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학/무협소설

김용 무협소설의 옥의 티

중은우시 2008. 2. 3. 13:35

글: 유계흥(劉繼興)

 

김용(金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문호이다. 그가 쓴 작품의 영향에 비견할만한 다른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동남아의 중국계국가의 국가에서 말싸움을 하면서도 김용소설의 등장인물을 쓴다고 한다. 한 사람은 "넌 악불군(岳不群)이다. 거짓군자이다"라고 하면, 상대방이 이렇게 욕한다: "넌 좌냉선(左冷蟬)이다. 야심가다". 필자는 김용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에 대한 존경의 염을 담고 여러번 읽어보았다. 그런데, 그 중에는 일부 과학기술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 정도의 하자로는 물론 김용선생의 위대함에 크게 흠이 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첫번째 옥의 티

 

<<의천도룡기>> 제16회를 보면, "(장무기가) 키작은 나무에서 몇 개의 이름을 모르는 과실을 따서는 손에 쥐었다. 벌써 달콤한 향이 코에 느껴졌다. 한 입을 베어물자, 더욱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복숭아보다 상쾌하고, 사과보다도 달콤하고, 배도 그것에 비하면 덜 시원했다"는 부분이 있다

 

 

사과의 원산지는 유럽동남부, 소아시아 및 남코카서스일대이다. 중국에 전래된 것은 원나라말기였는데, 이때만해도 아직 궁중에서 즐길 수 있을 뿐이었다. 장무기는 의복이 남루한 일개 소년인데, 절대로 먹어봤을리가 없다. 그리고 "사과"라는 말도 명나라이후에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장무기가 이름도 듣지 못한 과실을 들고 '사과'와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더구나 '사과보다 달콤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 옥의 티

 

<<신조협려>> 제6회를 보면, "그(양과)는 어려서부터 강호를 돌아다녀, 물건을 찾아서 먹는 재주는 아주 뛰어났다. 사방을 둘러본 후, 서쪽 산언덕의 넓은 땅에 옥수수가 자라는 것을 보고는 그곳으로 가서 5개를 뜯어냈다. 옥수수가 아직 다 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먹을 만했다"는 부분이 있다.

 

옥수수는 중국의 본토식물이 아니고, 외래품종이다. 옥수수의 원산지는 아메리카대륙으로 1494년 컬럼부스가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한 후에 비로소 유럽에 전래되었다. 돌고 돌아 중국에 들어온 시간은 아마도 16세기 중엽일 것이다. 지금 옥수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명나라 가정39년(1560년) 감숙의 <<평량부지>>에서 당시에 번맥(番麥, 외국에서 온 보리라는 뜻)이라고 불리었다는 것이다.

 

남송만련의 양과가 섬서성의 산언덕에서 옥수수가 자라는 땅을 보았다는 것은 백일몽이다. 적어도 3.,4백년은 더 기다려여 가능한 일이다.

 

셋째 옥의 티

 

<<사조영웅전>> 제1회를 보면, "(곡삼은) 천천히 두 주전자의 황주를 끓였고, 잠두(蠶豆, 누에콩) 한 접시, 절인 땅콩(花生) 한 접시, 말린 두부 한 접시, 그리고 삶은 달걀 자른 것 3개를 내놓았다" "양철심은 술 한주전자를 다 마셔버린 것을 보고는 다시 한 주전자를 시켰다. 세 사람은 그저 진회를 싫컷 욕했다. 그 절름발이는 다시 한 접시의 잠두, 한 접시의 땅콩을 내놓았다" "두 사람은 어떤 때는 작은 술집으로 가서 몇 주전자씩 마시곤 했다. 그 절름발이 곡삼은 여전히 술을 데워 올려 놓았고, 잠두, 화생등 술안주들을 내려 놓았다."

 

김용은 잠두, 땅콩, 호박씨등을 술안주로 자주 들먹이고 있다. 그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 세가지는 원래 중국본토에 없던 것이고, 외국에서 전래되어 들어온 것이라는 것을. 잠두는 대체로 원나라때 페르시아에서 중국으로 처음 들어왔고, 명나라때가 되어서야 전국에 보편적으로 심어지게 되었다.

 

땅콩과 호박은 아메리카의 식물이다. 컬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에 비로소 아메리카 이외의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땅콩이 중국에 들어온 시간은 잠두보다 훨씬 늦다. 개략 1530년경에 중국에 들어왔고, 바닷가지역에서 내륙지구로 아주 느리게 전파되었다. 청나라 건륭말년이 되어서도 땅콩은 여전히 연회에서 귀한 물건이었고, 일반 사람들이 맛보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사조영웅전>>에는 1199에 임안향의 한 시골구석에 있는 작은 술집에서 절름발이 곡삼이 페르시아와 아메리카에서 수입한 음식물(잠두, 땅콩)을 내놓는다는 것이고, 곽정, 양과와 같은 두 대협도 이런 불가사의한 음식, 황제조차도 본 적이 없는 신기한 물건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치대로라면 최소한 곡삼에게 이렇게 물어보아야 했을 것이다: "어이 절름발이. 도대체 이건 어디서 온 것들이야?"

 

넷째 옥의 티

 

<<천룡팔부>>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노영웅 소원산이 아들 소봉에게 약간의 땅콩을 술안주로 준다. 땅콩은 최소한 이때부터 4,5백년 후에나 중국에 전래되는데, 북송때 살았던 소원산 노영웅이 어디서 가져왔단 말인가.

 

다섯째 옥의 티

 

<<천룡팔부>> 제11회를 보면, "여기부터 계속 동쪽으로 가고, 다시 이십여일을 가니, 단예는 길 가의 사람들의 사투리를 듣으니, 점차 맑고 부드러우며, 음식에 고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김용은 운남, 귀주, 사천,호남일대에서 고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같다. 그러나, 고추도 옥수수, 땅콩, 호박, 담배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카에서 온 외래품이다. 명나라 말기에나 중국에 들어온다. 중국의 전통적인 향신료는 고추가 아니라, 화초(花椒)였다. 그리고 고추는 원래 처음에는 관상식물이었으니, 요리에 넣게 된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사료에 따르면, 귀주, 호남일대에서 고추를 먹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 건륭년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고추를 먹게 된 것은 청나라 도광이후의 일이다.

 

<<천룡팔부>>소설은 송나라 철종때의 일인데, 단예가 동쪽으로 아무리 가더라도, 음식에 고추가 없어진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고추를 먹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섯째 옥의 티

 

<<천룡팔부>>를 보면 단예가 소주의 연자오에서 600년후에나 나타나는 벽라춘(碧螺春) 차를 마시는 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