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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 명칭의 변천

by 중은우시 2007. 4. 4.

 

서기(書記)

 

1차전당대회(一大)는 1921년 7월 23일부터 31일까지 상해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당원의 수량이 비교적 적었고, 각지역의 조직이 아직 완비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당의 중앙위원회는 설립하지 않기로 했으며, 먼저 당의 중앙영도기관인 중앙국(中央局)을 두기로 했다. 중국공산당의 최고지도자는 "서기"라고 불렀으며, 진독수(陳獨秀)가 서기를 맡았다.

 

위원장(委員長)

 

2차전당대회(二大)는 1922년 7월 16일부터 23일까지, 상해에서 다시 개최되었다. 대회에서는 중앙집행위원회를 선거로 선출했다. 중국공산당의 최고지도자는 "위원장"으로 불리웠다. 진독수가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3차전당대회(三大)의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도 역시 위원장으로 불리웠다. 진독수는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에 연임되었다.

 

총서기(總書記)

 

4차전당대회(四大)는 1925년 1월 11일부터 22일까지 상해에서 개최되었다. 대회에서는 당의 중앙영도기관을 선출했는데, 여전히 중앙집행위원회였다. 다만, 중국공산당최고지도자는 "총서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진독수가 제1기 총서기를 맡았다.

 

5차전당대회(五大), 6차전당대회(六大)의 4중전회 및 5중전회, 12차전당대회(十二大)이후에 중국공산당최고지도자는 계속 총서기로 불리웠다.

 

8차전당대회(八大), 11차전당대회(十一大)에도 '총서기'의 직위는 있었지만, 당시는 '주석(主席)'이 있었으므로, 총서기는 중국공산당의 최고지도자가 아니었다.

 

주석(主席)

 

6차전당대회(六大)는 1928년 6월 18일부터 7월 11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다. 여기에서는 새로운 중앙위원회를 선거로 선출했다. 중공최고지도자는 이때부터 "주석"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향충발(向忠發)이 주석을 맡는다. 향충발은 중공정치국의 제1기 주석이다.

 

6차전당대회 7중전회 및 7차전당대회(七大)부터 11차전당대회(十一大)까지는 중공의 최고지도자는 계속하여 "주석"으로 불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