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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문학일반

<<수당연의>> 영웅들과 역사원형 (II)

by 중은우시 2008. 6. 25.

 

12. 양의신(楊義臣)

 

[연의] 양림의 동생. 팔면금쇄진을 펼치기도 함. 나중에 이원패, 배원경, 진용, 양사태의 4맹 8대추에 파괴됨. 그 자신은 사살함.

 

[역사원형] 원래의 성은 위지(尉遲)씨임. 부친이 돌궐과 싸우다가 전하하여, 양(楊)씨성을 사성으로 받음. 궁중에서 길러짐. 나이가 든 후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아 장군의 재질이 있었음. 여러번 돌궐군을 대파함. 양제가 즉위한 후, 한왕 양량의 반란이 일어나는데, 양의신은 적은 병력으로 반군장군 교종규를 물리침. 나중에 수양제의 3차에 걸친 고구려벙벌을 따라나섬. 양의신도 출정하여 전공을 세움. 하루에 7번 이긴 적도 있음.

 

천하대란의 시기를 맞아, 양의신의 사방에서 전투를 벌임. 향해공, 고사달등 반란세력을 평정함. 그러나, 그가 너무 유명해지자, 수양제가 꺼려서 조정으로 불러들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함.

 

[평론] 그가 양림과 비슷함.

 

13. 배원경(裴元慶)

 

[연의] 수당의 세번째 사나이. 누나는 정교금에게 시집감. 손애는 두 개의 대추를 들고 아주 용감함. 사명산의 일전에 18로의 반왕과 무수한 병장이 있는데, 그만이 이원패의 3추를 받아냄. 나중에 수나라장군 신문례의 계교에 걸려 산골짜기에서 불에타 죽음.

 

[역사원형] 배행엄(裴行儼)으로 수나라장군 배인기(裴仁基)의 아들. 용감하고 잘 싸움. 배인기는 와강채를 토벌함. 비록 승리하였으마, 감군의 모함을 받음. 그리하여 배인기 부자는 수나라감군을 죽이고, 무리를 이끌고 와강채에 들어감. 나중에 이밀이 왕세충과 싸울 때, 배인기는 병력을 나누어 낙양을 급습하는 계획을 냄. 그러나, 이밀이 받아들이지 않음. 나중에 이밀이 패배하고 배씨부자는 왕세충의 포로가 됨. 왕세충은 질녀를 배행엄에게 시집보내고 아주 후대함.

 

배행엄은 매번 번투때마다 파죽지세여서, "만인적"이라는 별명을 얻음. 왕세충은 그의 위명을 꺼려하여 경계함. 배인기는 그 뜻을 알고 먼저 손을 쓰는게 좋겠다고 생각하여 왕세충을 죽이고자 함. 다만 일이 누설되어, 배씨부자는 왕세충에게 피살당함.

 

[논평] 확실히 명장이나, 좋은 군주를 만나지 못함.

 

14.  단웅신(單雄信)

 

[연의] 산동 이현장 장주. 와강채의 대장이었으나, 나중에 왕세충에 귀순하여, 부마가 됨. 형이 이연에게 오살당해, 당에는 투항하지 않겠다고 맹세함. 결국 당나라군에 살해됨.

 

[역사원형] 와강채의 전채주 적양의 좋은 친구. 말위에서 창을잘 써서, 와강채 내에서의 별명이 "비장(飛將)"임. 나중에 적양이 이밀에게 살해당하는데, 단웅신은 대국적인 견지에서 이밀에 귀순함. 나중에 이밀이 패배하자, 단웅신은 왕세충에게 투항하여 대장이 됨. 진왕의 병력이 동도 낙양으로 밀려올 때, 쌍방이 전투를 벌이는데, 진왕 이세민이 한 때 낙양군에 포위당하고, 단웅신이 진왕을 창으로 찌른 적이 있음. 다행히 당나라장수 위지공이 구해줌. 왕세충이 멸망한 후, 이적등 와강채의 구장들이 그를 살려달라고 청하나, 단웅신은 처결당함.

 

[논평] 역사적으로는 단웅신이 당나라에 원한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세민이 단웅신에게 원한을 가졌음.

 

15. 왕백당(王伯當)

 

[연의] 외호가 "용삼랑(勇三郞)"임. 와강채의 신전수. 일찌기 화살 하나로 수당 아홉째 사나이 위문통을 죽임. 이밀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여, 마지막까지 이밀과 함께 단밀간에서 당나라군의 화살비속에 죽어감.

