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호상장(五虎上將)
장개석군사집단내에서 다섯명의 전투에 능한 장군들이 있었고, 이들은 장개석에게 중용되었으며, 사람들이 "오호상장"이라고 불렀다. 유치(劉峙), 고축동(顧祝同), 장정문(蔣鼎文), 진성(陳誠), 위립황(衛立煌)이 바로 그들이다. 이 다섯 명은 나중에 모두 전구사령관(戰區司令官)이상의 고위직을 지냈다.
유치는 제5전구사령관, 서주'공비소탕'사령관을, 고축동은 제3전구사령관, 육군총사령관, 참모총장을, 장정문은 제1전구사령관 기찰전구총사령관을, 진성은 제9전구사령관, 중국원정군사령관, 참모총장을, 위립황은 제1전구사령관, 중국원정군사령관, 동북'공비소탕'사령관을 지냈다.
2. 팔대금강(八大金剛)
장개석의 적계부대안에 8명의 황포군관학교 교관출신인 중요한 장군들이 있었다(장개석은 황포군관학교 교장을 지냈음). 이들은 장개석의 신임과 중용을 받아 "팔대금강"이라고 불리웠다. 하응흠(何應欽), 유치, 고축동, 장치중(張治中), 전대균(錢大鈞), 진성, 장정문, 진계승(陳繼承)의 여덟명이 그들이다. 이들 8명은 모두 정규사관학교 출신들이다.
하응흠, 전대균은 일본육군사관학교 유학생출신이고, 장정문은 절강육군강무당에서 공부했으며, 나머지 5명은 보정육군군관학교의 졸업생들이다. "팔대금강"은 황포군관학교에 있을 때도 장개석이 중시했고, 국민혁명군을 만든 후에는 장개석군사집단의 핵심이 되었다. 그리하여, 중앙군의 첫번째 군단장, 사단장들을 역임했다.
3. 십삼태보(十三太保)
1932년, 장개석은 심복인 황포군관학교 졸업생 하충한(何衷寒), 등문의(鄧文儀), 강택(康澤), 계영청(桂永淸)등으로 하여금 특무조직인 "중화민족부흥사(中華民族復興社, 藍衣社라고도 부른다.)"를 조직했다. 장개석은 13명을 조직의 핵심골간으로 했는데, 이들을 "십삼태보"라고 불렀다.
구체적으로 어느 13명인가에 대하여는 몇가지 다른 버전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하충한, 등문의, 강택, 계영청, 유건군(劉健群), 반우강(潘佑强), 정개민(鄭介民), 갈무계(葛武綮), 양건교(梁乾喬), 초찬육(肖贊育), 등걸(滕杰), 두심여(杜心如), 호종남(胡宗南)등 13명이라고 하고, 다른 일설에 의하면, 유건군, 하충한, 등문의, 강택, 계영청, 풍제(酆悌), 정개민, 증호청(曾護淸), 양건교, 초찬육, 등걸, 대립(戴笠), 호종남등 13명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 > 역사인물 (장개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개석은 어떻게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는가 (0) | 2008.12.12 |
---|---|
1944년 미국의 장개석 암살계획 (0) | 2008.06.02 |
장개석의 첫째부인 모복해(毛福海)의 처량한 일생 (0) | 2007.05.02 |
장개석의 7가지 역사적 공헌 (0) | 2007.04.12 |
장개석의 키는 얼마나 될까? (0) | 2007.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