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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방)

장량(張良)은 왜 유방(劉邦)을 따르게 되었는가?

by 중은우시 2007. 2. 2.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어른이건 어린아이이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모두 자기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실패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성공에는 비결이 있는 것일까?

 

한고조 유방은 한나라의 개국황제이다. 요방은 강소성 패현사람이다. 출신은 빈한했고, 30세이 패현 사수향정장(현재의 직급으로 하명 파출소소장)을 지냈으나, 이것도 정식 직위는 아니고, 임시직이나 계약직에 해당하였다. 집안에는 십여무의 땅에 농사짓고 있었고, 농사일이 바쁘면 집으로 돌아갔고, 농사일이 없으면 관아에서 일을 봤다. 하루는, 현령의 친구가 한 명 왔다. 유방은 사람사귀는데 아주 뛰어났으니, 당연히 가 보았다. 그런데, 현령이 이 친구는 아주 재물을 탐했고, 선물을 보내지 않으면 만나주지를 않았다. 유방은 온 몸을 뒤적여도 몇푼이 나오지를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유방은 아이디어를 냈다. 먼저 어린아이를 시켜서 축하카드를 보냈고, 위에는 "축하예물 오만(五萬)"이라고 적었다. 현령의 친구는 선물 금액이 어마어마한 것을 보자, 무슨 고관대작이 온 줄 알고, 얼른 문앞까지 마중하러 나왔다. 문을 나서서 보니, 문밖에는 빈손으로 서 있는 사나이가 있을 뿐이었다. 선물도 없었다. 그러나, 현령의 친구는 전혀 그를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제왕의 상이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15살된 딸을 그와 결혼하도록 허락한다. 나중에 유비는 과연 황제가 되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유비의 성공은 '천명'이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아무런 지위도 없고, 돈 한푼도 없는 무뢰한이었지만, 자세히 분석해보면,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잘한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고, 시중의 시선에도 신경쓰지 않는 대범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상적인 사고의 질곡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장량에 대하여 얘기하자면, 그가 유방을 따르기 전의 신분, 지위, 학식과 담량, 그리도 당시의 지명도까지 모두 유방보다 위였다. 그렇다면 그는 왜 유방을 끝까지 따른 것일까? 우리가 살펴볼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장량이 한 마음으로 유방을 따르며 천하를 통일했다. 배우고 아는 것을 모두 활용하며, 기획하고, 경영하였으며, 자주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이를 반전시켰다. 청년시대의 장량은 혈기방방한 호협인물이었다. 그는 재산을 아끼지 않고 한(韓)나라의 복수를 하기 위하여 진시황을 암살하고자 했다. 장량이 유방을 따른 이후에, 곳곳에서 그의 정치적인 식견과 뛰어난 모략을 볼 수 있다. 먼저 장량이 유방을 따르기 전에는 도대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살펴보자. 그의 일생에는 도대체 어떤 비범한 내력이 있는 것일까?

 

출신 및 지위: 유후(留侯) 장량의 자는 자방(子房)이다. 조상은 한국(韓國, 춘추시대의 한나라) 사람이다.조부 개지(開地)는 한소후(韓昭侯), 선혜왕(宣惠王), 양애왕(襄哀王)때 재상을 지냈다. 부친 장평(張平)은 리왕, 도혜왕의 재상을 지냈다. 기원전 250년, 부친 장평이 사망했다. 20년후, 한나라는 진나라에 멸망한다(나이가 어렸던, 장량은 한나라에서 관리를 지낸 적은 없다). 그러나, 장량은 자기의 조국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한나라가 멸망한 후, 장량은 집안의 가노 3백명이 있었는데, 장량은 모든 재산을 쏟아부어 한나라의 복수를 위하여 진시황을 암살할 용사를 찾았다. 다른 일체의 비용은 아꼈다(심지어 장량의 동생이 죽은 후에도 후히 장사지내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원인이 있다. 바로 장량의 조부, 부친이 한나라의 재상을 지냈기 때문이다. 이런 지위는 장량이 조상 5대에 걸쳐 한나라의 은혜를 입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군왕을 위하여 복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향, 담량과 학식: 장량은 일찌기 회양에서 예법을 배웠다. 그리고 대역사(大力士)를 찾았고, 120근무게의 철추를 만들었다. 얼마되지 않아 기회가 왔다. 진시황이 동순(東巡, 동쪽을 순방)하였다. 장량과 대역사는 계획을 세워 박랑사(博浪沙)에서 진시황을 죽여버리기로 한다. 그러나, 진시황도 주의를 많이 기울여서, 매번 순방시마다 몇 대의 차량을 내보내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기 힘들게 하였다. 장량은 운이 좋지 않았다. 철추는 그 중의 진시황이 타지 않은 마차를 부수었다. 진시황이 이후 장량을 전국에 수배한다. 장량은 이름을 바꾸고, 하비로 숨어버렸다.

