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주원장)

대명왕조 1380년 : 주원장과 호유용

중은우시 2007. 7. 10. 12:22

글: 담백우(譚伯牛)

 

한고조(유방)와 명태조(주원장)은 중국역사상 평민에서 천자에 오른 "절대쌍교(絶代雙驕)"이다. 두 사람은 유사한 점이 많다. 가장 안좋은 부분은 공신들을 많이 죽였다는 것이다. 한고조는 한신(韓信)을 죽이고, 팽월(彭越)을 죽이고, 경포(鯨布)를 죽였으며, 번쾌(樊)를 가두고, 노관(盧)을 쫓아냈다. 한나라초기에 왕에 봉해졌던 이성왕(異姓王, 유씨가 아닌 왕)들 중에서는 궁벽한 곳에 있던 장사왕(長沙王) 오예(吳芮)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명에 갔다.

 

명나라와 한나를 비교해보면, 두 가지 점이 다르다: 첫째, 명나라초기의 도살규모는 한나라를 훨씬 초과한다. 둘째, 주원장의 살인수단은 유방보다 훨씬 고명했다.

 

명나라이전의 군주제에는 하나의 특색이 있다. 즉 재상(宰相)이 황제를 보좌하여 국사를 처리하는 것이다. 시기마다 재상의 명칭은 달랐고, 인원수도 고정적이지 않았으며, 직권도 서로 달랐다. 그러나, 관료집단의 영수이자, 군권에 대한 견제균형의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재상은 전통정치제도에서 중요한 구성부분이 된다. 특히 개국초기에는 해야될 일이 많으므로 재상의 작용이 더욱 무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주원장이 이를 몰랐을리 없다. 그래서 일찌기 원나라 지정24년(1364년) 그가 막 "오왕(吳王)"을 칭했을 때부터, 그는 좌우상국(相國)을 둔다. 이후 명나라 홍무13년(1380년)까지 이선장(李善長), 서달(徐達), 왕광양(汪廣洋), 호유용(胡惟庸)의 네 사람이 선후로 재상이 된다. 이로보면 주원장도 재상제도에 대하여 무슨 편견이 있었던 것같지는 않고, 이전 제도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명나라때 승상은 딱 위의 네 사람 이선장, 서달, 왕광양, 호유용 뿐이다. 그리고 네 사람은 모두 비명에 죽었다. 특히 "호유용사건"은 관련자가 너무 많아서, 역사상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이다. 왜 그랬을까?

 

어떤 사람은 호유용이 원래 반골(反骨)이었다고 한다.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전혀 분수를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명사>>에 의하면 호유용은 관리를 살리고, 죽이고, 축출하고, 임명하는데 있어서 황제에 보고하지 않고 임의로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행정과 사법을 독단하는 행위이므로 분수를 넘어섰다. 그러나, 원래 행정, 사법은 재상이 통할하는 것인데, 어느 정도 지나친 점이 있다고 해서 큰 과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주원장을 화나게 한 것은 바로 그가 자기에게 불리한 보고를 숨기고, 황제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뇌물수수나 자기 사람을 등용하는 것같은 것은 자잘한 과실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이러하지만, 여전히 죽을 죄라고 하기는 힘들다.

 

호유용이 결국 살신지화를 당하게 된 것은 정사의 기재에 의하면, 그가 관료로서 좌절을 겪었던 육중형(陸仲亨), 비취(費聚)등과 어울리고, 이선장, 진녕(陳寧), 모양(毛), 이존의(李存義), 임현(林賢), 도절(塗節)등의 문관무장등을 들쑤셔 황제에 반대하는 집단을 형성했고, 대외적으로는 몽고, 일본과 연결하였기 때문이다. 명태조가 그의 행동을 눈치채고 먼저 손을 쓴 것이며, "호유용일당"을 일망타진한 것이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피살당한 자가 3만여명이고, 작위를 받았던 자가 20여명, 5품이상의 관리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는 중국 2천년역사상 거의 유례가 없는 "대숙청"이며, 정사에서 말하는 "호유용사건"이다.

