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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다농 vs. 와하하

다농 vs 종경후 : 승자가 없는 전투

by 중은우시 2007. 5. 14.

글: 정작시(鄭作時) : 남풍창(南風窓) 기자

 

10년지양(十年之痒)

 

와하하와 다농의 결혼은 10주년이 지나면서 문제를 드러냈다.

 

2007년 봄, 와하하그룹은 지배주주와의 사이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설전이 벌어졌다. 와하하의 최고경영자로 인식되어 오던 종경후는 예상밖으로 미디어에 다농이 옛날 합자계약상의 다농에 유리한 조항을 이용하여, 저가로 와하하의 산하에 있는 비합자기어블 인수하려 한다고 공격했고, 계속하여 조용히 지내오던 다농의 고위층도 반격을 하였다. 다농에 의하면 종경후는 와하하의 경영권을 장악한 것을 이용하여 계약을 위반하여 비합자기업을 건립하고 지배하여, 대주주의 이익을 해지려 한다고 비난했다. 오랫동안 묵혀오던 분쟁이 드디어 폭발한 것이다.

 

10년전에 중국기업을 대표하던 와하하는 프랑스의 다농과 홍콩의 페레그린과 합자계약을 맺었다. 중국음료시장의 강자로서, 와하하의 최고경영자인 종경후는 당시 사방을 뛰어다니면서 전중국에 걸치는 판매망체계를 갖추었고, 아동영양품 하나로 시작해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첫번째 밑천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름도 없던 학교출자기업에서 전국에서 유명한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와하하의 시장에서의 실적은 중국의 식품시장에 막 진입한 다농과 투자은행 페레그린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이어서 삼자간에 당시 사람들이 좋게 평가하던 혼인을 맺게 된 것이다. 항주와하하집단은 합자회사의 49%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51%지분은 다농과 페레그린이 나누어 가졌으며, 와하하집단이 상대적으로 경영지배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시장의 발전이 이렇게 빠를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10년후, 와하하는 이미 연매출액이 100억위안을 넘는 회사로 성장하였다. 동시에 와하하의 최고경영자인 종경후가 생각도 못한 것은 동남아의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페레그린이 자신의 보유지분을 다농에게 양도한 것이었다. 이는 중국음료시장을 호시탐탐하던 다농에게 일거에 51%지분을 보유하게 해주었고, 합자회사의 지배주주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균형이 무너졌다.

 

식품음료시장은 대중소비재시장이다. 판매능력은 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바로 중국전역에 분포된 판매체계를 장악하고 있으므로 와하하의 최고경영자 종경후는 전체 와하하체계에서 아주 강력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파미르고원에까지 물을 팔 수 있는 중국식품업종의 대부는 근본적으로 합자상대방인 다농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다농이 자본을 이용하여 중국식품업계에서 전략적으로 공략했고, 몽우, 광명, 러바이스등 강력한 기업의 지분을 인수했지만, 종경후도 뒤지지 않고 다국적기업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다녔고, 다농이 와하하에 파견한 경영진은 모두 쫓아보냈다.

 

이 과정에서, 다농은 계속 참았다. 와하하의 사업은 고속발전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대폭 성장하는 이윤앞에서 다농은 와하하에 대하여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심지어 종경후가 합자회사의 배후에 마찬가지로 와하하브랜드를 사용하는 다른 회사를 만드는 것도 참아주었다.

 

참을 수 없는 마지막 한 걸음

 

그러나 다농의 도량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종경후의 마지막 발걸음까지 참아줄 수는 없었다.

 

와하하의 내부경영진은 고도로 집중되어 있다. 부총경리도 없고, 층층히 분권되어 있으며, 종경후의 아래는 모두 중급간부들이다. 와하하의 의사결정자는 종경후 1인이다. 그가 나이 60이 되어 은퇴할 때가 되면 후계자문제가 큰 난제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로 보면, 종경후는 딸인 종복리(宗馥莉)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 있었다. 더 일찌기 와하하의 판매대리점들은 물품대금을 나누어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은 바 있다. 이로써 볼 때, 종경후는 와하하에 지분참여한 후 거액의 이윤을 챙기면서 회사업무에 사사건건 간여하는 다농에 대하여 이미 손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경후의 말에 의하면, 다농은 중국시장에 대한 이해가 불완전했다고 한다. 다농은 러바이스를 완전히 인수한 후 제대로 실적을 보이지 못했는데, 이것은 민족감정을 가진 기업가에게 구실을 준 것같다. 다농이 관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와하하와 고하를 다투던 러바이스가 다농이 경영권을 행사한 후 시장지위가 일락천장하였다. 계속적인 인사변동으로 이미 브랜드는 2급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시장의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회사로 전락했다.

 

그러나, 종경후의 마지막 조치는 아주 위험한 기초위에서 건립된 것이다. 와하하의 합자회사는 "와하하"라는 저명브랜드의 사용허가를 가지고 있다. 다농은 현재 합자회사에 대한 절대지배주주가 되었다. 법률적으로, 다농은 거의 천시,지리를 다 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년전의 한장의 계약으로 종경후는 실제적으로 자기가 고생해서 만들어놓은 "와하하"상표의 지배권을 상실할 지경에 처했다.

 

그러나, 종경후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같다. 종경후의 근면과 우세로 그는 이미 와하하의 전체시스템에서 지고무상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종경후사장을 따라 하면, 돈을 번다"는 것에 이미 와하하의 판매대리점에서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다. 이런 컨센서스는 이미 나이 60에 이른 종경후가 모든 것을 걸고 다농과 한판을 벌일 수 있는 자본이 되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정력이 남아 있을 때 와하하의 미래를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다.

