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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남북조)

고징(高澄): 황제에게 주먹질한 사상최초의 권신(權臣)

by 중은우시 2008. 5. 8.

: 수은하(水銀河)

 

황제노릇하기는 어렵다. 좋은 황제노릇을 하기는 더욱 어렵다. 괴뢰황제노릇을 하기는 가장 어렵다. 괴뢰황제는 고대의 가장 위험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머리 위에 쓰고 있는 것은 황관이 아니라, 시한폭판이며, 언제라도 터지면 강산과 목숨이 날아가는 것이다. 운이 좋은 괴뢰황제로는 한헌제(漢獻帝)가 있다. 강산은 빼앗겼지만, 그래도 천수는 다했고, 또한 천자의 예로 매장되었다. 운이 나쁜 괴뢰황제로는 후조(後趙)의 황제 석대아(石大雅)이다. 그는 시신을 온전히 남기지 못했을 뿐아니라, 일가족이 모조리 참초제근 당했다. 어쨌든, 이것은 모두 그들을 통제한 권신의 마음씀씀이와 자질이 어떠한가에 달렸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괴뢰황제는 물러나기 전까지는 그들의 체면은 살려주었고, 존중받았다. 권신은 고개를 숙일 때는 숙여주었고, 만세를 부를 때는 만세를 불러주었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도 물론 있다. 예를 들면, 동위(東魏)의 유명한 권신인 고징(高澄)은 당시의 괴뢰황제인 효정제(孝靜帝) 원선견(元善見)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일찍이 황제에게 주먹을 세 대나 먹인 일로 역사상 처음 황제를 구타한 대단한 인물로 남아있다.

 

고징이 이처럼 조조도 하지 않은 나쁜 짓을 한 것은 그의 가족출신과 가정교육과 많은 관계가 있다. 그가 생활한 시대는 오호난중화(五胡亂中華, 다섯 오랑캐가 중원을 어지럽힘)의 남북조시대였고, 그는 선비족에 속한다. 조상은 내몽고자치주의 빠오터우시 동북지방에 살았었다. 비록 고씨집안은 생활방식에서 점차 한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뼛속에는 야만적인 유전인자가 퇴화되지는 않았었다. 그의 부친인 고환(高歡)은 원래 시골의 가난뱅이였다. 나중에 운이 돌아와서 육진의거의 바람을 타고, 두락주(杜洛周)와 갈영(葛榮)에 차례로 의탁한다. 나중에 반란군을 떠나 이주영(爾朱榮)에 투항하여 그의 총애를 받고 진주자사가 된다. 갈영이 실패한 후, 그는 갈영의 무리를 거두고, 산동의 기주, 정주, 상주의 여러 주(지금의 하북, 하남 북부)를 자기의 거점으로 삼는다. 같은 해 이주영은 북위의 효장제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우 이주씨(爾朱氏)들이 조정을 통제한다. 보태원년(531) 고환은 병사를 일으켜 이주씨를 토벌한다. 신도(하북 기현)에서 원랑(元朗)을 황제로 옹립한다. 영희원년(532) 업성을 빼앗고, 내부적으로 불화가 있던 이주씨 연합군을 격파하고 낙양에 진격한다. 이주씨와 자기가 옹립한 두 명의 황제를 페위시키고, 다시 효무제 원수(元修)를 옹립한다. 고환은 대승상, 태사를 맡으면서 정주자사를 세습한다. 이어서 병주를 평정하고, 진양에 대승상부를 세운다. 북위제국을 완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넣게 된다. 나중에 북제를 건립하는 기반을 다진다.

 

원래 그들 고씨집안은 중국북방을 모두 장악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534, 허수아비역할을 하지 않기로 한 효무제 원수가 고환과 안면몰수하고 장안으로 도망쳐서 또 다른 지방군벌인 우문태(宇文泰)에게 간다. 당시는 난세여서, 세발달린 하마는 찾기 어려워도, 두발달린 황제는 찾기 쉬웠다. 오래지 않아, 고환은 11살된 원선견을 효정제로 세운다. 이때부터 북위는 두 개로 갈라져서 동위, 서위로 나뉜다. 통일을 향한 발걸음은 다시 수십년간의 혼전에 빠지게 된다.

 

호부불견자(虎父不犬子, 호랑이애비에 개새끼는 없다)라고 부친이 풍운을 질타하던 때, 장남인 고징도 호랑이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는 어릴때부터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갔다. 그의 스승조차도 상당히 감탄할 정도였다. 10살이 되었을 때, 중요한 정치임무 하나를 완성한다. 당시 대신중에 고오조(高敖曹)라고 있었는데, 큰형인 고건(高乾)이 고환에게 의탁한 데 불만을 가지고, 여자옷을 큰형에게 보내어, 자신은 고환의 밑에 들어갈 수 없다고 태도를 표시한다. 중국고대에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한가지 일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가장 심한 욕은 남자를 여자라고 욕하는 것이다. 고오조는 여자옷을 보냄으로써 고환을 멸시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고환의 이전 성격대로라면 분명히 고오조를 절단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기의 아들을 시험해보기로 한다. 그리하여 고징으로 하여금 고오조를 만나게 했다. 고징은 어린 나이였으므로, 자손의 예로 고오조를 대하였고, 결국 감동한 고오조가 고징과 함께 고환을 배견한다. 이후 그는 충성을 다하여 고환을 모셨고 전장터에서 목숨을 마친다. 현재의 나이로 보자면, 고징은 그 때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의 어린학생이었다. 이런 어린학생이 어른을 설복시켰다니, 이 어린아이가 얼마나 총명했던지는 전국말기의 신동 감로에 못지 않았을 것이다.

