

검서남주가 관할하는 8개현에는 현마다 금광이 있다. 특히, 정풍현에는 경내에 두 개의 특대형 금광을 보유하고 있다. 란니구금광과 수은동금광이다. 비록 뛰어난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풍현은 여전히 연간 세구가 2억여에 불과한 빈곤현이다.

 

정풍현성내에 현지주민은 조용하고 안락하게 생활하고 있다. 전현의 경내에 분포된 크고 작은 금광을 누가 차지하고 누가 개발, 채굴하는지는 그들과 관계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 정풍현의 재정은 금광채굴개발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정풍현 황금관리국 부국장인 나상렬에 따르면, 정풍현의 5개년계획은 많은 범위에서 경내의 금광세수와 자윈비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만일 금광에서 세금을 거두지 못하면 경제프로젝트의 많은 부분의 돈이 모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정풍현 정부는 경내의 금광에 대하여 통합작업에 들어갔다. 귀주성 지광국 117지질대대와 정풍현 국토자원국이 작성한 <<귀주성 검서남주 정풍현 금광 통합, 생산구조조정 및 광산권리합리화 조정방안>>에 따르면, 금광은 인수, 지분참여, 합병등의 방식으로 구조조정한다. 통합을 통하여 광산기업수량을 20%이상 줄인다. 통합후의 광산의 생산릉력은 국투자원부 혹은 귀주성의 관련계획에서 규정한 최저개발채굴규모를 하회할 수 없다. 통합, 생산구조조정후의 현재 소형금광들이 원래의 8개에서 7개의 통합광산으로 감소되고, 통합광산은 원래의 생산능력을 135.6만톤/년에서 170만톤/년으로 증가시킨다.

 

비록 현지정부가 오화황금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위 방안에서 정풍현이 현상유지시키는 금광은 란니구금광이 유일하다. 위 방안에서 제출한 이유는 란니구금광의 생산규모는 120만톤/년이 넘으며, 중외합작경영기업이므로 생산규모가 광구면적자원부존량과 기본적으로 부합하고, 국토자원부의 최저생산규모요건에도 부합하여, 통합하지 않고, 원상을 유지하기로 하는 것이다.

 

위 방안에서는 정풍현인민정부는 2008년 8월 31일전에 통합감정계약을 체결하여 광산통합의 채광권변경등기신청업무를 완성한다.

 

재정세수를 늘이기 위하여, 정풍현정부는 란니구금광과 세수협상을 진행할 뿐아니라, 오화황금에 최대한 저비용으로 할 것을 요구했고, 경내의 2대금광에 2008년도 황금생산목표를 부여했다; 란니구금광은 6톤, 수은동금광은 4톤이다. 다만 귀주자금총경리판공실의 여범에 따르면, 상술한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2007년, 귀주자금 수은동금광의 황금생산량은 3.3톤이었다.

 

"지방정부는 긴 안목이 부족하다" 중국지질대학 자원및환경학원의 교수인 상매도는 이렇게 평가한다. 이렇게 많은 금광을 가지고 있으면서, 약간의 세수를 위하여 머리를 그렇게 굴려대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성투자광업의 분석가인 양성이 보기에, "면삼감이"의 세수정책은 당시에 외자유치에 급해서 정책을 지나치게 관대하게 풀어준 것이다. "세수는 그래도 작은 문제이다. 진정한 손실은 합자과정에서 장기적인 안목과 투자의 안목이 없어, 광산의 가치와 증가예상치를 잘못 잡아 자기의 지분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

 

양성의 경험에 따르면, '외자유치는 일종의 투자이다. 일방이 그가 내놓은 댓가를 넘어서는 가치를 얻으면, 다른 측은 반드시 자기가 내놓은 것보다 적게 얻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