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적마(狄馬)
노신의 학력은 어떤가? 이것은 원래 문제될 것도 아니다. 이것이 문제가 안된다는 점은 노신시대의 교육체제가 지금과 같이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반열에 놓고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노신의 학력을 문제삼는 것은 현재의 교육체제와 교육기풍때문인 것이다. 특히 현재는 학위가 남발되고 있고, 대학원생의 수량도 매년 급증하고 있으며, 이에 반하여 교육의 질은 날로 떨어지는 상황하에서, 이 문제가 더욱 문제로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알고 있다. 노신은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초등학교, 중학교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다. 그의 유년, 소년시절은 모두 사숙(私塾, 서당)에서 보냈다. 나중에 1898년에 강남수사학당(江南水師學堂)에 입학했다. 이 신식 학당은 현재로 보면 전문학교급에 해당한다. 노신은 강남수사학당에서 7개월만에 퇴학한다. 이해 말에, 그는 강남육사학당(江南陸師學堂)에 부설된 광로학당(鑛路學堂)에 입학하는데, 학제는 3년짜리이다. 전반기에 배우는 것은 대체로 현재의 고등학교 과정이다. 수학, 기하, 대수, 물리, 화학등이다. 후반기에는 입문적인 성격의 광물학, 지질학등의 전문학과가 있다. 1901년말에 정식으로 졸업한다. 이것은 노신이 평생 얻은 가장 정규적인 최고의 학위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개략 전문기술학교정도가 될 것이다.
다음다음해 2월, 노신은 강남독련공소(江南督練公所)의 파견으로 일본유학을 가게 된다. 가장 먼저 동경의 홍문학원(弘文學院)에서 일어를 배웠고, 졸업후에는 센다이의학전문학교(仙台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한다. 이것도 기껏해야 전문학교 수준이며, 학력은 인정받지만, 학위는 받지 못하는 곳이다. 노신은 센다이에서 겨우 2년간 공부하고 역시 퇴학한다. 그리하여 전문학교학력도 획득하지 못하게 된다.
이때부터 노신은 다시는 정식학교에 입학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서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어로 된 책들을 읽었다. 그 동안에 그와 허수상(許壽裳)등은 장태염(章太炎)의 문자과목을 들었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 <<역외소설집>>이라는 책을 편찬했다. 비록 서적상이 노력을 했지만, 동경에서 겨우 41권만이 팔렸고, 그 중 1권은 허수상이 매입한 것이었다.
바로 이처럼 겨우 전문기술학교 학력을 가지고 있는 그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귀국한 후에는 북경대학, 북경고등사범학교, 북경여자고등사범학교등 대학의 강사가 되었다. 이는 현재의 학자나 교수들이 이해하기 힘들 것이고, 아마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도 일부 학자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노신의 학문은 별거 아니다. 그의 동생이 이미 교수였는데, 그는 겨우 강사가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는 그들이 북경대학의 당시 규정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교외인사로서 겸직할 수 있는 최고의 직취는 강사였다. 교수로 초빙할 수 없었다. 당시 노신이 근무하던 직장은 "교육부"였다. 나중에 그는 북경을 떠나 하문대학, 중산대학에서 일을 했는데, 이때는 자연스럽게 "교수"로 승격되었다. 그 자신이 이런 칭호를 그다지 중시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노신이 교수가 된 것은 실력에 의지한 것이고, 작품에 의지한 것이지, 학력때문이 아니라고. 문제는, 노신의 작품을 오늘날 본다면 자격이 되느냐는 것이다. 초기의 <<파악성론>>, <<사람의 역사>>, <<과학사교편>>, <<문화편지론>>, <<마라시력설>>은 "순학술"적인 글이다. 그러나, 논문의 앞에 개요나 관건용어도 없고, 글뒤에 주석도 달려있지 않다. 이런 글도 논문으로 봐줄 수 있는가? "학술규범"에 맞다고 할 수 있는가? 맞다고 치더라도, 이런 글들은 모두 하남일본유학생회에서 발간한 <<하남>>이라는 잡지에 실렸는데, 이런 정기간행물이 "핵심정기간행물", "권위정간물", "중요정간물"이 될 수 있는가? 국가급, 성급, 지방시급, 현급의 어디에 속하는가? 우리가 현재 발행기관의 급별에 따라 잡지의 급별을 따지는 기준에 따른다면 하남일본유학생회는 도대체 어느 급에 속하는가? 성급인가? 국급인가, 현급인가? 또 하나의 문제는 잡문도 논문으로 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수염에 대하여 논함>> <<'다마더'에 대하여 논함>>, <<과부주의>>와 같은 노신의 잡문중 유명한 글들도 논문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안된다면, 노신이 반평생의 정력을 기울여 쓴 이런 글들이 어찌하여 나중에 노신연구가들이 학위를 따고 먹고사는 거리가 될 수 있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 노신의 작품을 오늘날 본다면 그의 번역저작물과 <<중국소설사>>를 제외한, 다른 작품 예를 들어 소설과 산문류는 문학사 교수를 심사하는데 있어서 전혀 참고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노신이 북경대학 강사로 초빙되기 전에는 거의 모든 번역작품과 <<중국소설사>>가 출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국소설사>>는 원래 북경대에서 강의한 강의안이다. 그리고 <<역외소설집>>은 더 골치아프다. 서적일련번호도 없는 국외의 불법간행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교수심사위원회에 절대로 올릴 수 없는 책이다. 오히려 몰수되고, 벌금을 맞거나 관련기관에 고발당할 만한 일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작품 혹은 한 권의 책의 의미는 그것이 발표된 매개체에 있지 않고, 그 자체의 가치를 보아야 한다고. 문제는 이러한 '가치'를 누가 파악하느냐는 점이고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점이다. 후계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체제에서, 이 가치는 어떻게 공정하고 진실하게 반영될 것인가?
학술평가와 심사를 담당하는 위원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당신들처럼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이것이 불공정하다. 저것이 불공정하다고 얘기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표절도 학술평가심사제도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당신들이 어찌 알겠는가? 현재의 교수에게 있어서는 표절도 하나의 학습인 것을. 초등학생이 칠판에 쓰인 글을 베껴쓰는 것이 표절인가? 표절이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심사제도를 없앤다면, 아마도 이상은 높고 재주는 적은 학자들은 아마도 베끼는 것마저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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