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문화/중국의 서예

조조의 곤설(袞雪)

by 중은우시 2007. 6. 13.

 

건안12년(215년) 7월, 조조는 양평관(陽平關, 지금의 면현)에서 장로(張魯)형제를 물리친 후, 한중(漢中)에서 5개월여를 머문 적이 있다. 이때 유람차 포곡(褒谷)의 경치를 구경한 적이 있다.

 

이날, 날씨는 좋고, 하늘은 높았고, 들꽃은 향기로왔다. 조조는 문무관리, 시종 30여명을 이끌고, 화촌(花村, 지금의 하동점)을 지나 협곡을 따라 배를 타고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고, 석문(石門)에 이르렀다. 이 곳에서 사람들은 주변의 그림같은 경치를 만끽했다. 위에는 도도히 흐르는 포수(褒水)가 흘러내려오고, 거대한 물결은 강 한가운데의 돌에 부딛쳐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마치 흩어지는 물방울은 눈처럼 흩어져 내리고 있었다.

 

조조는 이 광경에 완전히 몰입되었다.  대자연의 조화에 흠뻑 빠져서 마음 속으로 예전의 장량(張亮)과 정자진(鄭子眞)이 왜 이 곳에 은거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실로 인간세상의 천당이었다. 조조는 흥취가 돌아 붓을 들어 그 자리에서 "곤설(袞雪)"이라는 두 글자를 썼다.

 

조조가 글을 쓰자 주변의 문무관리들이 몰려와서 쳐다보았다. 그런데, 곤(袞, 곤룡포)자는 원래 곤(滾, 흐르다)가 되어야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모두 서로 쳐다보기만 하고, 말을 하지 못했다. 이때 한 시종이 나와서 물었다.

 

"승상대인, 글자는 아주 힘이 있고, 품격이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다만..."

 

"말해봐라"

 

"그런데...그런데..."곤(袞)"자에 뭐가 빠진 것같아서..."

 

"뭐가 빠졌다고? 혹시 삼수변(三水邊)을 얘기하는 것인가?"

 

그리고, 조조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가리키며, "물은 여기 있지 않은가?"

 

그 자리에 있던 문무관리들은 그제서야 확연히 깨닫고,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이때부터, 후인들은 "미친 듯한 거대한 물결이 돌 가를 흐르네, '곤(袞)'자의 옆에 점을 찍을 필요는 없다네"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1969년에 석문의 댐공사를 하면서, 석벽에 새겨놓은 '곤설(袞雪)'이라는 글자를 떼어내서 박물관에 보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곤(袞)"자는 물과 떨어지게 되었다. 아마도 조조가 이 사실을 안다면 땅을 치고 통곡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