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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과 일본

일본의 중국은행(中國銀行)

by 중은우시 2007. 4. 11.

글: 적화(翟華)

 

작년에 아베 수상이 중국을 방문한 것이 파빙(破氷, 얼음깨기)라면, 오늘 원자바오총리의 방일은 융빙(融氷, 얼음녹이기)이다. 중국과 일본간에는 아직도 남은 얼음덩어리가 있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일본에도 중국은행이 있다(웹사이트, http://www.chugin.co.jp). 중국의 중국은행(웹사이트, http://www.boc.cn)과 한자로 쓰는 것이 똑같다. 심지어 국(国)자도 같은 글자체로 쓴다.

 

2005년도 아시아 100대은행중에 중국의 '중국은행'은 총자산이 7위에 랭크되어 있고, 일본의 이 '중국은행'은 46위에 랭크되어 있다.

 

그러나, 한자는 같지만, 금융업무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고 있다. 중국의 "중국은행"은 영문으로 Bank of China를 쓰지만, 일본의 "중국은행"은 Chugoku Bank를 쓰고 있다(일본발음으로 "중국"은 Chugoku이다). 그리고, 일본의 중국은행의 주요업무는 일본의 오카야마지구에 집중되어 있다. 오카야마는 일본의 소위 "중국지방(中國地方)"의 5개 현중의 하나이다.

 

일본인들이 말하는 "중국지방"은 일본 혼슈의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으로 동해, 남으로 세토나이카이에 접해 있는 곳이다. 헤이안시대(794-1192)에 일본은 수도인 교토를 중심으로 하여 거리가 멀고 가까움에 따라 "근국(近國)", "중국(中國)", "원국(遠國)"의 세개지구로 나누었다. 그래서 이 "중국"은 당시 중부지구라는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지금까지도 쓰고 있다.

 

일본에 "중국"이 있을 때, 중국의 정식국명은 아직 '중국'이 아니었다. 옛날부터 18세기전까지 일본인들은 중국을 Morokoshi(모로코시), Kara(카라), Tau(타우)라고 불렀는데, 모두 일본인들이 "당(唐)"이라는 글자를 읽은 것들이었다. 18세기전까지 일본지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중국땅을 "한토(漢土)"라고 표시하였다.

 

1713년, 일본의 사무라이, 정치가, 학자의 몇 가지 신분을 함께 지닌 아라이 시로이시는 일본에 구금된 로마전도사 Giovanni Battista Sidotti와 대담을 한 후에, <<채람이언>>이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중국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아라이는 Sidotti로부터 들은 Cina(Sidotti는 이탈리아사람이었으므로 중국을 언급하면서 이탈리아어인 Cina를 쓰고, 영어인 China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를 카타카나로 '치이나'라고 쓰면서, 한자로 "지나(支那)"로 썼습니다. 이것은 일본인들이 중국을 "지나"로 부르는 첫 사례가 됩니다.

 

갑오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전한 후, 승리자인 일본인은 더이상 "당"으로 중국을 부르지 않고, "지나"로 대체하였습니다. 말투에서 약간은 깔보는 투가 들어있게 됩니다.

 

손중산이 이끄는 신해혁명이 성공적으로 청나라를 전복시킨 후, 국호를 "중화민국"으로 개칭하고, 약칭하여 "중국"이라고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일본인들은 "중국"이라는 두 글자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우월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여기에 일본에 이미 "중국"이라는 지방이 있었으므로, 여전히 "지나"라는 용어로 중국을 지칭하게 됩니다. 이는 중국사람들의 불만을 자아내게 됩니다.

 

청나라 말기의 수재이며, 교육가인 왕공벽은 1919년 출판한 <<동유휘한록>>이라는 글에서 일본이 중국을 "중화민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지나"라고 부르는데 대하여 통박한 바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국가로 보지 않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 중화민국의 성립 8년이 되도록 왜인들이 여전히 승인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1930년, 중화민국 중앙정치회의는 결의를 하나 통과시켰다. "지나"라는 단어는 의미가 아주 불명확하며, 현재의 중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고, 외교부로 하여금 속히 일본정부에 통지하여 "향후 중국을 호칭할 때, 영문은 반드시 Nitional Republic of China"로 쓰고, 중문으로는 "대중화민국"이라고 써야 한다. 만일 일본이 공문서에 여전히 지나라는 류의 문자를 쓴다면, 중국외교부는 접수를 거절하겠다"

 

바로 중일관계가 팽팽한 긴장상태이던 1930년, 일본의 "중국은행"이 12월 21일 설립된다. 중국의 "중국은행"은 이미 1912년에 설립되어 있었다. 당시 일본인의 심리상태로는 중국의 "중국은행"과 이름이 겹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일본의 "중국은행"은 상해에 "주재원사무소"를 설치하였다. 중국의 중국은행도 동경등 일본도시에 지점 사무소를 설치하였다. 두 개의 "중국은행"은 서로 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네가 있다는 식으로 지내고 있다. 중일양국은 정말 끊어지지 않는 원한에 얽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