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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민국 초기)

민국시대 대학자들의 강의머릿말

by 중은우시 2007. 8. 23.

민국시대 대학자들이 강의를 할 때, 머릿말은 사람마다 달랐고, 각자의 성격과 품격을 엿볼 수 있다.

 

청화대학 국학4대가의 한 명으로 불리우던 양계초(梁啓超)는 수업을 시작할 때 첫마디가 "형제들이여, 나는 뭐 학문이랄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잠시 기다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작은 소리로 수근거린다. 양계초는 천정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뒷 말을 잇는다. "형제들이여, 그래도 약간은 학문이 있습니다." 첫마디는 아주 겸허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아주 자부심에 가득찬 말이다. 그는 선억후양(先抑後揚)의 방법을 쓴 것이다.

 

서남연합대학 중문과 교수인 유문전(劉文典)도 양계초의 머릿말과 동공이곡(同工異曲)의 측면이 있다. 그는 <<장자(莊子)>>연구로 유명한 사람인데, 학문도 대단하지만, 성깔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수업할 때 처음 하는 말은 : "장자는...내가 몰라...아무도 몰라..."이다. 이 말에서도 그의 자부심을 엿볼 수는 있다. 그가 항일전쟁시기에 방공동으로 도망쳐 들어갔을 때, 작가인 심종문(沈從文)도 달려가는 것을 보고는 아주 화를 내면서 말했다고 한다: "내가 방공동으로 도망치는 것은 <<장자>>때문에 도망치는 것이고, 내가 죽으면 아무도 <<장자>>를 가르킬 수 없기 때문인데, 너는 왜 도망치는 것이냐?" 이 말에서 경멸의 뜻이 묻어난다. 다행히 심종문은 성격이 좋았기 때문에, 그가 이런 말을 해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겼다고 한다.

 

심종문의 소설은 아주 뛰아나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하고, 노벨상을 받을 뻔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강의는 보통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잘 알았다. 그래서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강의를 잘 하지는 못한다. 너희는 자고 싶다면, 반대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코는 골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면 안되니까." 이렇게 겸손하게 얘기하면, 오히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박수를 더 많이 쳤다. 그에게 배웠던 왕증기가 그의 강의를 평한 적이 있는데, "계통이 없다", "상서(호남성서부지역)쪽 사투리가 너무 심하고, 목소리도 작아서, 어떤 학생들은 강의를 듣고도 뭘 들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학문도 뛰어났을 뿐아니라, 강의도 아주 잘했다. 예를 들면 대시인인 문일다(聞一多)와 같은 경우이다. 문일다는 강의를 할 때, 제일 먼저 담배를 하나 꺼내어 피운다. 그리고는 높낮이가 분명한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술은 통음하고 <<이소>>를 읽어야...명사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당시(唐詩)를 강의하면, 만당시와 후기인상파의 그림을 연결시켜 설명하는데 아주 특색이 있었다. 그는 말솜씨가 좋았고, 경전도 적절히 인용했다. 그래서 강의할 때면 사람이 꽉 차곤 했다.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도 도강하러 �고 어떤 사람은 수십리를 걸어오기도 했다.

 

계공(啓功) 선생의 머릿말도 아주 재미있다. 그는 유머가 있는 사람이다. 평소에도 농담을 잘하는데, 수업할 때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첫번째 말은 자주 이러했다: "나는 만주족이다. 예전에 오랑캐(胡人)라고 불렀지. 그래서 내가 하는 강의는 다 헛소리(胡說)이다". 그러면 강의실이 웃음바다가 된다. 저명한 작가이며 번역가인 호유지(胡愈之)선생도 가끔 대학에 와서 강의를 할 때면, 시작할 때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성이 호(胡)씨이다. 비록 책을 좀 쓰긴 했지만 다 엉터리로 쓴 것(胡寫)이고, 적지 않은 책을 출판했지만, 아무렇게나 내놓는 것(胡出)이고, 외국서를 번역하기는 했지만, 역시 엉터리로 번역한(胡譯)한 것이다" 이처럼 가벼운 농담 속에, 자신의 그동안의 업적을 집어넣었으니, 아주 교묘하다고 할 수 있었다.

 

중화민국시절의 기인인 고홍명(睾鴻銘)은 명성이 국내외에 나 있었다. 자칭 "남양에서 태어나고, 서양에서 공부했으며, 동양에서 결혼하고, 북양에서 벼슬을 지냈다"고 하였다. 외국인들은 "북경에 가면 고궁은 보지 않아도 되지만, 고홍명을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평을 하였다. 그는 신해혁명후에 변발을 자르기를 거부했고, 변발머리를 기르고 수업을 했다. 그러다보니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이 다 웃고 나면, 천천히 얘기했다: "내 머리의 변발은 칼 하나로 자르면 해결된다. 그러나, 너희들 마음 속의 변발은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면 강의실은 조용해진다. 그의 강의를 듣게 되면, 행운유수이고 뛰어난 학문이 드러나니, 명불허전이었다.

 

가장 폼을 많이 잡은 사람은 장태염(章太炎) 선생이었따. 그는 학문이 높아 강의를 들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큰 강의실을 열었다. 그가 강의를 하면 5-6명의 제자가 따라가는데 마유어(馬幼漁), 전현동(錢玄同), 유반농(劉半農)등이 끼어 있었다. 이들도 모두 일대의 준걸이고 대가급의 인물이었다. 장태염 노친네는 표준말을 잘 하지 못해서, 유반농이 번역을 담당하였고, 전현동은 칠판에 글씨를 썼고, 마유어는 차를 따랐다. 이 노친네는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내 강의를 듣게 된 은 너희들의 행운이다. 당연히 나의 행운이기도 하다" 다행히 뒷마디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앞부분만 들었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학문은 대단했고, 이런 말을 할만한 자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