 

[역사원형] 이밀의 제자. 이밀을 따라 와강채에 들어가서, 이밀의 심복이 됨. 이밀이 왕세충과 언사에서 결전을 벌일 때, 왕백당에게 후방기지 금용성을 지키도록 명령함. 오래지 않아 이밀이 패배하고, 왕백당은 금용성을 버리고 이밀과 만남. 이밀은 당나라에 투항하기로 함. 왕백당이 그를 떠날까 두려워하나, 왕백당은 죽어도 그를 따르겠다고 맹세함.

 

이밀이 당나라에 투항한 후, 이연에게 중용되지 않자, 반란을 일으킴. 왕백당이 극력 말렸으나 듣지 않음. 그리하여 이밀과 함께 하기로 결정함. 이밀이 도림현을 습격하여 얻은 후,부장 장선상에게 의탁하려고 하나, 도중에 당나라장수 당언사의 습격을 받아, 이밀과 왕백당이 모두 죽음.

 

[논평] 왕백당은 충의지사이다.

 

16. 설인귀(薛仁貴)

 

[연의] '설가장'의 첫번째 주인공. 태종조 후기의 주요한 군사총사령관. "백의파고려(白衣破高麗)", "삼전정천산(三箭定天山)"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옴. 나중에 서량을 정벌하다가 적장 양범의 계교에 걸려 포위됨. 아들 설정산이 잘못 쏜 화살에 죽음.

 

[역사원형] 가난한 농민출신으로, 당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군에 들어감. 요동전장터에서 공을 많이 세웠음. 흰갑옷, 흰투구를 쓰고 적진을 종횡무진 드나듬. 그리하여 당태종의 주의를 끌어 금위군에 들어옴. 고종이 즉위한 후, 궁중에 홍수가 났는데, 다행히 설인귀가 구해줌. 나중에 여러번 고구려를 정벌하는데 참여하고, 여러번 공을 세움.

 

설인귀의 무예는 뛰어났고, 화살로 5겹갑옷을 뚫은 적이 있음. 철륵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설인귀는 군을 이끌고 반란을 평정함. 적군이 기병 수십을 보내어 도전했는데, 설인귀가 연속 3발을 쏘아 3명을 죽임. 나머지 사람들이 놀라서 전부 투항함. 설인귀는 그들을 전부 생매장함. 오래지 않아, 반란을 평정하는데, 이를 "삼전정천산'이라 부름.

 

당고종 건봉원년(666년)에 이적과 함께 고구려를 정벌함. 고구려군을 신성, 부여에서 연파함. 2년간 싸워 마침내 고구려를 평정함. 설인귀는 승리후 평양에 주둔하고 고구려경내의 당나라군을 지휘함.

 

함형원년(670년) 설인귀는 당나라군 10만을 이끌고 토번을 정벌하러 감. 부장 곽대봉이 사사로운 행동을 하여 설인귀 부대는 토번군 40만에 포위되어 당군이 대패함. 전쟁후 설인귀는 파면당함.

 

오래지 않아 고구려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설인귀는 다시 기용된다. 다만 오래지 않아, 유배를 간다. 개요원년(681년)에 68세의 설인귀는 마침내 사면을 받아 조정으로 되돌아온다. 군대를 이끌고 돌궐을 막으러 간다. 돌궐은 장군이 설인귀라는 말을 듣고 사방으로 도망침. 당군은 대승을 거둔다. 영순2년(683년) 병사하니 나이 70이다.

 

[평론] 설인귀의 일생은 전설적이다.

 

17. 설정산(薛丁山)

 

[연의] 설인귀의 아들. 반리화를 처로 맞이함. 군대를 이끌고 서량을 평정하였으나, 나중에 무측천에게 살해당함.

 

[역사원형] 이름이 설눌(薛訥)인데, 설인귀의 아들이다. 남전현령을 지낼 때, 당대의 혹리 내준신의 불의한 조치를 거부한다. 나중에 돌궐이 변경을 침입하자, 무측천은 설눌이 장군의 후예이므로, 그를 유주의 전선으로 보낸다. 설눌은 오랫동안 변방에 머물며 공을 많이 세운다. 당현종은 신풍에서 당나라군을 훈련시켰는데, 그중에서 당눌과 해완의 부대가 가장 질서정연했다.