 

진시황을 암살하려는데서 알 수 있듯이, 청년시대의 장량은 혈기방장한 호협인물이었다. 기본적으로 무협지에 나오는 협의를 중시하는 대협과 비슷했다(절대 여자를 위하여 죽을 힘을 다하는 소협이 아니다). 그러나, 결국 암살은 실패했고, 장량은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 지를 모르게 되었다. 아마도 그는 스스로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하비로 피난간 날이 바로 그의 운명을 바꾸게 되는 날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장량은 한가롭게 하비의 다리위를 거닐고 있었다. 돌연 한 노인이 장량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더니 신발알 다리 아래로 홱 벗어던지더니, 장량에게, "아이야, 내려가서 내 신발 좀 주워오너라!"고 말한다. 장량은 당시 뭐가뭔지 헷갈리고 있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네가 조심하지 못해서 신발이 떨어진 것이거나, 네가 일부러 신발을 벗어던져놓고는 왜 나에게 집어오라는 것이냐"라고 생각하고 그를 때릴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노인이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따지지 않고, 내려가서 신발을 주워다 주었다. 노인이 또 말했다. "신발을 신겨라!" 장량은 마음 속으로 또 생각했다: "허, 주워다 주기까지 했는데, 아직도 끝난 게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고 그의 신발을 신겨주었다. 노인은 웃으며 떠나갔다. 장량은 당시 약간 안개속에서 보듯이 그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약 1리의 길을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장량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가르칠만하군. 오일후 새벽에 여기서 만나자" 장량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좋습니다". 5일후의 새벽에 장량은 그 곳을 갔다. 노인은 이미 그 곳에 와 있었다. 장량이 오는 것을 보고는 화가나서 말했다: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은데, 늙은이가 도착한 뒤에나 오다니..정말" 그리고는 몸을 돌려 가버렸다. 그리고는 "오일후에 다시 아침 일찍 와라"고 했다. 5일후, 장량은 한밤중에 갔다. 조금 있다가 노인이 왔다. 그리고는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일찍오니 얼마나 좋으냐" 그리고는 장량에게 책 한권을 주었다. "이 책은 네가 잘 익히면 제왕의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년이후에 너는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13년후에 네가 제북으로 오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곡성산 아래의 황석(黃石)이 바로 나이니라" 말을 마치고는 가버렸다. 장량의 이 책은 원래 <<태공병법(太公兵法)>>이었다. 장량은 이 책을 자주 읽고 익혔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장량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소식은 <<유후론>>에서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옛날의 호걸지사는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참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필부는 욕을 보면, 검을 꺼내들고 싸운다. 이것은 용기라고 할 수 없다. 천하의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은 돌연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않고, 아무 연유없이 당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가진 뜻이 크고, 멀기 때문이다"

 

장량의 뛰어난 점은 그가 비록 젊고 혈기가 넘치지만, 욕을보면 바로 싸우려드는 필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참기 힘든 일을 참았다(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비바람을 견디지 않으면 어떻게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것인가). 잘 모르겠는 일을 당하면, 급히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착오를 범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대로 두면서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낫다. 장량의 참을성과 냉정함은 그로 하여금 기우를 만나게 하였던 것이다.

