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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중국 기녀(妓女) 역사상 중요한 3명의 남자

by 중은우시 2008. 2. 15.

글: 단목월(端木月)

 

기녀(妓女)는 '특정' 업종에 종사하는 여인을 가리킨다. 남자들이 비칭으로 "계(鷄, 중국어로 妓와 鷄는 발음이 같음)"라고 한다. 기(妓)자는 왼쪽에 계집녀(女)변이고 오른쪽에 지(支)가 있다. 남자들이 보기에, 여인은 원래 집에서 남편을 모시고 자식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일부 부득이한 사유로 청루로 와서 기녀가 되어, 만인을 남편으로 삼고 사니 여자로서는 특이한 유형, 하나의 갈래(支)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 듯하다. 사실 모계씨족사회에서 여인은 모두 만인을 남편으로 삼았다. 자녀는 "모친을 알 뿐, 부친은 누구인지 몰랐다" 당시는 여자들이 주인이었고, 성의 주동권도 여자들이 장악했다. 남자는 여자들의 성도구에 불과했다. 그런데, 부계씨족사회로 바뀌면서 남녀의 지위에 변화가 일어난다. 성의 결정권이 남자에게 가버린 것이다 .여인은 남자들의 성도구로 바뀌었다. 삼황오제시기에 이미 기녀가 있었다고 한다. 최초의 기녀는 홍애기(洪涯妓)라고 한다. 다만, 남성이 주류인 계급사회에서, 기녀의 운명은 완전히 남자에게 달렸다. 중국역사상 기녀업의 진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세 명의 남자가 있다.

 

첫째, 관중(管仲) : 춘추시기 제나라의 재상

 

그는 기녀업의 조사야(祖師爺), 창기신(娼妓神), 기녀의 보호신, 성산업화의 비조(鼻祖), 중국에 '홍등가'를 최초로 설립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다. 원인은 그가 제나라에서 처음으로 '국영기원(國營妓院)'을 설치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역사상 문자로 기록된 첫번째 기원이다.

 

이전에, 기녀들은 일반적으로 여노(女奴)의 신분이었다. 귀족지주의 집에서 종으로 있었는데, 가기(家妓)라고 불렀다. 이외에 군주의 집안에는 여노가 더욱 많았다. 이들은 관기(官妓)라고 불렀다. 이때까지는 길거리에서 영업하는 조직적인 기원은 아직 없었다.

 

관중의 국영기원은 여시(女市)라고 불렀다.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기녀들은 여려(女閭)라고 불렀다. 관중은 번화한 도성인 임치에 시범적으로 7개의 정부가 운영하는 '여시'를 열었다. 매 곳에 여려 100명이 있어, 합계 700명의 여려가 있었다. 관중의 국영기원은 다섯가지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한다. 하나는 국가의 세수를 증가시킨 것이다. 관중은 여시를 두고 남자들로부터 돈을 거두어 국고에 넣었다. 나중에 말하는 '화분세(花粉稅)' '화분연(花粉捐)'이 그것이다. 이로서 국고수입을 늘였다. 둘, 대량의 여자노비들의 취업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셋, 많은 남자들이 성욕을 발산하지 못하는 고뇌를 해결해 주었다. 넷, 돈을 좋아하고 미녀를 좋아하는 사방의 남자들을 제나라로 오게 함으로써 제나라의 발전을 이루었다. 다섯, 오락업의 발전을 규범화할 수 있었다. 제나라가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었고, 춘추오패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국영기원의 역할을 무시하지 못한다. 기녀들이 정규화, 합법화되니 여러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당시 다른 나라들도 하나하나 본받기 시작했다. 기녀들은 처음으로 법의 보호를 받고, 정당하게 영엽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관중이 이런 조건을 마련해준데 대하여 아주 감사히 생각했다. 그러니, 그를 창기신으로 부른다고 하여 이상할 것도 없다. 중국에서 3천년동안 그는 기녀의 신으로 모셔졌다.

 

둘째, 유영(柳永): 송나라의 유명한 사인(詞人)

 