 

호유용을 주살한 후, 주원장은 중서성(中書省)을 폐지하고, 육부상서를 승격시키고, 대도독부를 오군도독부로 고쳐서 황제가 직접 관장하며, 승상제도를 더 이상 두지 않는다.

 

이 사건에 관하여는 의문이 많다.

 

호유용이 주원장의 휘하로 들어온 것은 지원15년이고, 재상이 된 것은 홍무 3년이며, 권력을 독단한 것이 홍무6년(이때 우상인 왕광양이 쫓겨나서 호유용은 유일한 재상이 된다)이며, 주살당한 것은 다시 6년이 지난 후였다. 만일 주원장이 호유용이 간신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주원장이 20년의 시간을 들여서야 호유용의 진면목을 알았다는 것인데, 만일 그렇다면, 주원장에게 나라를 개창할 자격이 있겠는가? 이 점은 의문스럽다.

 

더욱 이상한 것은, 호유용은 홍무12년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는데, 이때의 죄명은 모반이 아니었다. 형사사건(노비를 화가나서 죽인 일)과 행정상의 과실(죄인의 부인을 문신에게 첩으로 준 일)이었다. 우스운 것은 감옥에 갇힌 후에 돌연 누군가 나타나서 그를 모반했다고 고변한 것이며, 호유용은 이것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더욱 재미있는 일은, 그의 목을 자를 때까지도 '모반사건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10년이후에야 다른 죄인들을 조사하면서 의외의 수확을 얻게 되고, 마침내 그의 '역모'안의 진상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거시다. 그리하여 그와 관련된 자들은 모두 숙청했다. 설마 이처럼 중대한 사건을 이처럼 희극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역사를 읽다가 의문이 생기면 재삼 재사 읽어볼 수밖에 없다. 개국황제라면 분명히 특별한 재능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약점을 가장 신속하게 가장 투철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거기에 이것을 이용하는 고명한 수단이 필요하다. 즉, 최대한도로 인성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조조는 유명한 두 마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첫번때 문구는 바로 "거재, 물구어품행(擧才, 勿拘於品行, 인재를 뽑을 때는 품행에 구애받지 않는다)"이다. 즉, 인재를 쓸 때는 품행이 방정하고 천성에 결험이 없고, 이름날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이득을 탐하지 않으며, 술과 여자에 탐닉하지 않는 사람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나라를 관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재주만 가지고 있다면, 바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 재주를 쓸 곳이 없을까 걱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두번째 문구는 바로 "오임천하지지력, 이도어지, 무소불가(吾任天下之智力, 以道御之, 無所不可, 내가 천하의 지혜로운 자와 힘있는 자를 씀에 있어서 '도'로서 제어하니, 하지 못할 바가 없다)" 여기에서 '제어'하거나, '도'라는 것이 무슨 고심막측한 말 같지만 실제는 사람을 쓰는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름을 날리기는 좋아하나 이익에는 관심이 없는자, 이익은 중시하나 악명을 떨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자, 풍류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자들 같은 경우에는 이들에게 각각 간언, 징세와 군사의 임무를 맡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큰 효과를 본다. 이름 날리는 것을 너무 좋아하면 황제를 질책하는 경우도 생기고, 이익을 너무 중시해서 세금을 거두다 보면 백성들로부터 원한을 사는 경우도 생기고, 풍규를 좋아하다보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음행을 저질러 군기를 해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큰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해석, 재판, 상벌의 권리를 장악하고, 권력균형을 이루며, 모자라면 더해주고, 남으면 덜어주게 되면 처리못할 일이 없고, 장악못할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성의 약점을 관찰하는 것을 소위 "지인(知人, 사람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성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은 "선임(善任, 잘 맡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가지는 주원장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는 호유용의 재주를 아껴서 그를 등용했고, 그의 총애와 재주를 믿고 교만하다는 약점도 눈치챘다. 그러나, 그를 어떻게 쓰고, 그를 언제까지 쓸 것인가는 바로 주원장의 진정한 수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초창기에는 외환이 끝날 때쯤이면 내우가 시작된다. 생각해보라, 주원장과 함께 천하를 일군 사람들이 스스로 피차간에 신분차이가 크지 않고, 재능차이도 크지 않다고 느끼고, 흘린 피땀도 별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데, 예전에는 형님 동생하면서 친숙하게 지내다가 이제는 주원장은 황제로 구오지존(九五之尊)에 오르고, 자신은 그저 신하로서 복속해야 하니,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마음 속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갈 것이다. 말을 오래 못하다보면 병이 생긴다. 병이 깊어지면 미치게 된다. 미치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면,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논리가 모든 공신에게 다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중의 한 사람만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주원장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런 자가 누구인가? 어떻게 하면 그런 자를 드러나게 할 수는 없을까? 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혹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만일 공공연히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런 자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기에게 모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왜냐하면 일단 상대방이 공공연히 반란을 일으킬 때가 된다면, 아마도 절반이상은 주원장이 그를 이기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동적으로 몰리지 않기 위하여, 그저, "혹시 잘못 죽이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그냥 두지는 않는다"는 방침을 시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원장은 부득이 모든 공신은 황제위를 탐한다는 전제하에서 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공신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것이 개국이후 내정에서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가 된 것이다. 다만, 공신부에 있는 공신들을 함부로 모두 죽여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순서를 따져야 했다. 순서를 따질 때 가장 먼저 죽여야 할 사람은 가장 앞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이다. 유기(劉基, 유백온)와 서달(徐達)이다. 문과 무를 대표하는 두 인물이다. 공로가 현저하고, 명성도 가장 뛰어났다. 이들을 죽여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두 사람은 모두 정파이므로, 먼저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유일한 방법은 차도살인(借刀殺人, 다른 사람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명사>>를 읽어보면, 호유용이 일찌기 서달의 집안사람인 복수(福壽)를 꼬드겨서 서달을 무고하라고 시킨 적이 있다. 그러나 복수는 그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호유용을 고발했다. 공신을 중상무고하려하였으니, 이것은 매우 중대한 사건이다. 그러나, 역사서에 의하면 서달은 이를 알며서도 모른 척했고, 주원장도 이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서, 사건은 흐지부지 되어 버린다.