 

돌궐, 거란, 해가 연합하여 변방을 침입했을 때, 설눌이 주력이 되어 싸우나, 대패한다. 설눌은 파직당한다. 오래지 않아 토번이 10만으로 변방을 쳐들어온다. 설눌은 다시 기용된다. 농우절도사가 되어, 그는 토번을 무개역, 장성보에서 연파한다. 죽인 자가 무수히 많다. 이후 설눌은 청량에서 주둔하다가 72세로 죽는다.

 

[평론] 역사상 설정산은 확실히 서부전선에서 활약을 했었다.

 

18. 우문성도(宇文成都)

 

[연의] 수당의 두번째 사나이. 비록 간신 우문화급의 아들이지만, 일처리가 광명정대하고 시원시원하다. 간사하게 잔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사나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집안배경으로 그의 비극적 운명이 결정된다. 나중에 숙적 이원패와의 결전에서 패하여 피살된다.

 

[역사원형] 우문화급은 두 아들이 있었다. 하나는 승기(承基)이고 다른 하나는 승지(承趾)이다. 그러나 부친과 마찬가지로 쓸모가 없었다. 두건덕이 우문화급을 격파한 후, 우문화급 부자들은 함께 피살된다.

 

[평론] 이원패, 나성, 우문성도 처럼 수당연의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들은 모두 허구이다.

 

19. 나사신(羅士信)

 

[연의] 수당연의의 '삼맹(三猛)'중 우두머리. 힘이 대단하고, 유일하게 이원패에 대적할 인물이다. 진경의 의동생. 두뇌가 간단하고, 멍청하다. 그러나 정의를 중시한다.

 

[역사원형] 수나라말기 도적 왕박등이 산동을 칠 때, 수나라장수 장수타가 군대를 이끌고 반격한다. 이때 나사신은 14살의 나이고 군에 들어가서 장수타의 부대에서 가담한다. 나사신은 이후 전투에서 선봉에 서서 싸우니 적이 없었다. 나사신이 적을 하나씩 살해할 때마다 코를 베어와서 둥글게 꿰고 다녔다. 이로써 수급을 대신했다. 장수타는 나사신의 무용에 탄복하여, 자기의 말을 그에게 상으로 내린다. 이후 장수타, 나사신이 상호 협력하여 연전연승한다.

 

나중에 장수타가 이밀의 계교에 빠져, 패배하고 전사한다. 나사신은 와강채에 투항한다. 왕세충과의 전투에서 포로가 되고, 왕세충이 부하로 거둔다. 왕세충은 처음에 나사신을 잘 대해주었으나, 나중에 조금 적어지게 된다. 그러자 나사신이 불만을 가지게 되고, 부하를 이끌고 이당에 투항한다. 강주총관이 되고 염국공이 된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왕세충과 싸웠다.

 

나사신은 용감했을 뿐아니라, 상벌이 분명했고, 군대를 잘 다스렸다. 모략방면에도 재주가 있었다. 낙양의 외곽거점인 천금보를 계교로 빼앗기도 하고, 낙양이 평정된 후에, 나사신은 당토에 자기를 발탁했던 상사 배인기를 위하여 장례를 치러주기도 한다. 망산이북에 묻어주고는 "내가 죽은 후, 배장군의 곁에 묻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나주엥 진왕 이세민을 따라 유흑달을 공격할 때 성을 하나 얻는다. 먼저 장나라장수 왕군곽이지키는데, 유흑달이 맹공하자 왕군곽은 버티지 못한다. 나사신은 스스로 왕군곽을 대신하겠다고 청한다. 입성후에, 적군의 공격이 더욱 맹렬했다. 사방이 포위되고, 당나라원군이 막혔다. 결국 성이 무너지고, 나사신은 포로로 잡힌다. 유흑달은 나사신의 항복을 받고자 했으나, 나사신이 응하지 않아 결국 피살된다. 진왕은 나사신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매우 슬퍼한다. 많은 돈을 들여 그의 시신을 사와서 배인기의 묘 곁에 묻어준다.

 

[평론] 역사상 나사신은 절대로 사지만 발달하고 두뇌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너무 일찍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대의 명장이 되었을 것이다.

 

20. 사대나(史大奈)

 

[연의] 원래 북평왕 나예의 부장. 일찌기 북경에서 비무대를 설치하여 진경과 비무함. 나중에 와강채에 들어간다. 무예는 보통이나 힘은 넘쳤다. 수당연의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소인물.

