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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왕정위)

왕정위(汪精衛)의 매국투항이론

by 중은우시 2007. 6. 4.

글: 유앙(劉仰)

 

왕정위의 매국투항이론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은 모든 방면에서 중국보다 선진적이다.

둘째, 중국이 일본과 싸우면 반드시 패배한다.

셋째, 국제원조는 믿을 수 없다.

넷째, 공산당을 빼고, 중국인들은 일본인들과 진정으로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섯째, 중국과 일본은 동문동종(同文同種, 글과 인종이 같다)이다, 일본은 중국을 도와서 영미 백인통치를 끝장낼 수 있다.

여섯째, 유럽민족주의는 패도(覇道)이나 일본민족주의는 왕도(王道)이다.

일곱째, 아시아의 황인종은 일본의 지도하에 단결하여야만이, 백인종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다.

여덟째, 항일을 견지하는 것은 공산당의 음모이다.

 

약간만 분석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왕정위의 매국투항이론이 먼저 중국민족과 국가에 대한 비관과 실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고, 논리가 혼란스럽다는 것이고, 현상과 실질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이 중국보다 선진적인데, 일본인들 자신은 모두 서방에서 배워온 것이다. 그러나, 왕정위와 같은 류는 일본이 서방보다도 더 선진적이라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며, 그래서 일본은 서방처럼 중국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을 살펴보면, 청일전쟁전에 독일, 이탈리아등의 서방 '패도'민족주의가 추축국을 결성한 이후,왕정위는 도대체 어떻게 하여, 일본인들이 열심히 중국을 도와서 노예지위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고 믿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왕정위는 역사상 홍인종(인디안), 흑인종의 비참한 운명을 예로 들어, 만일 일본을 중심으로 단결하지 않으면, 황인종도 동일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왕정위가 이 말을 할 때는 남경대학살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일본인들이 황인종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분명해진 때였다.

 

다시 예를 들어, 왕정위는 항일이 공산당의 음모이고, 반공만이 일본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하였는데, 실제로는 일본이 소련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왕정위의 심복인 진공박은 심지어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나는 공비토벌문제로 일본인들과 등지고 싶지 않다"

 

왕정위는 일본인에 의지하는 것이 아시아와 모든 황인종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한편으로는 서방의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해를 입었는데, 이 점에 있어서는 일본과 같은 입장이라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중국은 '이이제이(以夷制夷)'사상이 보편화되어 있었는데, 열강들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국이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준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한 것은 "이이제이"라는 것을 외교측면의 하나의 기술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확실히 유용한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을 국가적인 전략으로 쓴다면 유효성의 전제는 반드시 자신의 강력한 힘일 것이다. 허약한 국가는 "이이제이"를 실현할 수 없다.

 

왕정위의 매국이론은 일본을 위하여 마련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기의 행위에 대한 궤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이 패권을 추구하는 실질을 교묘히 감추는 것이다. 왕정위의 "이이제이" 계획중에는 일본은 믿을 수 있는 "이(夷)"이고, 제약하는 대상은 잔학하게 중국을 약탈하는 영미의 "이(夷)"이고, 흑심을 품고 있는 소련의 "이(夷)"이다. 일본인의 주구로서, 왕정위는 일본의 모든 죄행을 극력 미화할 필요가 있었다.

 

왕정위는 중일간의 전쟁상태는 서로간에 고도의 신뢰가 없기 때문이며, 오해가 연속된데다가 공산당의 음모가 겹쳐서 전쟁으로 확대되었다고 보았다. 남경대학살등의 만행에 대하여도 왕정위는 만일 저항하지 않았다면 남경대학살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그저 일본의 "순민(順民)"이 되었더라면 일본인들도 중국인민들에게 잘해주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노비근성으로 가득한 말은 결국 전중국이 일본의 노예가 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왕정위는 근본적으로 일본이 중국을 멸망시키고자 한다는 야심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대만을 할양하더라도, 동북(만주)를 떼어가지더라도, 몽고, 화북을 일본이 지해하며 '자치'하더라도, 화남을 일본이 장악하더라도, 왕정위는 아직 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사실을 보지 않았다. 왕정위는 자신이 곡선구국(曲線救國)을 한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평화가 있고서야, 비로소 중국이 부흥할 씨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왕정위의 이러한 변명은 자기의 죄책을 벗어나려는 헛소리이다. 역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발생한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준다. 그저 일어나서 항일하는 것만이 중국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왕정위의 결말은 후세인들에게 알려준다. 본민족, 본국가에 대한 비관과 실망은 안된다. 이런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비관과 실망은 쉽게 패배주의로 연결된다. 국외세력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도 안된다.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건다면, 자신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독립자주가 유일한 출로이다. 정치적으로도 이렇고, 사상측면으로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