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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송)

송태조계와 송태종계: 송나라 황위계승

by 중은우시 2008. 6. 24.

 

송나라의 개국군주는 송태조 조광윤(趙匡胤)이다. 그는 모친 두씨의 분부를 받들어, 황제위를 동생인 송태종 조광의(趙光義)에게 전한다. 이는 역사상 "금궤지맹(金櫃之盟)"으로 불리는 사건으로 송태조가 두태후의 유명을 받들어, 주세종이 어린 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주어 망국에 이른 전철을 밟지 않도록 동생인 조광의에게 물려준 것이다. 다만, 역사상 "촉영부성(燭影斧聲)"의 설도 있다. 즉, 송태종이 형을 시해하고 황제위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금궤유조라는 것은 송태종과 조보(趙普)가 나중에 만들어낸 것으로, 황제위를 차지한 것이 합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여기서는 깊이 논하지 않기로 한다.

 

송태종이 죽으면서, 그는 황제위를 송태조의 자손들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다만, 그는 송태조의 자손를 단절시켜놓지도 않았다. 송태조의 아들인 조덕소(趙德昭), 조덕방(趙德芳)의 자손들은 대대로 황은을 업었다. 나중에 조덕소가 자살한 것도 태조, 태종양계의 황위계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이전의 왕조들처럼 황위에 위협되는 사람을 모조리 죽이는 짓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송태종은 자기의 아들인 조항(趙恒)에게 물려주니 그가 송진종(宋眞宗)이다. 송진종은 다시 아들 조정(趙楨)에게 물려주니 그가 송인종(宋仁宗)이다. 그런데, 송인종은 황제위에 41년간이나 있었지만, 자식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당형인 복왕(王)의 아들인 조서(趙曙)을 양자로 삼아 황제위를 물려주니 송영종(宋英宗)이다. 송영종은 아들인 조욱(趙頊)에게 황제위를 넘겨주니 그가 송신종(宋神宗)이다. 송신종은 다시 아들 조후(趙煦)엑 물려주니 그가 송철종(宋哲宗)이다. 송철종은 자식을 두지 못해서, 동생인 조길(趙佶)에게 물려주니 그가 송휘종(宋徽宗)이다. 송휘종은 아들인 조환(趙桓)에게 물려주니 그가 송흠종(宋欽宗)이다. 송휘종, 송흠종 두 황제는 금나라군대에 붙잡혀 북방으로 끌려가 참혹하게 죽으니 북송은 멸망한다.

 

남송은 송휘종의 아홉째 아들은 송고종(宋高宗) 조구(趙構)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송고종은 평생 자식을 두지 못하고, 송태종 계열의 왕실자제는 모두 금나라에 붙잡혀 갔다. 그리하여, 송고종은 어쩔 수 없이 남방에 흘러들어온 송태조계의 왕족중에서 후계자를 찾기 시작한다. 겨우겨우 송태조의 차남인 조덕방의 6대손 조신(趙?)을 찾아내서 태자로 삼는다. 그가 송효종(宋孝宗)이다. 송효종은 아들인 조돈(趙敦)에게 물려주니 그가 송광종(宋光宗)이다. 송광종은 아들인 조확(趙擴)에게 물려주니 그가 송녕종(宋寧宗)이다. 그런데, 송녕종이 30년간 황제위에 있으면서도 자식을 두지 못한다. 그리하여 송태조의 후손중에서 사람을 찾아서 조화귀(趙和貴)를 조굉(趙紘)으로 개명시키고 황자로 삼는다. 그런데,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재상 사미원(史彌遠)은 조굉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미인을 첩자로 삼아 조굉의 일거일동을 감시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또 다른 송태조계의 후손을 찾아본다. 마침내 조여거(趙與), 조여예(趙與芮) 형제를 찾아낸다. 이들은 조덕소의 9대손들이다. 송녕종이 죽은 후, 조여거는 사미원의 음모와 안배하에 조굉을 쫓아내고, 송영종의 황후인 양황후를 협박하여 아들로 받아들이게 한 후, 조윤(趙)으로 개명하고 황제에 오르니 그가 송이종(宋理宗)이다. 그리고 조여예는 복왕(福王)에 봉한다.

