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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삼천갑자 동방삭(東方朔) : 1년에 1번씩 처를 바꾸었나?

by 중은우시 2007. 8. 6.

글: 왕립군(王立群)

 

최근 들어 인터넷에서 널리 회자되는 인물중에 동방삭이 있다. 그런데, 그는 지혜로 돈을 모으고, 돈으로 미녀를 사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 근거는 <<사기. 동방삭전>>인데, 이렇게 기재되어 있다.

 

"취소부어장안중, 호녀, 솔취부일세소자즉기거, 경취부. 소사전재, 진색지어녀자(取小婦於長安中, 好女, 率取婦一歲所者卽棄去, 更取婦. 所賜錢財, 盡索之於女子; 장안의 어리고 좋은 여자를 취했으며, 여자를 취한 후 1년이 되면 버렸고, 다시 다른 여자를 취했다. 하사받은 돈과 재물은 모두 여자를 얻는데 썼다)"

 

이에 의하면, 동방삭은 처를 취하는데 3가지 원칙이 있었다는 것이다. 첫째, 수도인 장안의 여자이어야 한다. 둘째, 어리고 미인이어야 한다. 셋째, 1년에 1번씩 처를 바꾼다. 그리하여, 그는 황상으로부터 하사받은 돈과 재물을 모두 옛처와 헤어지고, 새처를 구하는데 썼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터넷에 떠도는 동방삭에 대한 소문이다.

 

그러나, <<사기>>는 절대 <<사기>>만 봐서는 안된다. 지금 전해지는 모든 역사문헌은 그저 문명의 깨진조각에 불과하다. 그것은 절대 역사의 모든 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사서를 읽을 때 하나의 중요한 원칙은 모든 역사문헌을 널리 읽는 것이다. 그래서 <<사기>>를 읽을 때는 반드시 순열(荀悅)의 <<한기(漢記)>>,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등 기타 각종 문헌도 함께 읽어보아야 한다. <<사기>>의 동박삭전은 그저 저소손(少孫)의 보전(補傳)이어서, 내용이 짧다. 사마천은 <<사기>>에 동방삭을 위하여 단독의 전을 두지 않았다.

 

만일 <<한서. 동방삭전>>을 참고한다면, <<한서, 동방삭전>>은 <<사기. 동방삭전>>처럼 간단하지 않고, 내용이 풍부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의 중요한 하나의 이유는 <<한서. 동방삭전>>은 대량의 문헌을 추가하여, 동방삭의 유머스러운 점 이외의 면모를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무제가 상림원을 확장하려는 것을 ㅁ저지했고, 그는 한무제가 사위를 죽이면서 법을 집행하는 것을 찬양했고, 그는 두태후의 남총이 궁중에 들어오는 것을 결사반대했다. 이런 한 문구, 한문구, 한문장, 한문장은 모두 동방삭의 가치기준이 정통문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점이라면 동방삭은 자신의 진면목을 잘 감추었었다는 것뿐이다.

 

동방삭은 사실 중국의 문사들 중에서 가장 면저 주변화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는 한무제의 눈에는 그저 "농신(弄臣, 정사를 도모하는 신하가 아니라 그저 글, 그림, 노래, 연극등 놀이를 도모하는 신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손홍등 조정중신과 비교하자면 동방삭은 한무제의 눈에 아주 보통의 신하에 불과했다. 그래서, 동방삭은 자신의 농신으로서의 비애를 각골명심하게 된다. 이처럼 황제의 눈에 가볍게 느껴지는 그의 사회적 지위는 가장 달콤한 희극뒤에는 더욱 슬픈 비극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동방삭의 이런 고통은 숨어있는 것이었고, 일반인들이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답객난>>, <<비유선생론>>은 이때문에 쓴 글이다.

 

동방삭은 특수한 인재였다. 이런 불공정한 인생의 처지에 대하여, 그는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그의 각종 유머스러운 행위, 기이한 행위는 그저 이런 특수한 배경하에서 특수한 배설방식일 뿐이었다.

 

더욱 많은 경우에 우리가 보는 것은 넓고 큰 세계에 대한 것이고, 한 사람의 내심에는 잘 도달하지 못한다. 어떤 사정의 진상을 우리가 깊이있게 알기는 힘든 경우가 많다. 동방삭의 특수한 경우는 유머속에 눈물이 배어 있고, 소탈함 속에는 집착이 숨어 있다. 모든 생명은 모두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존중은 해주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기이하고 유머스러운 동방삭을 가지고 그는 그런 사람이다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그것은 이 천재를 우리가 잘못 대우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동방삭이 진짜 박학한 지식을 가지고 돈과 재물을 얻고, 이 돈과 재물로 다시 미인을 구하는데 썼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동방삭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이다. "쓰면 호랑이요, 안 쓰면 쥐새끼로다(用之則爲虎, 不用則爲鼠)"라는 것은 동방삭의 명작인 <<답객난>>에 나오는 명문구이다. 이것은 바로 이 천재의 내심에서 우러나온 고통의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평가절하는 바로 <<사기>>만 읽고, <<한서>>는 읽지 않은데서 비롯된다. 이것은 그다지 나무랄 바가 못된다. 그러나, 분명히 <<한서>>까지 다 읽은 사람이 이처럼 동방삭을 해석한다면, 그 동기는 의심해볼 만하다. 동방삭을 이해하려면, 동방삭의 인생에서의 양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동방삭의 양면중 어느 것이 겉모습이고 어느것이 진실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최고의 은자는 인터넷에 숨어 있다(極隱殷於網).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저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인터넷에도 진선미의 글이 필요하다. 인터넷에 탐닉한 독자들은 왕왕 독서를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역사인물을 오인시키는 글만 보고서,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쉽게 치부해버리는 경향도 있다. 문제는 이런데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바로잡는 글을 썼는데, 그 이유는 모두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관리자의 관심이 필요하다. 인터넷은 방문자수가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방문자수는 품위를 지키면서 얻어야 하는 것이지, 괴상한 이야기로서 얻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 하은은어산, 중은은어시, 상은은어조(下隱隱於山, 中殷殷於市, 上隱隱於朝)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왕립군 교수는 다시 극은은어망(極殷隱於網)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재미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