 

홍무8년, 유기가 병이 들었다. 호유용은 의사를 청해서 그를 진맥하게 한다. 유기는 시키는대로 약을 먹었는데, 바로 죽었다. 그래도 주원장은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다. 호유용도 그대로 재상직에 있었다. 이것을 차도살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주원장을 지하에서 불러내서 진술을 받아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로 인하여 서달과 유기는 한 명은 폐해지고, 한 명은 죽었다. 더 이상 두 사람은 황제의 자리를 위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호유용을 이용하여 공신을 겁주고 심지어 죽이려는 계획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최대공신들이 더 이상 위협이 아니게 되었으니, 이제는 다른 공신들에게 창끝을 향할 때이다. 그러나, 공격대상이 너무 많았다. 그저 호유용에게 공신의 가솔과 연락하게 하거나, 독약을 먹이게 하는 것만으로는 효율이 너무 낮았다. 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은 자그마한 일을 크게 벌여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도 차도살인이다. 그러나 전자와 차이가 있는 것은 이번에는 빌린 칼을 다 쓰고 나면, 그 칼도 녹여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오늘 날의 용어로 하자면 "품질보증기간"이 지난 것이다. 그리하여 "호유용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당연히 공신들은 초개와 같아서 한번 베어도 깨끗이 베어지지 않는다. 12년후에, 주원장은 양국공 남옥의 잘못을 붙잡아서 크게 일을 벌여 또 한번의 사건을 만들고, "일만오천명"을 주살하게 된다. 그 중에 작위를 받은 자가 15명이고 고관은 부지기수였다. 이리하여 공신은 씨가 말라버리게 된다.

 

이에 이르러 왜 죽였는지, 사람을 죽임으로써 어떤 문제가 해결되었는지에 대하여 대답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공신을 죽인 것은 필연적이었는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군주제하에서 특히 개국군주가 평민출신인 경우에 체제관성적인 사고는 전혀 없고, 구체제로부터는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저 옛군주를 몰아내고 스스로 군주가 되고자 했을 뿐이며, 다른 것이 없어지면, 토사구팽은 필연적이다. 이것은 살인한 사람의 품성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저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것도 천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