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국가가 망할 때, 계속 살아남았던 공주들중에서 불행한 경우를 당한 사람은 많다. 그들이 당했던 기구한 운명은 아마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겠지만, 역사기록으로 남아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역사의 한 기록에는 한 공주가 노비로 팔려갔던 기구한 운명이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서진(西晋) 혜제(惠帝)의 딸인 임해공주이다. 혜제에게는 네 명의 딸이 있었다. 장녀는 하동공주(河東公主), 둘째는 임해공주, 셋째는 시평공주(始平公主), 넷째는 애헌공주(哀獻公主)였다. 그 중에서 둘째인 임해공주의 운명이 가장 기구했다.
임해공주는 원래 청하공주(淸河公主)로 봉해졌다. 서진이 멸망하고 낙양이 혼란에 빠지자, 황족들은 줄줄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망가던 도중에 가족들 및 자매들과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한 농촌의 농부가 청하공주를 발견하고는 그녀의 신분이 공주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몇푼의 돈을 받고 오흥현(吳興縣)에 사는 부자인 전온(錢溫)에게 노비로 팔아버린다.
전온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귀엽게 자라 버릇이 없었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였다. 특히 자기 신변의 노비들에 대하여는 마음대로 대하였다. 기분내키는대로 시키고, 때리고 욕하기를 다반사로 하였다. 전온이 공주를 사서는 그녀의 딸에게 시녀로 주었다. 공주의 일생중 가장 힘들고 비천한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청하공주는 원래 용모가 단정하였고, 황실의 혈통을 이었으므로 걸음걸이 하나, 태도 하나가 기품이 있었다. 이것은 시골 부자집 딸이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온을 딸로 하여금 질투심을 유발시켰고, 그녀는 청하공주의 진짜 신분이 뭔지를 캐물었다. 그러나, 공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전온의 딸은 청하공주에게 차갑고 혹독하게 대했으며, 이것 하라, 저것 하라고 함부로 시켰으며,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채찍으로 마구 때리고, 어두운 방에 가두어 두고 며칠밤낮을 먹을 것도 주지 않았다. 공주는 외롭고 힘들었으나 주변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저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전에 공주로 생활한 것이 아무리 화려했더라도 이제는 모두 연기처럼 흩어졌으니 운명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진원제(晋元帝)는 강남으로 가서 진나라를 다시 세웠다. 역사에서 동진(東晋)으로 부르는 황조이다.
청하공주는 이 소식을 듣고는 마치 암흑중에 하나의 희망을 찾은 것과 같았다. 전씨녀가 그녀를 바깥에 나가서 지분을 사오라고 시켰을 때,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그 소굴을 벗어났다. 천신만고끝에 도성에 도착했고, 천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지기는 그녀의 의복이 남루하고, 노비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녀나 전황제인 진혜제의 딸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녀가 맹세하고 별짓을 다한 다음에야 위사들이 상부에 보고하였다.
원제의 앞에서 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그 동안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얘기했다. 원제는 그녀의 불행을 슬퍼하며, 전온과 그 딸이 공주를 학대한 것에 분노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전온과 그 딸을 압송해오도록 해서 감옥에 넣어 죽여 버렸다.
오래지 않아, 진원제는 청하공주를 임해공주로 다시 봉하고, 조통(曹統)에게 시집보낸다. 공주의 생활은 드디어 구름이 걷히고 밝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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