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중국 고대의 치수(治水)

중은우시 2007. 5. 17. 12:35

글: 마라(摩羅)

 

옛날의 치수이야기는 이렇다: "곤()은 막을 줄(堵)만 알아서, 9년간 노력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고, 순(舜)에 의하여 처형당하였다. 우(禹)는 치수를 함에 있어서 잘 흐르게 할 줄(疎導) 알아서, 마침내 성공했고, 민족영웅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두 가지 점은 항상 잘 이해되지 않았다. 첫째, 치수 즉, 강물을 다스리려면 당연히 흐르게 해야지, 막아서는 안될 것같은데, 왜 이런 간단한 이치도 모르고, 곤이라는 사람은 하필 계속 막으려고만 했을까. 둘째, 설사 곤이 치수를 함에 있어서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때문에 죽임을 당할 정도는 아닐 것같은데, 그는 왜 그렇게 재수가 없었을까?

 

최근 강림창(江林昌)이 쓴 80만자에 이르는 대작 <<중국상고문명고론>>을 읽고 나니,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하여 약간은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강림창의 저작에서는 지질고고학자의 견해를 가지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00 내지 4600년전에 황하는 소북평원(蘇北平原, 강소성북쪽 즉, 산동반도 남쪽)을 흘러 바다로 들어가다가, 하북평원(河北平原, 하북성, 즉 산동반도 북쪽)으로 물길을 바꾸었다. 곤과 우가 치수하던 시기는 바로 황하가 물길을 바꾸던 때였다. 이와 같이 물길을 바꾸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분명히 여러 차례의 홍수와 범람을 거치고, 수차례 반복되면서, 최종적으로 수로가 정해졌을 것이다.

 

수로를 북쪽으로 옮기려면 반드시 마을과 논밭이 펼쳐져 있던 하북평원을 뚫고 새로운 물길을 내야 했을 것이다. 이것은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돌발적인 재난이다. 그리고,소북평원, 회북평원(淮北平原, 안휘성 북쪽)의 옛날 수로에는 원래 사람이 살지 않았으므로, 옛날 수로를 통해서 바다로 황하물을 보낼 수 있다면 가장 온건하고 경제적인 방법이 되었을 것이다. 곤은 아마도 이런 치수방안을 시행했던 것같다. 그래서, 그는 황하가 하북평원쪽으로 흐르지 못하게, 계속 제방을 쌓고 둑을 쌓아서 물길을 막아 소북평원의 옛날 길쪽으로 돌리고, 옛날 물길을 따라 흐르도록 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홍수는 사람이 바라는대로 되지는 않았고, 계속하여 곤이 애써 만들어놓은 제방을 무너뜨리고 하북평원을 가로질러 갔을 것이다(* 황하는 모래가 많아서, 오래 흐르면 강바닥에 모래가 쌓인다. 그리하여, 오래된 물길은 양쪽의 제방을 계속 올려 쌓아야 하고, 물이 논밭보다 훨씬 높이 흐르게 되는 천정천이 된다. 그러다보니 한번 범람하게 되면 다시 물길을 잡아 옛 물길로 흐르게 하기 힘든 것이다). 그 때마다 하북평원의 주민들은 큰 재난을 당하게 되었을 것이며, 원성이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이리하여 부락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부락연맹도 해체의 위기에 처해있을 수 있다. 정치가인 순은 부락연맹의 응집력을 강화하고 백성들의 불평을 잠재우기 위하여 아마도 곤을 죽여야 했을 것이다. <<사기>>에는 '천하 사람들이 모두 순이 죽인 것이 맞다고 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는 많은 부락들이 곤을 죽여서 분을 풀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는 명을 받아 위기에서 치수방식을 바꾸게 된다. 즉, 그는 황하의 옛 물길, 소북평원으로 빠져나가던 길을 포기하고, 홍수가 새로 흘러가는 방향대로 하북평원의 마을을 이주시키고, 노동력을 모아서 물길을 내고, 제방을 쌓게 된다. 이리하여 황하를 산을 돌아 바다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한다. 황하는 순조롭게 물길을 바꾸었고, 홍수로 인한 재해는 크게 완화되었다. 우도 치수과정에서 자신의 권위와 위망을 세웠으며, 유례없는 민족영웅으로 성장하였고, 하나라 정권의 창시자가 될 수 있었다.

 

곤과 우라는 부자(아마도 진정한 부자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저 동일한 씨족의 전후 족장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후임 족장이 반드시 전임 족장의 아들이 아닐 수 있었다)는 서로 다른 의사결정과 선택을 함으로써 서로 다른 결말을 맞이하였다. 이는 "하늘을 따르는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진리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