 

송이종은 역시 40년간 재위하였는데 자식을 두지 못했다. 그리하여 다시 동생인 조여예의 아들인 조맹계(趙孟啓)를 조기(趙)로 개명한 후, 황제에 오르니 송도종(宋度宗)이다. 송도종이 죽은 후, 4살된 아들 조현(趙)이 황제에 오르니 송공제(宋恭帝)이다. 송이종이 죽은 후에는 태황태후가 수렴청정을 했고, 가사도(賈似道)가 조정의 권력을 장악했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원나라가 수도 임안(지금의 항주)으로 쳐들어오고, 송공제는 삼궁과 함게 포로로 잡혀가서 원나라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다. 좌승상 진의중(陳宜中)은 복주에서 익왕(益王) 조하(趙昰)를 황제로 삼으니 그가 송단종(宋端宗)이다. 9살된 어린황제는 진의중의 손에 휘둘린다. 송단종은 원나라장수 유심의 추격을 받아 광주만으로 배를 타고 피해들어가는데 배가 전복되어 단종은 물에 빠진다. 나중에 목숨을 구하나 물을 많이 마셨다. 이후 그는 놀라서 며칠간 말도 못하고 병이 들어 5개월만에 죽으니 나이 겨우 11살이다. 나중에 육수부(陸秀夫), 장세걸(張世傑)이 위왕(衛王) 조병(趙昺)을 황제로 세우니 나이 겨우 8살이었다. 그는 송말제(宋末帝) 혹은 송상흥제(宋祥興帝)로 불린다. 나중에 애산으로 이주하고, 1279년 정월, 원나라가 애산을 공격한다. 2월, 육수부는 황제 조병을 업고 바다에 뛰어들어 죽는다. 이로써 남송이 멸망한다.

 

양송은 태조로부터 마지막황제 조병에 이르기까지 18명의 황제가 320년간 지속했다. 시간적으로 보면 양한에 약간 못미칠 뿐, 당, 원, 명, 청보다는 길었다.

 

송나라는 남북 양조로 나뉘는데, 송태조, 송태종형제 및 그 후손이 돌아가면서 황제위에 올랐다. 북송의 태조가 송태종에게 황제위를 물려주고, 북송은 내리 송태종계가 황제를 지냈는데, 남송의 송고종은 송태조계의 송효종에게 황제위를 물려주고, 남송은 계속 송태조계가 황제를 지낸다. 이는 중국역사상 유례가 없는 경우이고, 황실의 후손이 이처럼 드물었던 적도 거의 유례가 없다:

 

부록:

 

북송(960-1127) 168년, 9황제, 수도: 변량

 

송태조    광윤        재위16년          960-976

송태종    광의        재위22년          976-997

송진종    환           재위25년          998-1022

송인종    정           재위41년          1023-1063

송영종    서           재위4년            1064-1067 (복왕 조윤양의 아들)

송신종    욱           재위18년          1068-1085

송철종    후           재위15년          1086-1100

송휘종    길           재위25년          1101-1125 (철종의 동생)

송흠종    환           재위2년           1126-1127

 

남송(1127-1279) 152년, 9황제, 수도: 임안

 

송고종    구           재위36년          1127-1162

송효종    신           재위27년          1163-1189 (태조 7대손, 수왕 조덕방 6대손, 수왕 조자칭의 아들)

송광종    돈           재위5년            1190-1194

송녕종    확           재위30년           1195-1224

송이종    윤           재위40년           1225-1264(태조 10대손, 조덕소 9대손, 산음위 조희로의 아들)

송도종    기           재위10년           1265-1274(송이종의 동생 조여예의 아들)

송공제    현           재위2년            1275-1276 (도종 차남, 전황후 소생)

송단종    하           재위3년            1276-1278 (도종 장남, 양숙비 소생)

송말제    병           재위3년            1278-1279 (도종 삼남, 유수용 소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