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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장개석)

장개석의 키는 얼마나 될까?

by 중은우시 2007. 3. 21.

장개석은 중국역사상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큰 사건들이다. 그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잘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그의 키. 도대체 키는 몇 센티미터였을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장개석은 키가 비교적 큰 사람으로 남아 있다. 이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이런 큰 인물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우러러보는 자세로 보았을테니까. 본능적으로 그의 키가 크다고 느꼈을 것이다. 물론, 키가 작기로 이름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나폴레옹이라든지, 등소평이라든지. 주은래의 경우에 일반 사람들은 그가 키가 적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키가 작았다. 167센티미터였다. 지금 본다면 전형적인 키작은 사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장개석의 키는 얼마였는가? <<장개석일기의 비밀을 푼다>>라는 책에서 장개석의 1916년 7월 31일부터 8월 12일까지의 일기가 있는데, 이 때는 장개석이 허숭지의 수하로 13일간 참모장을 지낼 때 남긴 13편의 일기이다. 그 중 8월 1일자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오늘 보니, 고쳐야 할 것들이 아래와 같다:

1. 총을 잡을 때 총신을 위로 향하는 자도 있고, 오른 쪽으로 향하는 자도 있는데, 이후 명을 내려 모두 오른 쪽으로 향하게 하여 통일해야 겠음.

2. 기병이 말을 탈 때, 반드시 가죽신을 신도록 하여야 겠음.

3. 징병된 병사의 키의 크기, 나이, 체격이 불합격인 자가 있음. 각단. 대장에게 명하여, 정리하도록 하여야 겠음.

 

이 일기를 보면, 한편으로 당시 장개석이 곤경에 처해있음을 알 수 있다. 모집해온 병사들이 총을 위로 향할지 어디로 향할지도 모두 모르고 있었다는 점과 장개석 자신이 키에 대하여 매우 중시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아마도 1909년 12월, 그가 사관후보생의 자격으로 일본 다카다진의 육군제13사단 야표병 제19연대에서 실습할 때를 생각하였을지도 모른다. 그 때 그는 22세였고, 그의 키는 169.4센티미터였다. 체중은 59.2킬로그램이었다.

 

22살이라면 키가 더 이상 자라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장개석의 키는 개략 22세때인 169.4센티미터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1년동안의 전사생활중에 장개석은 자신에게 엄격했다. 그는 그 때를 기억하여 말하기를: "나는 소년시절 체격이 좋지 않았다. 다카다연대에 들어갈 때, 스스로 단련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눈이 많이 쌓인 곳에서 스스로 눈으로 온몸을 닦거나, 혹은 찬물로 세수를 하는 등 각고의 단련을 했다. 그러자 나중에 몸이 점차 강건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경험에 비추어 이렇게 단언할 수 있다. 좋은 신체는 타고나는 것이 3푼이면,  나머지 7푼은 모두 단련에 달려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