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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외국인투자

다농과 광명유업의 결별 내막

by 중은우시 2007. 10. 22.

글: 섭문첨(葉文添), 2008. 10. 22. 중국경영보

 

광명유업과 다농(Danone)은 15년에 걸친 합작을 끝냈다. "이 일에 대하여 나는 아무 것도 할 말이 없다" 광명유업의 동사장인 왕가분(王佳芬)이 전화로 기자의 물음에 한참을 침묵한 후 내뱉은 말이다. 이후 바로 전화를 끊었다.

 

10월 16일, 광명유업은 공시를 통하여 다농아시아는 광명유업의 다른 두 주주인 상실식품지주유한회사와 상해우유집단과 지분양도계약을 체결하여 그들이 보유한 20.01%의 광명지분을 모두 양도하기로 하였고, 이후 다농과 광명유업의 모든 업무협력은 중지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농은 현금 4.1억위안 인민폐를 지급하여, 시장, 채널등에 대하여 광명에 보상하는 것으로 할 것이라고 한다.

 

교묘하게도, 이후 다농이 기자에게 보낸 성명서에서도 광명에서 내�은 것과 동일한 내용이 있었다: "각자의 발전전략의 필요에 따라, 각자는 지분양도합의를 달성했다"

 

다농이 의외로 퇴출한 것에 대하여 외부에서는 추측이 무성하다.

 

10월 16일, 몽우(蒙牛)에 가까운 한 인사에 의하면 일찌기 작년 12월, 다농아시아와 몽우집단이 합자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쌍방간에는 외부에 알리지 아니한 비밀계약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계약의 내용은 다농이 광명에서 철저히 퇴출하며 기한은 1년이라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몽우와 광명은 우유시장에서 죽기살기로 싸우는 적수입니다. 쌍방은 모두 다농이 양쪽에 지분을 보유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초 다농이 몽우와 합자회사를 만들 때, 계약에 명확히 다농은 1년내에 광명에서 퇴출하여야 한다는 것을 적었고, 다농의 "벽유(碧悠)"등 핵심 제품을 하루빨리 몽우에 이전하여 생산하도록 해야 했다. 이것은 몽우가 다농과 손을 잡은 중요한 조건이었다. 다농도 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다농과 몽우가 합자회사를 만들기 전에, 다농이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은 사실 광명이었다. 왜냐하면 광명의 요쿠르트는 기술설비등의 측면에서 몽우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농은 여러번 광명에 요쿠르트합자회사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쌍방이 작년 연말까지 비밀협의를 해왔다. 쌍방은 광명의 동사장인 왕가분과 다농의 글로벌 CEO인 리부등이 참석했다. 그러나 결국 이 일은 합의를 보지 못했고, 다농은 몽우의 품에 안겼다.

 

"다농이 떠난 또 하나의 요소는 다농은 전세계적인 유제품의 최대업체입니다. 그러나 지금 광명과 합작한 후 중국시장에서의 점유율이 오르지 못했습니다. 화동시장에서 다농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은 15%에 불과합니다. 이는 다농유럽본사에서 불만이었고, 힘이 넘치는 몽우를 파트너로 선택한 것입니다"

 

다농과 몽우가 작년 12월 합자회사를 설립한 후, 다농은 계획적으로 광명과 퇴출에 관하여 협의했다. 진정한 협상은 금년 4월부터 개시되었고, 참여한 당사자는 다농아시아, 광명유업, 대광명집단, 심지어 상해국자위의 관련간부까지 출석하였다. 이 협상에서 쌍방은 다농이 어떤 방식으로 퇴출할 것인지, 광명에 어떤 방식으로 보상할 것인지에 대하여 상세한 협상을 진행하였다.

 

"그 때 당사자들은 매주 원탁회의를 진행하여, 조건을 협상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은 엄격하게 비밀유지되었습니다. 광명유업은 상장회사이므로, 주가가 출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농과 광명이 헤어진 것은 쌍방의 역할에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동맹자에서 경쟁적수로 바뀐 것이다.

