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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홍루몽

금병매(金甁梅)는 홍루몽(紅樓夢)의 어머니인가?

by 중은우시 2007. 6. 29.

글: 부광명(傅光明)

 

홍루몽이 천고의 명저라고 얘기하면 거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음서'로 악명높은 금병매를 명저라고 하거나 심지어 위대한 작품이라고 하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금병매에 대하여 강연하는 학자들 중에서 유세덕(劉世德) 선생이 금병매를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을 빼고, 다른 학자들은 대부분 금병매를 명저라는 정도로 인정한다.

 

시간적으로 보면, 금병매는 홍루몽보다 반세기 먼저 나타났다. 그리고, 홍루몽이 세상에 나타나자 마자, 어떤 사람은 바로 홍루몽이 금병매에서 유래했다고 말했다. 금병매가 조설근의 홍루몽 창작에 직접적이고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금병매가 명저인가, 금병매가 홍루몽의 탄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어떻게 예술적으로 금병매와 홍루몽을 대하여야 할 것인가? 장준(張俊) 선생의 "만의(漫議)"는 학술적인 사고의 단초를 제공해준다.

 

중국고대소설은 금병매에 이르러 소재에 있어서 돌파구를 마련했다. 즉, 가족사를 통하여 개인의 흥망성쇠를 썼던 것이고, 여성집단의 운명을 썼다. 금병매 이후에 가족소설은 소설창작소재의 주류가 되어버렸다. 장준은 금병매와 홍루몽의 예술성 및 여성관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비교한 후, 금병매와 홍루몽은 스토리구성과 예술기법상의 혁신이 있었고, 홍루몽은 금병매에서 차용, 계승, 발전했다고 하였다. 일부 구체적인 부분의 분석을 통하여 조설근이 그 난릉소소생(蘭陵笑笑生)보다 예술조예에 있어서나 예술장인정신에 있어서 훨씬 뛰어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비록 그러하지만, 장준은 여전히 정진탁(鄭振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즉, 금병매는 위대한 사실소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금병매는 확실히 중국소설에서 가족사를 쓰는 물길을 열었고, 중국제일의 '세정서(世情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홍루몽은 중국고대사실소설의 최고봉이라는데 의문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후세의 작품이 반드시 전기의 작품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찌기 어떤 작가가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가 소설을 쓰는데, 조금만 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면 언제인지 모르게 홍루몽처럼 쓰게 된다고. 필자의 생각으로 이것은 자신의 능력이 조설근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얘기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바로 홍루몽이 뛰어넘기 힘든 예술의 최고봉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천재의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금병매와 홍루몽은 공통점이 있다. 필묵이 짙든 옅든간에 모두 가정의 흥망성쇠를 그렸다. 이로써 인생의 철칙을 하나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절제없는 욕망은 훼멸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서문경"이든, 아니면 현대의 "가부(賈府)"이든, 이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다행불의필자비(多行不義必自毖, 불의를 많이 행하는 것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