 

와하하는 어디로 가는가

 

종경후에 있어서, 와하하는 그의 아들이다. 종경후는 30여세때 창업하여, 삼륜차를 몰면서 아이스케키를 팔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와하하를 키워왔다. 한 지방기업에서 전국기업으로, 단일품목에서 음료업계의 선두주자로 와하하는 이미 풍부한 제품라인을 가지고 있고, 펩시콜라와 코카콜라에 도전할 용기와 실력까지 갖추고 있다.

 

중국시장에서 이미 세계업료업계의 거두들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중국음료의 민족기업으로서, 와하하는 적어도 중국시장에서 한 극(極)을 이루었고, 많은 거두들과 시장을 다투고 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 다농에게 있어서는 와하하는 그들의 글로벌전략의 한 도구에 불과하다. 백년기업으로서 다농은 전세계에서 선도적인 기술과 시장지위를 가지고 있다. 비록 중국이 신흥의 발전중인 시장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다농이 중국에서만 근 10개에 이르는 와하하와 같은 기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와하하의 지배주주로서, 그들이 와하하에서 가지는 시장점유율은 그들이 러바이스 혹은 다른 기업에서 잃어버린 것들이다. 다농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종경후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와하하가 진정으로 다농의 판도에 들어오느냐는 것이고, 다농의 중국 심지어 전세계전략의 일부분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와하하는 적어도 현재 다농에 있어서는 중요하다. 만일 와하하가 다농에서 벗어나면, 다농은 중국시장뿐아니라, 심지어 전세계시장에서도 또 하나의 강력한 경쟁자를 갖게 되는 것이다. 종경후의 안목과 시장수단으로, 와하하는 현재 전세계 제5위의 식품음료회사가 되었고, 미래에 다시 다농을 집어삼키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종경후도 언젠가는 은퇴해야 하는데, 그때가 되었을 때 와하하는 제2의 러바이스가 되지 않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점에 관하여, 우리는 러바이스가 다농에 인수된 상황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다농이 러바이스에 진입한 후, 러바이스의 원래 방대한 생산라인중에서 우유제품과 물은 이미 위축되었고, 기능음료인 "맥동(脈動)"이 여전히 우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은 아주 간단한 이치이다. 러바이스는 이때 이미 독립기업이 아니었고, 그것은 다농의 중국전략에 맞추어 행동해야 했다. 다농은 이미 몽우와 광명에 지분투자하였고, 지배지위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므로, 이미 100%자회사가 된 러바이스가 맡아야 할 임무는 결국 기능음료부분에서 코카콜라, 펩시콜라, 강사부등의 거두와 시장을 다투어야 하는 것이다.

 

다농에 지배된 후 와하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분명히 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단일한 위치는 절대로 종경후의 산업이상을 만족시키거나 이룰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종경후와 다농간에 존재하는 모순이 더이상 조화되기 힘들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난감한 현재

 

와하하와 종경후에 있어서 현재의 국면은 난감하다.

 

10년전에 "시장으로 기술을 바꾸는" 바람에 의하여 다농과 합작했으나 현재는 이미 회사가 성장하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종경후는 다농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그래서 합자회사의 바깥에 70여개의 회사를 설립해서 쾌속성장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모두 "와하하"상표를 쓰고 있는데, 키워놓은 이후에 다농의 암산(暗算)에 걸려들 가능성이 많아진 것이다. 즉, 저가인수의 가능성이다. 종경후와 그를 지지하는 와하하에 있어서, 법률수단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마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와하하의 정신지주가 된 종경후에 있어서, 그는 또 다른 하나의 해결방식이 있다. 그것은 완전히 '와하하'라는 상표를 포기하고, 다른 기반을 가지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완전히 없어지면, 그도 확실히 이 패를 꺼내들 것이다. 시장판매체계를 장악한 종경후는 이런 실력과 배짱이 있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농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10년전에, 다농은 자본과 기술로 와하하에 진입했다. 그러나, 와하하를 진정으로 중국의 시장선도자로 만든 것은 다농이 아니었다. 기업을 생명인 만명이상의 직원과 판매체계는 다농이 좌우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전투이다. 하나의 브랜드를 수립하는데, 와하하는 20년의 시간과 무수한 자금을 썼다. 그러나 한장의 계약서상의 법률상 루프홀(loophole)로 인하여, 10억위안의 자금을 들여서 이미 38억위안의 이윤을 취득한 다농에게 이익만 주게 된 것이다. 중국회사로서 와하하의 손실을 거대하다. 그래서 종경후는 진퇴양난의 국면이다. 동시에 이것은 다농에게도 진퇴양난이다. 종경후의 강경한 개성으로 보아서 그는 와하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농은 빈껍데기회사와 제한받는 브랜드만 보유하게 될 것이다. 20년동안 합자쌍방은 거액을 들여 "와하하" 브랜드를 구축했는데, 이에 따른 상처가 가장 클 것이다.

 

다농이 모를리 없는 것은 저명한 민족기업으로서 와하하는 정부의 깊은 관심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외자가 민족브랜드를 계속 인수하는 것이 깊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때, 당시의 계약서 한장을 가지고 법률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하여 다농이 와하하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의 마음까지 얻을 수는 없다. 협상을 통하여 와하하 경영진의 지분을 인수해주는 것이 쌍방간의 가장 좋은 해결책일 것이다. 만일 쌍방이 모두 자신의 입장을 견지한다면, 이 풍파는 승리자가 없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나, 누가 양보할 것인가? 다농은 빈껍데기회사를 가지려고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