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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다농 vs. 와하하

와하하(Wahaha)의 종경후(宗慶后)는 피해자인가?

by 중은우시 2007. 5. 7.

글: 오효파(吳曉波)

 

와하하의 종경후는 지금 "피해자"가 되었다. 최근 미디어에서 자주 터뜨리는 내용에 의하면, 11년전에 프랑스 다농의 음모에 말려들었다는 것이다. 그 주요한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와하하는 당시에 돈이 그다지 모자라지 않았다. 합자(JV)는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둘째, 10여년동안 다농은 조그만치의 기술도 제공하지 않았으며, 와하하의 희망은 헛되고 말았다.

셋째, 다농은 당시 합자계약에서 "함정"을 설치했고, 와하하의 이익에 손실을 가져다 주게 되었다.

넷째, 다농은 실제로 무능하며, 러바이스(Robust, 樂百氏)를 엉망으로 만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결론은 외국자본의 "악의적인 인수합병"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현재 중국내 여론은 일방적이며, 다농을 와하하에서 쫓아내고, 중국에서도 쫓아낼 것같은 기세이다. 와하하에 대한 십여년간의 관찰자로서, 나는 알고 있는 내용을 말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첫째, 와하하의 합자는 '돈이 모자랐기 때문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1993년전후, 종경후는 악취가 풍기는 보건품시장에서 싸우다가 철수하고, 다시 음료시장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나 주력상품을 찾지 못하는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산매음(酸梅飮), 관제백주(關帝白酒), 청량로(淸凉露), 평안감모액(平安感冒液)등을 만들었고, 심지어 부릉(陵)짜차이까지 만들었지만 하나도 성공한 것이 없었다. 더욱 중대한 것은 그가 투자한 와하하미식성이 상장되기를 바랐지만 이루지 못했고, 경영상의 곤란만 가중시켰다. 회사는 연말에 상여금을 지급할 현금도 없었고, 각부서경리들에게 음료를 현물로 지급해서 상여금을 대신했다. 종경후의 사무실의 창밖에는 입체교차로가 있는데, 어떤 직원은 바로 이 입체교차로에서 노점을 열어 와하하음료를 팔았다. 종경후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때, 다농이 나타나서 와하하와 합자를 논의했다. 내가 보기에, 와하하가 당시에 받은 것은 실제로 "구명의 돈"이었다. 그후에 순정수(純淨水) 사업을 찾아냈고, 이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둘째, 다농은 "조그만치의 기술도 없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종경후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느해에 그는 음료연구센터를 투자하여 설립하고자 했는데, 다농에서 그를 불러 다농이 새로 만든 파리근교의 연구센터를 구경시켜주었다. 그는 돌아온 후에 이렇게 말했다. 원래 다농의 전문능력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에 대하여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원래 거액을 투자하여 연구센터를 만들려고 했으나, 여전히 이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최근들어 와하하로 하여금 돈을 벌게 해주고 있는 순정수사업의 기술은 원래 다농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종경후는 마케팅의 귀재이다. 그의 주요한 무기는 (1), 연합판매체모델, (2) 시종 뒤따라가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와하하가 성공한 거의 모든 제품은 다른 사람을 따라만든 것들이었다.

 

셋째, 다농과 와하하의 관계가 처음부터 비정상적이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자.

 

누구나 알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다농이 와하하에 들어올 때, 실사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와하하의 재무제표에 대하여도 감사해보지 않았다. 합자하는 해에 와하하는 이미 해외에까지 이르미 있었고, 내부적으로 자금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외부적으로 종경후의 실적은 괜찮게 평을 받고 있었다. 한번은 홍콩에서 협상하는데, 말이 잘 맞지 않자, 종경후는 비행기를 타고 항주로 되돌아와 버리면서, 더이상 협상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농에서 당시 이 일을 주관하던 사람은 합자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계속 양보했고, 이로 인하여 나중에 서로 잘 맞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 합자한 11년동안, 다농은 와하하에 사람 한 명 파견하지 못했다. 종경후는 소주주주의 신분으로 대주주를 배척했으며, 물한방울 들어갈 수 없는 독립왕국을 건설했다. 이것은 회사지배구조상의 하나의 기적이다. 와하하의 이익이 괜찮았으므로, 다농도 당시 투자를 괜찮은 것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쌍방의 심리상태는 아주 미묘하게 되었다.

 

넷째, 다농이 경영상, 확실히 "아주 무능"했는가?

 

종경후의 선전에 비교하면, 다농은 중국시장에서 성공한 투자자였지만, 마케팅에서는 실패자였다. 그가 중국에 진입한 것은 와하하가 창립되기 1년전이었다. 요쿠르트, 비스켓, 맥주를 하였는데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다농은 중국에서 업계의 통합자로서 성공했다. 먼저 와하하와 러바이스라는 중국최대의 2개 음료회사를 수중에 넣었다. 이어서 광명(光明), 회원(匯源), 몽우(蒙牛)등에도 손을 댔다. 전략목표는 분명했다. 2001년 다농은 러바이스의 창시자인 하백권(何伯權)을 경영진에서 쫓아냈다. 또다른 의미에서는 하백권 팀은 현금을 챙기면서 빠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하백권의 팀은 20여억위안을 챙겨서 나갔다. 이는 지금까지 중국기업가가 현금화한 것중에서 가장 금액이 큰 것이다. 다농은 러바이스를 인수한 후, 풍파를 거치면서 효율이 격감했다. 아주 좋은 기업 하나를 결손기업으로 바꾸어버렸다. 이것은 종경후가 다농을 깔보게 된 이유중의 하나이다.

 

이상의 상황분석으로 보자면, 종경후의 다농에 대한 불만은 알 수 있다. 그가 보기에 다농은 그 당시 큰 이익을 챙겼고, 지금 그는 나이가 60이 넘었고, 이제는 거취를 정할 시기가 된 것이다. 이번에 대주주에게 감히 도전한 것은 마지막 결사항전으로 볼 수 있다. 만일 여론의 힘을 빌어 지분을 회수할 수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주 유리한 협상고지를 점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종경후의 주장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농이 잘못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당시 계약서는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분명했다. 만일 진짜 무슨 "함정"을 파놓았다면, 자기의 눈이 안좋은 것을 탓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것을 가지고 완전히 뒤집을 생각을 한단 말인가. 민족주의정서를 선동하여 이를 뒤집으려고 한다면 이것은 더욱 걱정되는 일이고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음료업계는 일찌감치 완전경쟁영역이 되었고, 국가정책에서도 보호할 필요가 없다. 일체는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사고팔면 된다. 와하하와 다농의 상황은 무슨 악의적인 M&A의 상황이 아니다. 이러한 영역에서 "민족주의"의 명분을 가지고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누구든지 웃을 일이다.

 

사실은 사실이다. 이 불을 계속 지펴간다면, 중국상업의 건강한 성장에도 불리하다. 국제여론에서도 우스개로밖에 취급받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