 

10년이 지난 후, 진승 오광등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일시간에 적지 않은 반항세력이 형성되었다. 장량은 이 때 기회가 왔다고 보고는 100여명의 청년을 모아서 스스로 대리초왕(代理楚王)에 오르고자 하였고, 유현의 경구(景駒)에게 가고자 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중도에 유방을 만난다. 당시 유방은 수천명을 이끌고 하비서쪽지방을 빼앗았다. 장량은 가까이 다가온 유방을 보고는 그에게 귀부(歸附)한다. 유방과 일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장량은 다른 사람에게 <<태공병법>>상의 여러가지를 얘기하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장량이 여러차례 <<태공병법>>을 이용하여 유방에게 건의하면, 유방은 그가 건의하는대로 듣고 시행했다. 장량을 스스로 "패공은 아마도 하늘이 내렸나보다"라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경구에게 가지 않고 유방을 따라다닌다.

 

분석1: 이를 보면 유방은 흉금이 넓었는데, 이것은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사람을 잘 알아보고 일을 맡겼으며, 고정된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잠깐 옆길로 빠지면, 장량은 유방과 같이 경구를 만나러 간다. 그러나, 장량은 자기의 개인신분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한서. 고제기>>에는 유방이 장량과 함께 경구를 만난 것을 기록하고 있다. <<한서. 초원왕전>>에서는 같이 경구를 만나러 간 사람중에 소하, 조참이 있다고 되어 있다. <<한서보주>>에는 특별히 "이로써 따르고 경구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고제기에서는 명백히 패공이 장량과 함께 경구를 만났고, 병사를 일으켜 풍을 치자고 하였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장량이 경구를 만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때부터 패공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이다" 장량이 유방의 수하에서 일을때, 자연스럽게 유방의 부하신분으로 경구를 같이 만났다. 경구의 지위는 유방보다 높았지만, 장량은 지위가 높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경구라는 사람은 앞날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계속 유방을 따른 것이다.

 

분석2: 장량은 멀리보는 안목이 있었고, 그는 큰 일을 할 사람을 알아보았다.

 

유방이 설지에 가서 항량을 만났다. 항량은 초회왕을 옹립했다. 장량은 항량에게 이렇게 권했다: "당신이 임 초왕의 후예를 옹립하였으니, 한국공자인 횡양군 한성이 현명하고 능력이 있으니, 그를 왕으로 세워주어 동맹자로서 역량을 강화하면 어떻겠습니까?" 항량은 이 말을 듣고는 한성을 찾아서 그를 한왕으로 세운다. 그리고, 장량을 한나라의 사도(司徒)로 임명한다. 한성을 따라 1천여명을 이끌고 한나라의 옛영지를 회복하러 가서 몇 개의 성과 마을을 빼았았으나, 진나라 군대에게 다시 빼았겼다. 한나라 군대는 그저 영천일대서 유격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분석3: 장량은 여러 사람을 따르고 난 후에 더욱 정확한 판단을 하였다.

 

그렇다면, 왜 장량은 한성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을까?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고국을 버릴 수 없는 심정에서이다. 그러나, 사실은 증명한다. 똑똑한 장량도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왜 장량은 한나라의 사도를 맡는 착오를 범하였을까?

 

첫째, 유방과 장량의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장씨는 조상대대로 한나라를 섬겨왔다. 조부, 부친은 한나라의 오대임금의 재상을 지냈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조상의 기업을 잇는 것이었다. 장량은 항량을 종용하여 한성을 왕으로 세우게 한 것은 이중의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계속하여 한나라를 위하여 힘을 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발전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방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불편함때문에 유방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비록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가정해볼 수는 있다. 만일 유방이 장량이 떠난데 대하여 장량을 미워했다면, 장량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둘째, 유방을 위하여 잘 할 수 있었는데, 한왕을 위하여는 잘하지 못했다.

 

장량은 한번 잘못된 선택을 한 후에 다시 유방을 따랐다.

 

분석4: 유방의 흉금이 넓었고, 일처리함에 있어서 사람들과 많이 상의하였고, 정확한 의견은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사람을 쓸 때 의심하지 않았다. 뼛속까지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민주적으로 협의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