 

다농과 광명은 역사적인 연원이 깊다. 일찌기 1992년, 다농은 광명과 협력을 시작했고, 합자회사를 세웠다. 2000년에는 광명이 다농요쿠크르를 받아 중국시장에서 운영했고, 다농의 제품은 광명의 채널을 통해 판매되었으며, 빠른 시간내에 중국화동, 화남시장을 점유했다. 왕가분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다농의 연속 9년간 중국에서 결손을 보던 상황을 마감시킬 수 있었다"

 

다농과 광명은 일찌기 손을 잡았던 동맹자였다. 업계인사들이 보기에 이것은 윈윈의 국면이었다. 2002년에서 2006년까지는 쌍방의 밀월기이다. 다농은 광명유업에 다농브랜드의 제품을 라이센스주었는데, 그 판매수익이 약 18억위안이었다. 그중 2006년에는 6억여위안에 달하였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다농은 광명유업에서 현금이익배당으로 4000여만위안을 가져갔다.

 

지금은 이런 것들이 모두 지난 일이 되어 버렸다.

 

과거 몇년간, 광명은 일찌기 중국유제품시장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최근 몇년간은 몽우, 이리(伊利)에 조금씩 조금씩 잠식되었다. 다만 광명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요쿠르트시장에서 광명은 여전히 선두업체이다. 그러나, 이 국면은 다농이 몽우에 가담함으로써 바뀌게 된다.

 

"광명과 뭉우의 숙원은 오래 되었습니다. 다농의 이번 행위는 양자간의 경쟁과 갈등을 더욱 격화시킬 것임에 분명합니다." 상해일언상무유한공사의 수석고문인 탕지경의 말이다. 그가 보기에 다농의 거동은 광명과 몽우의 세력범위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작년의 전국유업대회에 참가했던 인사의 회고에 의하면, 회의에서 우근생(牛根生)과 왕가분이 우연히 만났는데, 두 사람은 그저 상징적으로 인사할 뿐이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대회의 발언에서 우근생은 활기발랄하게 "대초원에서 온 우유가 더 건강하다"고 하였고, 왕가분은 즉시 반격하여, "도시에도 초원양식기지가 있다. 이것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쌍방은 서로 마주본 후 침묵이 흘렀다.

 

금년 4월, 다농은 광명의 손에서 핵심인 요쿠르트제품인 "벽유"를 회수해서, 몽우에 주었다. 이때 광명은 즉시 맛은 물론 포장도 똑같은 "창유(暢悠)"를 내놓았다. 이로써 화동의 주요도시에서 쌍방은 격렬한 쟁탈전을 벌였다. 여러 슈퍼마켓에서 비슷한 녹색 유니폼을 입은 광명과 다농의 판촉원들이 큰 소리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탕지경의 분석에 의하면, 광명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사실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즉, 다농이 광명의 시장전략과 계획을 손바닥 보듯이 잘 알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이후의 전투에서 광명이 피동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실제로, 다농이 떠난 후, 몽우, 광명 둘 간의 암전(暗戰)을 광명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10월 17일, 광명유업의 대변인인 공연기는 기자인터뷰에서 "다농이 떠난 후, 광명은 요쿠르트 연구개발에서 우세를 발휘할 수 있고, 자주개발한 균종의 광명 요쿠르트를 크게 성공시키겠다"고 하였다.

 

탕지경에 따르면 금년에 새로 광명의 새로운 최고경영자가 된 곽본항(郭本恒)은 현재 광명에 대하여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왕가분시대의 관리모델이 점차 곽본항의 속도를 중시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현재, 곽본항은 지역본부를 만들고, 지역본부는 기획, 공급, 판매의 세 개 센터를 둔다. 이리하여 연구개발, 제품, 채널의 흐름을 통일관리한다. 이외에 지역본부내에는 제품, 재무등의 감사능력을 강화시키고, 평형계분법을 포기하고 목표관리를 시행하며, 판매액과 이윤이라는 두 개의 주요한 지표를 규정했고, 시장점유율과 채널을 다음으로 중요한 지표로 정했다.

 

상해명태유업판매공사의 책임자인 노병이 보기에, 당시 왕가분은 제품의 프로모션을 위하여 제품분류에 따라 사업부를 만들었다. 비록 안정적이기는 했지만, 반응이 느리고 비용이 낭비되었다. 곽본항의 지역본제는 사업부제와 결합하여 이 결함을 보완할 수 있었다.

 

이외에 광명은 내부조직기구를 조정하는 동시에, 광명의 마케팅전략도 변화하였다. 현재 광명은 출시제품을 줄이고 있다. 지금까지 광명은 100종의 제품을 중단했다. 이는 광명의 전체제품의 1/4에 가깝다. 이로써 장점을 모아서, 핵심제품과 시장에서 증명된 스타제품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