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동등신(董登新)
[요약]
2000년에 탄생한 월남증시는 100포인트에서 출발하여, 500포인트를 돌파하는데 모두 1년이 걸렸다. 그러나, 1000포인트를 돌파하는데는 6.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와 비교하자면, 중국증시의 폭등폭락은 더욱 놀랍다. 1990년말에 탄생한 중국증시는 마찬가지로 100포인트에서 출발하여 겨우 1년만에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월남증시가 8년이나 걸려서 이룬 대폭등/대폭락의 주기를 중국증시는 첫 4년만에 3차례나 이루어냈다! 중국증시는 첫4년동안 평균 1.3년에 한번씩 폭득/폭락장세가 반복된 것이다. 보라. 중국증시와 월남증시를 비교하면 누가 더 미쳤고 누가 더 무서운가?
[본문]
1. 월남증시는 8년만에 1000포인트고지에 섰다.
월남지수(VN Index)는 월남의 메인보드시장 즉, 호치민주식거래소(HOSE)의 주식가격의 변동을 나타내는 지수이다. 월남지수는 2000년 7월 호치민증권거래센터(HOSE의 전신)가 개업한 때의 100포인트에서 시작하여 1년후인 2001년 6월, 월남지수는 처음으로 500포인트를 넘어서, 571포인트로 마감했다.
2001년 6월, 월남국가증권관리위원회(SSC)는 투기를 제한하기 위하여, 외자지분비율을 최대한 1개회사주식의 20%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후, 주가지수는 미끄럼틀을 탔다. 571포인트에서2003년 10월 24일에는 130.91포인트까지 떨어졌다.
2003년 10얼, 월남국가증권관리위원회는 증시부양대책을 내놓으면서, 외국투자자의 지분비율을 30%까지로 완화했다. 그리하여 주가지수는 130포인트에서 급속히 280포인트까지 반등했다. 이후 2005년상반기까지 주가지수는 계속 280포인트부근을 배회했다.
2005년 하반기, 월남당국은 WTO가입을 순조롭게 하기 위하여, 외자지분비율제한을 다시 49%까지로 완화했다(은행제외). 이 조치는 2006-2007년의 대폭등을 불러온 도화선이었다.
2006년, 월남주가지수는 연초의 300포인트가량에서 시작하여, 이해 12월에는 한때 800포인트를 넘어섰다. 연말에는 750정도로 마감했다. 연간 상승폭이 150%를 넘었다.
2007년, 월남의 주가지수는 계속 힘을 내면서 올라갔다. 2007년 3월 12일, 주가지수는 1170.67의 역사최고기록을 달성한다. 이는 이번 대호황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들은 그대로 대호황이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고 믿었다. 이후 7개월간 주가지수는 900-1000포인트사이에서 계속 치고받았다. 같은해 9월말에는 반등이 시작되었는데, 최종적으로 10월 3일에 1106.6포인트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역사최고기록을 갱신하는데는 못미쳤다.
그리고, 이때부터 절망은 시작되었다. 2007년 10월 3일이후, 월남주가지수는 아래로 향하여 계속 내려가고 계속 하한폭까지 떨어지는 주식이 나왔다. 2008년 6월 9일에는 379.12포인트로 마감했다. 2007년 3월 12일의 역사최고점인 1170포인트에서 이날의 370여포인트까지 1년여의 시간만에 월남 메인보드는 65%이상 폭락한 것인다!
이는 월남증시가 건립된 후 첫번째의 대폭등/대폭락 주기이다. 전후 8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8년만에 처음 1000포인트를 돌파한 후에 폭락하여 최고점의 67%가 빠진 것이다.
2. 중국증시 최초 4년간의 3차례의 대폭등/대폭락
월남증시와 비교하면, 중국증시의 폭등폭락은 더욱 광적이었고 더욱 무서웠다. 폭락폭등이 더 빈번했다.
1990년말, 상해종합지수는 100포인트에서 출방한다. 1년반도 되지 않아, 상해증시지수는 미친듯이 1429포인트에 이른다. 누적하면 13배이상 오른 것이다. 이후 주식시장은 다시 미친듯이 폭락한다. 1992년 11월 16일, 상해지수는 400포인트아래까지 떨어진다. 거의 원래로 돌아온 것이다. 5개월동안 71%가 빠졌다! 이는 중국증시의 첫번째 폭등폭락이었다.
1992년말 상해증권종합지수는 400포인트의 바닥에서 출발하여 두번째 폭등폭락을 시작한다. 이번 폭등은 더욱 맹렬했다. 400포인트에서 시작하여 1993년 2월 15일 1536.82포인트까지 오르는데 겨우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수상승폭은 물령 284%에 달했다. 그리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번 내리막에 걸림돌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내려가는 속도는 비교적 느렸고 시간도 오래걸렸다. 17개월이나 지속되었다. 1994년 7월 29일 상해지수는 최저점인 333.92포인트까지 내려간다. 주적낙폭이 78%에 달하였다.
1994년 8월 1일, “3대증시구제정책”이 발표되면서 새로운 폭등장세가 333포인트에서 시작된다. 이번 대폭등은 더욱 맹렬하고 더욱 짧았다. 단지 1개월의 기간동안 상해지수는 1994년 9월 13일 1053포인트까지 오른다. 상승폭은 215%였다. 곧이어 길고긴 내리막길이 또 시작된다.
이로써 볼 때, 중국증시는 탄생후 겨우 4년만에 세번이나 대폭등/대폭락의 경천동지의 변화를 겪게 된다. 평균 1.3년에 한번씩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3. 중국증시의 평균PER는 월남증시보다 높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07년 3월 12일, 월남지수가 막 최고조에 달하였을 때, 호치민주식거래소의 모든 주식의 평균PER는 32배였다. 그런데, 중국상해심천A주의 대폭등기의 평균PER는 80배에 달했다. 이전의 몇 차례에 걸친 폭등폭락에서 중국증시의 표현은 이처럼 광적이었다;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PER가 60-80배에 달했다. 하강국면에서도 평균 PER는 20-30배였다. 이는 바로 중국시장이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중국증시의 거품은 월남증시보다 훨씬 심하다는 것이다.
이외에 장기간 월남에서 주식투자를 한 중국인의 말에 따르면, 월남상장회사는 현금분배에 습관이 되어 있고, 매년 이익배당률이 제법 높다는 것이다. 그들은 ‘털하나 뽑지 않는’ 중국의 철공계(鐵公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물어본다: 도대에 무엇을 “주식재난”이라고 하는가? 중국증시와 월남증시를 비교해보면 누가 더 미쳤는가? 답안이 어떠하든지간에 한가지는 분명하다. 주식시장은 중국경제에 대한 충격이 월남경제에 대한 충격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즉, 중국경제가 견딜 수 있는 충격의 강도는 월남경제보다 훨씬 크다.
'중국과 경제 > 중국의 증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국민의 주식투기"에서 본 중국인의 성격상 비극 (0) | 2008.07.09 |
---|---|
리리전자(立立電子): 중국증시의 암적인 존재 (0) | 2008.07.04 |
중국증시의 철칙 (0) | 2008.06.30 |
태평양증권의 상장 흑막 (0) | 2008.06.18 |
중국본토 사모주식투자기금의 흥성과 우려 (0) | 2008.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