 

고징은 비록 뼛속까지 야만적인 유전인자를 지니고 있지만, 어쨌든 어려서부터 문명사회에서 살았으므로, 원래는 행동거지가 그럭저럭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최소한 나중에 황제에게 주먹질을 세번이나 하는 야만적인 일은 벌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부친이 아주 망나니라는데 있다. 어떻게 망나니인가? 그는 주먹이 말보다 빠른 사람이었다. 고환은 자식들이 잘 크기를 바랐기 때문에 가정교육이 아주 엄격했다. 가장 많이 쓴 수법은 주먹과 욕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자식들은 모두 폭력적인 성향을 지니게 된다. 사람죽이는 것을 아무 것도 아니게 여기게 된다. 나중에 한 식구끼리 서로 죽이기에 이른다. 고징은 부친으로부터 맞고 욕먹으며 자랐다. 진원강이라는 대신이 더 이상 보아넘길 수가 없어서 울면서 고징을 때리고 욕하지 말라고 청했다. 대왕께서는 더욱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교육시키라고. 그래도 고환은 여전히 때리는 교육을 했다. 유일하게 합리적인 것이라면 이후 진원강이 모르게 했다는 것이다. 몽둥이아래서 효자가 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고환은 몽둥이 아래서는 달랐다. 고징이 14살이 되었을 때, 사춘기가 막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남달랐다. 일거에 부친의 애첩인 정대거와 가까워진 것이다. 고환은 화가나서 어쩔 줄을 몰랐고, 고징을 때려서 거의 목숨이 왔다갔다 할 정도가 되었다. 동시에 고환의 처는 그의 다른 동생과 가까워졌다. 고환은 역시 때리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 동생은 고징처럼 뼈가 단단하지 못하였는지, 맞다가 죽어버렸다. 포악한 성격은 고징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그후 고환은 약간 마음이 풀어졌는지, 그에게 조정에 들어와서 정치를 돕게 했고, 경기대도독을 맡아 국가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때 고징은 겨우 16살이었고, 현재로 말하면 중학생이었다. 그러나 조정의 일을 아주 기민하고 과감하며 적절하게 처결했다. 마치 닳고 닳은 관료와 같았다. 그리하여 문무백관들은 모두 그를 얕볼 수가 없었다.

 

무정4(546) 11, 고환은 동위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중병을 얻고, 병사하게 된다. 고징은 이후 고환의 일체 직무와 권력을 물려받는다. 껍대기만 남은 동위제국을 그가 대체하고자 한다. 괴뢰황제 효정제에 대하여 그는 예전에 부친이 자식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욕했다. 효정제는 운이 나쁜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아주 표준적인 미남이었고, 문무를 겸비했다. 두 팔로 돌사자를 끼고 담장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고, 시를 읊고 부를 지을 수도 있었고, 고금의 일을 논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조정의 신하들이 그를 받들었다. 야심만만한 고징은 이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중서황문랑 최계서를 보내어 효정제의 일거일동을 감시하고,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자신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그리고 황제를 여러가지로 제약하였는데, 조조가 한헌제에 대하여 한 것보다 훨씬 심했다.

 

한번은, 효정제가 사냥할 때 말에게 채찍질하며 달려가는데, 감위도독 오나라가 권해서 한 말은 이런 것이었다: 폐하 말을 달리지 마십시오. 그렇지 아니면 대장군 고징이 분노할 겁니다 또 한번은 고징이 식사를 할 때 억지로 효정제에게 술을 권했다 효정제는 원한을 품은 목소리로 말했다: ()은 천자가 되어서 모든 일에 제약을 받으니,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고징은 그 자리에서 분노하며 말했다: 무슨 짐(), 짐이냐. 이 개다리 같은 짐아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그 자리에서 곁에 있던 최계서에게 효정제를 주먹으로 세번 때리라고 하였다. 아마 고징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이 명령은 중국역사에 하나의 기록을 세우는 것임을 그는 황제를 때린 첫번째 인물이 된 것이다. 이전의 권신은 괴뢰황제에 대하여 말로 모욕을 가한 일은 있고, 직접 죽인 일은 있지만, 주먹질을 한 적은 없었다. 일반 사람도 참기 힘든데, 하물며 황제가 참을 수 있겠는가? 효정제는 화가 나서, 예부랑중 원근, 장추경 유사일등과 몰래 고징을 죽일 것을 모의했다. 그런데, 일이 누설되었다. 고징은 바로 병사를 이끌고 입궁하여 효정제의 면전에서 역사성 유명한 말을 한다: 황제, 네가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이냐? 신하가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킨다는 말은 있어도, 황제가 신하에게 반란을 일으킨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천고의 기이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로써 그가 어느 정도 발호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황제 본인을 제외하고 나머지 참여자는 모두 죽여버린다.

 

무정7(549) 4, 고징은 대장군의 신분으로 상국을 겸하고, 제왕(齊王)에 봉해진다. 그의 권위는 신하로서는 최고에 이른다. 그러나 사람은 절제를 알아야 한다. 만일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면 하늘이 막는다. 이해 8, 고징은 심복 최계서, 진원강등을 불러모아 북성 동백당의 거처에서 황위를 찬탈할 계획을 세운다. 이때 난경(蘭京)이라는 요리사가 평소에 고징으로부터 온갖 모욕을 당해서 원한을 가지고 있어, 형제들을 끌어모아 일거에 밀고 올라가서 칼을 휘둘러 고징을 육장으로 만들어버린다. 황제도 때린 이 권신은 결국 황제의 보좌에는 올라보지 못하고 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