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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자금성(紫禁城) 방의 갯수

by 중은우시 2007. 3. 18.

전설에 의하면, 원래 자금성을 지을 때,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 주체(朱棣)는 궁전의 총 칸수(間數, 間을 우리나라에서는 칸이라고 부르고, 1칸은 대체로 사방 1장(약3.58미터)너비의 기둥들로 둘러싸인 면적의 단위임)를 1만칸으로 예정했다. 그러나, 그가 성지를 내린 다섯째 되는 날 저녁, 돌연 꿈을 하나 꾸게 되는데, 꿈속에서 옥황상제(玉皇上帝)가 그를 천궁(天宮)의 능소전(凌殿)으로 불렀다.

 

옥황상제의 얼굴에 노기가 가득한 것을 보고, 영락제는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를 몰랐다. 나중에 물어보고서야 그는 자신이 지으려는 자금성의 궁전수가 1만칸이 되어 옥황상체의 천궁의 1만칸과 같은 수가 되는 것에 대하여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얼른 말했다. "상제노군께서는 노기를 가라앉히소서. 소신이 어찌 감히 상제를 범하겠나이까. 저의 이 궁전수가 어찌 노군의 천궁을 초과할 수 있겠습니까"

 

옥황상제는 이 말을 듣고는 얼굴에 환하게 웃음을 띄면서, "그럼 됐다. 내가 너에게 '천석(天石)'을 하나 내릴 터이니 궁원의 진물(鎭物)로 삼아라. 네가 다시 72지살(地煞)과 100금수(禽獸)로 너의 황성을 보호한다면, 풍조우순하고 국태민안하리라. 지억하였느냐?" 영락제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어 다시 옥황상제를 보려고 하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원래 하나의 꿈이었다.

 

영락제는 꿈에서 깬 후 즉시 성지를 내려보내어, 유백온(劉伯溫)으로 하여금 진궁하게 하였고, 꿈에서 보았던 일을 얘기해주었다. 유백온도 이를 듣고 깜짝 놀랐다: "옥황대제는 감히 거스려서는 안됩니다.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의 천궁이 1만칸이니, 우리는 9천9백9십9칸반으로 지으시지요. 그렇게 하면 옥황상제어르신의 체면에 금이가지도 않고, 황가의 기세와 천자의 존엄도 해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4년이 되지 않아, 자금성이 완공되었고, 유백온은 영락제를 모셔서 살펴보게 하였다. 궁안을 한바퀴 돌아보고는 아주 만족해 했다. 이 자금성은 정말 기세가 당당하다. 기둥에는 그림과 조각이 있고, 금벽휘황하며, 오문은 높고 웅대하였으며, 봉천전(청나라때 태화전으로 개칭함)은 넓고 기세가 있었다. 옥황상제의 능소전과 비교하더라도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다. 돌연 주체는 옥황상제가 내린 그 "천석"을 생각했고, 72지살, 100금수를 모셔야 한다는 것이 생각나서, 유백온에게 어디에 배치하였는지 물었다.

 

"황상께서는 서두르지 마십시오. 소신이 하나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유백온은 말하면서 화개전(청나라때 중화전으로 개칭함)의 뒤에 있는 어로(御路)로 모시고 가서, 장방형의 거대한 석조(石雕)를 가리키며, "이것이 옥황상제께서 내리신 그 '천석'입니다. 이름은 '운룡계석(雲龍階石)'이라 하였고, 위에 9마리의 용을 새겨서 흐르는 구름 사이를 노닐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궁중에서 가장 큰 석조입니다. 만근이 넘습니다" "좋아.좋아" 이어서 영락제가 물었다. "그럼 72지살은?" "그건 보이지 않습니다. 신은 그들을 궁중아래의 72개의 지하수로에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지하의 귀신들이 장난치지 못하게 하였고, 궁의 풍수를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잘 갖다 놓았다" "궁전의 지붕위의 유리장식물을 보십시오. 그들은 교룡, 봉황, 사자, 천마, 압어, 두우, 해치, 준예등입니다. 하늘을 나는 것, 땅위를 달리는 것,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도 있습니다. 기우(祈雨)하는 것도 있고, 피사(避邪)하는 것도 있습니다" "더 말할 것없다. 이것이 바로 백수를 청한 것이지. 그대가 한 일은 하나하나 모두 옥황상제가 말한 것과 들어맞는 군. 그대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 주체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 궁리의 전당은 9천9백9십9칸반인가?" "맞습니다" "그럼 반간은 어디에 있는가?" "후정의 서쪽에 있는 방에 있습니다" "좋아.좋아. 짐은 그 옥황상제가 또 뭐라 그러는지 보겠다."

 

유백온이 9천9백9십9칸반이라고 말할 때, 마음 속으로는 약간 떨렸다. 사실 궁안의 전당수는 정말 9천9백9십9칸반이 아니었다. 원래 그가 각지에서 나무, 돌과 각종재료를 사올 때, 백성들의 생활이 힘든 것을 보고, 황제가 크게 공사를 하면서 돈을 많이 쓰려고 하자, 설계가 끝난 도면을 고쳐서 수백칸을 줄여버렸다. 실제로 완성한 것은 8천여칸이었다. 그는 이 자금성이 워낙 크니 누가 와서 세어보겠는가. 내가 몇 칸이라고 하면 몇 칸인 것이다라고 생각해서, 주체에게 9천9백9십9칸반이라고 말한 것이다. 영락제는 이를 그대로 믿었고, 그에게 적지 않은 금은을 상으로 내렸다.

 

이로부터, "자금성에는 9천9백9십9칸반의 방이 있다"는 말이 전파되었다. 실제 숫자는 정확하지는 않았고,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 현재 고궁에는 전, 궁, 당, 루, 재, 헌, 각을 합쳐서 모두 8707칸이 있다. 그렇다면, 전설속의 반칸(半間)은 어디에 있는가? 고궁을 참관할 때, 경운문바깥의 전정에서 남쪽으로 바라볼 때, 벽으로 둘러싸인 2층짜기 녹색기와유리지붕건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청나라때 사고전서를 두던 문연각이다. 바로 이 문역각의 이층 서쪽에 독특한 곳이 있는데, 다른 일반적인 누각과는 달리 두 기둥사이가 1장여의 거리가 아니라, 두 녹색기둥의 사이가 겨우 5척가량의 거리이다. 자금성의 반칸은 바로 여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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