 

[역사원형] 원래 돌궐인이다. 처라가한을 따라 입조하고 수나라장군이 된다. 이연이 태원에서 거병할 때, 사대나는 부하를 이끌고 귀순한다. 수나라장군 상현화와의 전투중 사대나는 기병으로 적군의 배후를 습격하여, 전투에서 승리하는데 핵심역할을 한다. 이후당나라군이 장안으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우고 '사(史)'씨성을 하사받는다. 이후 진왕과 함께 설거, 왕세충, 두건덕, 유흑달을 토벌하는데 많은 공로를 세운다. 당태종의 즉위후, 금위군장령이 되고, 두국공에 봉해진다. 나중에 병사한다.

 

[평론] 사대나는 원래 돌궐인이었다.

 

21. 왕군곽(王君廓)

 

[연의] 와강채의 선봉장. 수염을 길게 기르고, 손에는 대관도를 든다. 외호가 "새관공(賽關公)"이다.

 

[역사원형] 출신이 빈한하고 도적질을 좋아해서, 마을의 우환이었다. 수나라말기에 천하대란이 일어나자, 왕군곽은 기회를 틈타 무리를 모아 산을 점거하고 왕이 된다. 그는 먼저 수나라 하동승상 정영을 격파하고, 나중에 수나라장군 송노생이 공격해오자 버티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허위로 투항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이연이 거병한 후, 왕군곽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하나, 왕군곽은 듣지 않는다. 나중에 이밀에게 투항한다. 이밀이 그에게 잘 대해주지 않자, 다시 당나라로 건너온다. 그는 이세민과 함께 낙양을 공격했고, 13명으로 적군 만명과 싸운 적도 있다. 그리고 낙양군의 양도(糧道)를 차단하기도 했다. 아마도 왕군곽은 왕세충의 후방에서 유격전을 펼친 것같다. 공로가 적지 않아 팽국공에 봉해진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두건덕군과 싸울 때 전투중에 발분하여 코와 귀에서 모두 피가 흘렀다고 하니, 그의 용맹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왕군곽은 유주에 주둔하며 돌궐을 방비한다. 여강왕 이원이 모반하면서, 부하 왕선을 보내어 그의 군대를 접수한다. 왕군곽은 놀라지 않고, 계교를 써서 왕선을 죽여버리고, 이원을 생포하여 난을 평정한다.

 

왕군곽은 법도를 잘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사 현도에게 법률위반을 지적받는다. 오래지 않아 조정에서 부르자, 왕군곽은 불안해하며 가는 길에 역참관원을 죽인 후 돌궐로 도망친다. 그런데, 도중에 마을 주민에게 피살당한다. 이세민은 그의 공로를 생각하여 책임추궁을 하지 않자. 조정에 불만이 많았다. 그리하여 결국 왕군곽을 서인으로 한다.

 

[평론] 왕군곽은 모든 인물중 가장 간사한 자일 것이다. 원래 도둑출신인 그가 마지막에 주민의 손에 죽을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22. 설강(薛剛)

 

[연의] 설강반당의 주인공이다. 설정산의 셋째아들로 각로인마을 이끌고 무측천에 반항하여, 최종적으로 이당왕조를 회복시킨다.

 

[역사원형] 이름은 설숭(薛嵩)이고 설인귀의 손자이다. 사람됨이 호탕하였고, 팔힘에 셌으며, 말을 타고 활을 쏘는데 뛰어났다. 나중에 안록산의 반군에 투항하여, 전공을 많이 세우고, 업군절도사에 임명된다. 나중에 사사명이 패하자 설숭은 상, 위, 낙, 형의 4주를 가지고 당나라에 투항한다. 그리하여 소의절도사를 받는다. 대란중에 설숭은 많은 공헌을 한다. 소의는 생기를 빠른 시일내에 회복한다. 설숭은 축국을 좋아한다. 나중에 은사들이 그만두라고 권하여 그만둔다. 그리고 그 형태를 좌석의 오른 쪽에 새겨두어 시시때때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이것이 좌우명의 유래이다). 당대종 영태8년(773년)에 병사한다.

 

[평론] 역사상의 설강이야말로 정말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부록: 능연각 24신

 

장손무기, 이효공, 두여회, 위징, 방현령, 고사렴, 위지경덕, 이정, 소우, 단지현, 유홍기, 굴돌통, 은개산, 시소, 장손순덕, 장량, 후군집, 장공근, 정지절, 우세남, 유정회, 당검, 이적, 진숙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