기녀들에게 "화간황제(花間皇帝)"로 불리우고, 기녀들의 보호와 존경을 받으며, 기원에 가더라도 돈한푼 쓰지 않고 마음대로 놀수 있었던 사람은 유영이 전무후무하다. 그 원인은 바로 그의 '사(詞)'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기녀를 단순히 '육체'를 파는 직업에서, '육체'와 '예술'을 함께 파는 직업으로 승격시켜준 사람이 그이다. 유영이 비록 처음 그렇게 한 사람은 아니지만, 기녀들을 육체를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에서 '고급기녀', '예술기녀'로 변모시킬 수 있게 해준 스승이 바로 그이다. 송나라때는 유영이후로 기녀업의 발전이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최고통치자인 황제에게까지 알려진다. 송인종은 유영의 사를 좋아해서 유영에게 명을 내려 '사를 쓰라'고 하게 된다. 그리하여 유영은 황제의 명을 받아 기녀들의 이야기를 사로 쓰는 작가가 되고, 스스로 '봉지전사유삼변(奉旨塡詞柳三變, 황상의 명을 받아 사를 채우는-사는 쓴다고 하지 않고 채운다고 함-유삼변. 유삼변은 유영을 가리킴)"이라고 하게 된다. 송휘종에게는 후궁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기녀인 이사사(李師師)에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이사사가 다른 후궁들보다 예뻐서가 아니라, 그녀의 '예술'기품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유영이 살아있을 때, 송나라의 각 큰도시에 있는 가녀무기들은 그의 팬이 아닌 경우가 없었다. 그가 지은 "난주최발, 집수상간누안, 경무어응일(蘭舟催發, 執手相看淚眼, 竟無語凝噎, 배는 떠난다고 재촉하는데, (헤어지기 아쉬워) 서로 손을 잡고 눈물어린 눈을 쳐다보며, 말은 못하고 울먹이기만 하네)" "의대점관종불회, 위이소득인초췌(衣帶漸寬終不悔, 爲伊消得人憔悴, 옷과 허리띠가 넓어져도(살이 빠져도) 아무런 후회가 없다네, 그대를 위해서라면 초췌해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리)"와 같은 유영의 사는 전국에 널리 퍼졌다. 그리하여, '우물물이 있는 곳이면 모두 유영의 사를 노래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고, 기녀들은 그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사를 지어주면 여악사들은 그에게 '고료'를 주기도 했다.

 

유영이 죽었을 때, 변경성의 기녀들이 돈을 모아서 그의 장례식을 치러준다. 모든 수도의 기녀들이 영업을 멈추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그녀들의 곡성이 하늘을 진동했고, 수리밖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황제가 죽거나, 친아버지친어머니가 죽어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 매년 청명절이 되면, 변경성의 기녀들은 유영의 묘를 찾아갔다. 이 풍습을 "조유칠(弔柳七, 유칠도 유영을 가리킴)"이라고 했다.

 

모든 업종에서는 가장 뛰어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기녀들중에서도 그렇다. 가장 뛰어난 기녀를 '화괴(花魁)'라고 부르는데, '화괴'는 단순이 용모가 빼어나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내재적인 기질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유영'이 기녀들에게 준 '고통속의 존엄'이다.

 

셋째, 모택동

 

모택동은 기녀의 처지를 동정했다. 기녀들 중에서 가정환경이 빈곤하여 청루에 팔려온 경우가 있고, 호족이나 폭력배들에 의해 강제로 창기가 된 경우도 있다. 물론 편안하게 살고자 해서 스스로 치부의 수단으로 기녀가 된 특수한 경우도 없지는 않다. 신중국이 건립되었을 때, 모택동이 거리를 다니다가 하루는 노보(老鴇, 포주)가 기녀를 때리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분노하여 호위병에게 포주의 행동을 제지하게 한다. 그 후 모택동은 명을 내려 기원을 금지시킨다: "신중국은 창기가 곳곳에 있고, 흑도가 횡행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방을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하룻밤만에 북경의 224개 기원은 모두 폐쇄되고, 이어 전국적으로 기녀해방운동이 벌어진다. 기녀들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고객들이 울건 웃건, 모택동은 강경한 행정수단으로 중국5천년역사에 성행하던 기녀현상을 뿌리뽑아버렸다. 외국기자가 한번은 당시 외교부장을 겸하고 있던 주은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중국에 기녀가 있나요?" 그러자, 주은래는 유머스럽게 "있습니다. 중국의 대만성에"라고 대답하였다.

 

"수요가 있다는 것은 합리적인 것이다"라는 이론에 따르면, 기녀의 명줄도 끊어지기 힘들지 않을까? 대만에서 기녀단체들은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면서 성서비스도 합법화시켜달라고 요구한다. 그녀들의 이유는 하층인민은 살아가기도 힘들고, 병들어도 고치지 못하고, 공부하지도 못하여, 많은 하층부녀들은 그저 성서비스를 통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사회의 '불평등'이 기녀를 만들어내는 것같다. 행정명령만으로는 이를 뿌리뽑을 수 없을 것이다.

 

기녀라는 이 "홍수"에 대하여 우임금과 같이 '소통시키는 방법(疎)'을 쓸 것인가? 아니면 우임금의 부친과 같이 '막아버리는 방법(堵)'을 쓸 것인가? 사회는 기녀들의 생존에 영향을 주는 네번째 남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